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딜리아니의 기형적으로 길쭉한 초상화는 아프리카 가면, 고대 조각상, 매너리즘, 비잔틴 성화, 브랑쿠시의 조각 등 5가지 양식이 융합된 결과물입니다.
- 텅 빈 눈동자는 타인의 영혼을 함부로 단정하지 않겠다는 겸손의 표현이며, 배경을 지운 것은 사회적 계급을 넘어선 인간 본연의 존엄성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 생전에는 지독한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다 35세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지만, 현재 그의 작품은 2천억 원대에 거래되며 미술사에서 가장 독보적인 양식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그림은 한 점에 2,000억 원을 훌쩍 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순위권에 항상 이름을 올리죠. 그런데 그의 그림을 보면 의문이 듭니다. 얼굴과 목은 기형적으로 길쭉하고, 눈동자는 텅 비어 있으며, 배경은 칠하다 만 것처럼 단순합니다. 왜 이렇게 그렸을까요? 단순한 기벽이나 미숙함이 아닙니다. 모딜리아니는 인간의 겉치레와 사회적 계급을 모두 걷어내고, 인간 본연의 형태와 존엄성만을 남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 양식을 선택했습니다.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그때 눈동자를 그리겠다"는 그의 선언에는 타인의 내면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겠다는 정직함이 담겨 있습니다.
2,000억 원의 가치, 기이한 초상화의 등장
최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디트로이트 미술관 특별전에 모딜리아니의 작품 세 점이 한국을 찾습니다. 그의 회화는 워낙 고가라 국내에서 실물을 볼 기회가 흔치 않습니다. 1917년에 그려진 그의 대표작 중 하나는 경매에서 무려 1억 5,720만 달러(약 2,350억 원)에 낙찰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이렇게 엄청난 가치를 인정받는 그림들은 대개 완벽한 해부학적 비례나 화려한 배경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딜리아니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기묘합니다. 좁은 어깨, 한 줄로 떨어지는 코, 조그만 입, 그리고 텅 빈 아몬드 형태의 눈을 가졌죠. 왜 당대의 화가들처럼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고 이런 기이한 형태를 고집했을까요? 그 비밀은 그가 겪어온 시각적 충격과 역사적 맥락 속에 숨어 있습니다.
길쭉한 얼굴을 완성한 5가지 퍼즐 조각
모딜리아니의 시그니처 양식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핵심은 그가 과거의 유산들을 완벽하게 소화해 자신만의 코드로 재조립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의 길쭉한 얼굴에는 크게 다섯 가지 미술사적 기원이 융합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아프리카 가면과 고대 조각상입니다. 20세기 초 파리의 예술가들은 인류학 박물관에 전시된 아프리카 팡족의 가면이나 캄보디아 크메르 두상에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인간의 얼굴을 단순한 기하학적 도형으로 추상화한 형태에서 새로운 미학을 발견한 것입니다.
모딜리아니의 독특한 화풍은 당시 예술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던 아프리카 미술의 조형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여기에 사물의 본질만 남기고 다 쳐내는 것으로 유명했던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영향이 더해졌습니다. 모딜리아니 역시 회화를 시작하기 전 5년 동안 돌을 깎으며 이 조각적 단순함을 손에 익혔습니다.
또한, 이탈리아 출신이라는 그의 뿌리가 작용합니다. 어릴 적 피렌체 미술관에서 보았던 16세기 매너리즘 회화(파르미자니노의 '긴 목의 성모')의 비현실적으로 우아한 곡선, 그리고 천 년 전 동로마 제국의 비잔틴 성화가 가진 평면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결합되었습니다. 겉보기에만 화려한 사실주의를 버리고, 시공간을 초월한 인류의 예술적 유전자들을 하나로 합쳐낸 결과물이 바로 그의 초상화입니다.
