channel_banner
  •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전생 체험(퇴행 명상)으로 마주한 생생한 디테일을 신작 소설의 뼈대로 삼았다고 고백했습니다.
  • 전체 인구 변화 데이터에 근거해 모든 이들이 동일한 출발선이나 동일한 주기로 윤회하지는 않는다는 흥미로운 영적 여행론을 개진했습니다.
  • 매일 아침 어김없이 10페이지짜리 원고를 뽑아내는 집착에 가까운 루틴을 보이며, 진정한 지적 영생은 기계적 도구보다 영혼을 보존하는 기록에서 나옴을 짚어줍니다.

세계적인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신작에서 다룬 '전생 체험'은 단순한 영적 판타지가 아닙니다. 작가는 직접 겪어보지 않은 역사적 순간들을 퇴행 명상으로 마치 영화처럼 경험하고, 이 선명한 기억을 소설의 조각들로 재조립합니다. 그가 전하는 독특한 창작 비법과 환생에 대한 철학은 단순한 미신을 넘어, 우리에게 '진짜 나는 누구인가'라는 원초적이고 인문학적인 질문을 건넵니다.

베르베르가 전생을 체험하고 소설을 쓰는 이유

많은 독자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을 읽으며 어떻게 직접 가보지도 않은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디테일을 이토록 생생하게 묘사하는지 궁금해합니다. 개미처럼 철저한 관찰이 가능한 대상이 아니라면, 대체 그 기발한 상상력의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에 대해 베르베르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즐겨 하는 '퇴행 명상', 즉 일종의 전생 체험을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이 체험은 우리가 잠잘 때 꾸는 일반적인 꿈과는 완전히 다른 상태를 말합니다. 의식이 뚜렷하게 깨어 있는 상태에서 마치 눈앞에 스크린이 펼쳐지듯 지극히 선명하고 세밀한 시각 정보를 마주하는 무척이나 또렷한 경험입니다. 그는 이 생생한 체험 직후 머릿속에 각인된 역사적 이미지들을 직접 인터넷으로 찾아보며 꼼꼼하게 시대를 교차 고증한다고 말합니다.


스튜디오에 두 명의 진행자와 작가가 앉아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며, 뒤쪽 벽면 스크린에는 방송 제목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상상력의 근원이 되는 전생 체험을 토대로 과거의 실수를 기억하고 보존하는 창작 여정을 나눕니다.


실제로 그의 신작 속 여주인공 '유젠' 역시 이러한 내면의 경험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인류 최초로 글자를 발명하고 역사적 증거들을 보존하기 위해 도서관을 짓는 인물의 여정은 바로 기록과 책을 향한 오마주입니다. 책이란 결국 무수한 세대가 살아낸 뒤 같은 무지를 반복하지 않도록 기억을 이식하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베르베르는 감춰진 기원을 전달하기 위해 기계론적인 합리성에서 살짝 빗겨 선 채, 이 환상적인 감각들을 오롯이 문장 안에 새겼습니다.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비결, ‘내려놓기’의 메커니즘

그렇다면 이런 기이한 전생 여행은 비범한 예지나 능력을 갖춘 특별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일까요? 그는 호기심 하나만 단단히 움켜쥐면 누구나 이 문을 열어젖힐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거창한 믿음도 전혀 요구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기서 복병이 있습니다. 매 순간을 온전히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성향이 짙은 사람일수록 경험에 이르기 쉽지 않습니다. 일상의 작은 톱니바퀴조차 통제하는 데 젖은 한국 독자들에게 다소 낯설거나 어려운 영역일지도 모릅니다. 단단히 잡은 채 운전대를 놓지 못해 사고를 부르듯, 뇌리와 근육에 잔뜩 들어간 불필요한 긴장을 풀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경계선 너머로 진입하기 마련입니다.


안경을 쓴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가 테이블 앞에 앉아 자신의 소설 책 두 권을 곁에 두고 손짓하며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

전생 체험이라는 독특한 행위를 발판 삼아 타인의 삶과 감정을 한층 깊게 이해하는 시선을 탐색해 봅니다.


불어로는 이 현상을 '마음에서 손을 떼다(lâcher-prise)', 굳이 한국어로 치환하자면 기꺼이 통제를 마음으로 비워내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발을 내디딜 때 어지럽게 뒤엉키며 피어오르는 회의적인 단상과 걱정들을 고요히 단속해 두고, 영적인 무의식이 이끄는 흐름에 지친 내면을 오롯이 내맡겨 볼 때만 온전한 비행이 성사됩니다. 무겁게 지탱하던 통제 지향을 희석할 때 상상력이 풍성히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80억 인구 통계로 풀어내는 베르베르식 환생 법칙

여기서 더 깊게 나아가 가만히 이 영적 역설을 곱씹어 볼 일입니다. 과학과 합리적 틀 내에서 전생 환생에 대한 증거를 완전히 꿰어 맞추기란 단연 요원합니다. 이치에 닿지 않는 현실 조건이 걸림돌로 가로막는 까닭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인구의 증감 추이입니다.

고작 200년 전 10억 아래에서 머물던 이 땅의 인류는 단숨에 80억 관문을 마주했습니다. 본래 윤회가 모든 육신에 강제되는 주종 관계라면, 불과 몇 세기 전 텅 비어 있던 이 무수한 그릇들에 들이닥친 영들은 다 어디서 수혈받은 것일까요? 한때 언론사 과학부 기자로 복무했던 작가는 이 해묵은 간극을 정연하고 산뜻한 숫자로 증명해 보입니다. 즉 모두가 한결같은 시조로서 영을 빚지거나 동일 선상에서 뱅뱅 도는 폐쇄 구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대머리 남성이 마이크 앞에 앉아 웃고 있으며, 그 앞에는 '영혼의 왈츠'라는 제목이 적힌 책 두 권이 놓여 있습니다.

기억과 기록을 발판 삼아 인류의 영적 뿌리를 탐구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가 자신의 작품 세계를 풀어냅니다.


지금 동시대를 숨 쉬는 80억 영혼 가운데 누구는 온전히 처음 생을 맞이하는 '영적 새내기'일 수 있고, 누구는 무수한 시련을 누적해 가며 노하우를 세공해 둔 오랜 영혼일 수 있습니다. 생명의 끝자락에서 환생 대신 그저 깊은 영적 침잠과 회복을 선택해 더는 물질세계로의 방문의 끈을 거둔 영들도 산재합니다. 영적 생태의 순환 볼륨은 고정되지 않은 유기체와 같습니다. 긴 여행 끝에 타자의 기억을 고요하게 이식받은 우리는, 이전에는 전혀 가닿을 길 없던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고 세상을 가다듬는 지혜를 얻어내곤 합니다.

매일 오전 8시, 10페이지의 소설을 뽑아내는 기계적인 루틴

흔히 대중은 예술가들이 밤이 새도록 가쁜 술을 들이켜다 불온한 직관이 불시에 일렁이면 홀린 듯 백지를 유린해 가리라 오인합니다. 그러나 베르베르의 창작 기지는 이런 낭만적인 풍조와 기조를 완전히 달리합니다. 상상을 정연한 현실의 활자로 부려 두는 그의 힘은 지독한 성실성에 기반합니다.

매일 아침 8시 시계침이 돌면 조용한 단골 골방 구석 탁자에서 정오까지 정확히 네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킵니다. 어떠한 방해나 사유가 터지더라도 귀신같이 10페이지의 할당 목표를 뽑아냅니다. 해가 중천을 넘어선 뒤에는 가벼운 러닝 등 운동을 통과하고, 허기가 들 점심쯤에는 새로운 인물들과 호흡하기 시작하며 신선한 경험 자재를 차곡차곡 재워 둡니다. 평생을 다져 둔 생활 약속 아래서 매년 원고지 수천 장 구성의 장편 원고를 거뜬히 건져내고, 편집팀과 논의해 그중 엄선된 수작 단 1권만을 세상 영토로 실어 보냅니다.

창작이라는 가공할 밀착에 오롯이 귀속된 삶인지라 지근거리에서 그를 지켜보는 가족과 반려자 입장에서는 일종의 고행이자 고난으로 비칠 지점도 뚜렷하다며 스스로 눙치기도 합니다. 하나 고요한 전경의 모래사장 위에 사색 없이 멍청히 몸을 맡기고 일광욕을 즐기는 것보다, 새벽녘 흰 종이와 눈싸움하며 상상의 가지를 한 마디씩 전개해 가는 이 수련 행위가 자신에겐 어떠한 휴양보다 깊고 영험한 안식인 까닭입니다. 한 자루 펜 끝에 영을 묵묵히 저당 잡힌 이 질박한 세공의 근력이야말로 큰 방전 상처 없이 삼십 년간 독자의 신뢰를 온전히 지키는 원동력입니다.

기술 혁명 너머, 책을 통한 불멸과 영혼의 탐색

재미를 더하는 또 하나의 징표가 있습니다. 작가가 무려 1995년작 장편 《뇌》를 이끌 당시 이미 당대의 화두이자 폭풍인 인공지능이 세계 최고의 체스 강자들과 전율의 힘 겨루기를 행하는 세간의 격돌을 무리 없이 묘사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눈이 아직 2G 휴대전화에 채 머물기도 전에 서른 해 뒤에나 터질 기세를 한 발 먼저 헤아려 냈던 선각자입니다.