눈동자와 배경을 지워버린 진짜 이유
그렇다면 왜 눈동자는 그리지 않았을까요? 모딜리아니는 인물의 생김새를 똑같이 모사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그때 당신의 눈을 그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대상의 내면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채 섣불리 그 사람의 전부를 안다고 착각하지 않겠다는 예술가로서의 뼈저린 겸손이었습니다. 실제로 그가 깊이 교류했던 연인이나 후원자의 초상화에는 종종 눈동자가 그려져 있기도 합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건 그림의 배경입니다. 19세기까지의 초상화는 인물이 입은 옷, 손에 든 물건, 뒤에 배치된 가구 등을 통해 그 사람의 재력과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용도였습니다. 하지만 모딜리아니는 이 모든 '사회적 계급장'을 철저히 떼어버렸습니다.
배경은 알 수 없는 색으로 뭉개버렸고, 인물의 직업이나 신분을 유추할 수 있는 소품도 모두 치웠습니다. 심지어 손조차 그리지 않았죠. 사회적으로 보잘것없는 이름 모를 하층민이나 매춘부라 할지라도, 껍데기를 다 벗겨내고 남은 인간 본연의 형태 그 자체에 고귀한 존엄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비극적 삶이 빚어낸 영원한 형태
모딜리아니의 삶 자체는 그의 그림만큼이나 쓸쓸하고 비극적이었습니다. 11살 때부터 늑막염과 결핵을 앓았던 그는 평생을 병마와 극심한 가난, 그리고 알코올 중독 속에서 살았습니다. 폐가 망가져 돌가루를 마셔야 하는 조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생전에 열었던 단 한 번의 개인전은 누드화가 풍기문란으로 경찰의 제지를 받으며 철저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생의 마지막 시기, 병마와 싸우면서도 예술적 열정을 놓지 않았던 모딜리아니의 고단한 모습입니다.
결국 그는 1920년, 35세의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다음 날, 만삭의 몸으로 그를 간호하던 19세의 연인 잔 에뷔테른마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극이 벌어집니다. "영원한 행복에 대해 우리는 서로 이해했다"는 그의 마지막 말처럼, 두 사람의 생은 비극으로 끝이 났습니다.
자, 그러면 우리는 그의 그림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모딜리아니는 죽기 1년 전, 평생 유일한 자화상을 남겼습니다. 그 그림 속 자신의 눈동자 역시 텅 비워두었습니다. 스스로의 영혼조차 완벽히 알 수 없다는 고독한 고백이었을 겁니다. 전시장에 걸린 그의 작품들 앞에서, 그 비어있는 눈동자와 마주해 보시기 바랍니다. 화려한 장식 없이도 빛나는 인간의 본질적인 우아함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FAQ
왜 모딜리아니의 그림은 얼굴과 목이 기형적으로 길쭉한가요?
그의 길쭉한 화풍은 아프리카 가면, 고대 키클라데스 인물상, 브랑쿠시의 추상 조각, 이탈리아 매너리즘 회화, 비잔틴 성화라는 5가지 미술사적 기원이 융합된 결과입니다. 대상을 사실적으로 모사하기보다 대상의 본질적인 형태를 우아하게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비례를 늘렸습니다.
그림 속 인물들의 눈동자를 비워둔 이유는 무엇인가요?
모딜리아니는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그때 당신의 눈을 그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타인의 내면을 완벽히 알지 못하면서 섣불리 안다고 착각하지 않겠다는 예술가적 겸손이자 정직함의 표현이었습니다. 반대로 깊이 교류했던 연인이나 지인의 초상화에는 종종 눈동자를 그려 넣기도 했습니다.
초상화에 배경이나 직업을 나타내는 소품이 없는 이유는요?
과거의 초상화가 의복이나 배경을 통해 인물의 사회적 계급을 과시했던 것과 달리, 모딜리아니는 이러한 사회적 표식을 모두 지워버렸습니다. 껍데기를 벗겨내고 남은 인간 본연의 형태만을 그려냄으로써,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조차 인간으로서의 고귀한 존엄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