그렇다면 시대의 영리한 예언을 이끈 이 펜 끝이 그리는 향후 30년 너머 우리의 풍경은 어떠할까요. 베르베르는 오늘날 벌어지는 거대 로봇 공학이나 물리적 연산 등의 인공지능 '기술 혁명'에는 정작 그리 깊이 고개를 숙이지 않습니다. 모든 도구는 언제고 이를 점유한 인간의 마음에 의해 다스려지는 장식물일 뿐, 인류 역사를 가장 매섭게 위협할 혁신은 점차 본유의 나를 통째 잃어버리는 '내면(영혼)의 혁명'에 도사리는 탓입니다.


테이블 위에 자신의 소설책 두 권을 나란히 세워두고 마이크 앞에 앉아 있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의 모습.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인공지능이 불러올 변화를 상상하고 묘사해온 남다른 통찰을 마주합니다.


실상 현대의 무리 중 상당수는 바깥의 눈과 기대에 삶을 포개어 내느라 '진정 태어난 이유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위해 달려가는가'라는 물음을 온연히 방기해 둔 채 날 선 긴장에 수장되어 갑니다. 그는 자아가 위태로이 흩어지는 이 길목에서 비록 종이라는 얇은 성채 안일지언정 정성스레 자신만의 궤적과 속삭임을 언어로 응축해 둘 것을 우리에게 굳세게 종용합니다.


안경을 쓴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가 마이크 앞에서 책 두 권을 앞에 두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일상의 바쁨 속에서 잃어가는 영적 자아를 들춰보며 진정한 본래의 모습에 대한 질문을 건넵니다.


물리적인 혈육과 껍데기는 종국에 흙으로 환원되더라도, 밤잠을 저며 가며 완성한 고백과 지적 유산은 5백 년 뒤, 혹은 천 년 뒤 새로운 독자의 가슴속에서 또 한 번 푸른 맥박으로 요동칠 수 있으니까요. 국가도, 세무당국도 침입해 앗아갈 수 없는 유일무이한 영구적 가산세 0%의 자아 실현이자 완벽한 존재들의 영속.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아득한 전생의 한 편을 길어내 이윽고 우리 전역의 한국 독자들을 방문해 시끌벅적한 이야기보따리를 주저 없이 펼치는 궁극적 의도 역시, 결국 영혼의 길고 질긴 여정 안에서 우리가 결코 덜미를 잡히지 않는 빛나는 불꽃임을 주지하려는 여정의 일부는 아닐는지요.


FAQ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극찬한 전생 체험은 일반적인 꿈과 정확히 무엇이 다른가요?

불안정한 인지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방황하는 흐릿한 꿈과 다르게, 퇴행 명상 기법으로 도달한 전생 체험은 지각이 오롯이 깨어나 다듬어진 기면 각성 상태에 포진합니다. 상영 기기 앞에 홀로 자리한 것처럼 집안 가구의 모양새, 사소한 찻잔의 균열까지 극도로 세세하게 묘사해 낼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시각 선명도를 지닙니다.

과거 지구 인구보다 현재 인구가 몇 배 늘었는데 환생은 현실적으로 타당한 개념인가요?

베르베르는 모든 개체가 단순 루프 선상에 묶여 윤회한다는 도식에 의문을 던집니다. 현존하는 전체 인류수를 통계학적으로 환원하여 해석해 볼 때, 현 지구에는 단 한 차례도 전생의 여정이 가물지 않았던 신생 영혼들과, 역사를 겹겹이 살아오며 시련을 담금질해 온 관록의 기성 영혼들이 다채로운 비중으로 조화해 시대를 축조한다는 해석을 남깁니다.

매년 두 권씩 방대한 분량의 글을 집필하는 베르베르의 일과 구성이 궁금합니다.

그는 매우 꼼꼼한 하루 계획관을 갖추고 생활합니다. 매일 오전 8시 전 정해둔 작업공간 카페 한구석에 들어가 한 자 정량인 10페이지 분량을 도출해 낸 뒤 정오에 나옵니다. 낮 무렵 스포츠로 골격 건강을 도모하는 동시에 지인들 및 모르는 방문자들과 호젓한 낮 한 끼를 소화해 영적 재량을 불어넣으며, 그렇게 다져낸 수많은 원고 중 맑게 고른 대표 가을 수작 하나만을 매년 발표합니다.


원본 영상 보기

# 개미
# 베르나르베르베르
# 소설가
# 영혼의왈츠
# 인문학
# 전생체험
# 창작루틴
# 타나토노트
# 퇴행명상
# 환생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