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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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운동하다가 재벌된 부동산기업

spark_icon7분 지식
  • 일제강점기 건양사를 세운 정세권은 대규모 개량한옥을 보급해 당시 서울 연간 주택의 20%를 공급하며 북촌을 지켜냈습니다.
  • 건양사의 성공과 현대 토니스 초코론리의 성장은 단순한 매출 목표가 아니라 창업자의 뚜렷한 내적 '의도'와 사명감에서 출발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 소비자가 가치와 신념을 보고 지갑을 여는 미닝아웃 시대에는 창업자의 투명한 정체성과 진정성 있는 의도가 가장 강력한 차별화 무기가 됩니다.

일제강점기 경성의 심장부였던 북촌을 지켜내고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부동산 개발을 이끈 기업이 있었습니다. 바로 건양사(建陽社)와 창업자 정세권입니다. 일본인의 경성 거주지 확장에 맞서 조선인의 주거권을 지키기 위해 탄생한 건양사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ESG 브랜딩'의 원형을 100년 전에 이미 실행했던 기업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북촌을 지켜낸 최초의 부동산 개발사, 건양사

1920년대 경성은 급격한 도시화와 일본인 유입으로 심각한 주택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자본력을 앞세운 일본인들은 경성의 주택을 대거 사들이며 거주지를 북촌까지 넓히려 했습니다. 이때 경남 고성 출신의 청년 정세권은 일제의 녹을 받던 공직을 내려놓고 경성으로 올라와 1920년 부동산 개발 회사 건양사를 설립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경성의 빽빽한 한옥 밀집 지역을 위에서 내려다본 흑백 사진입니다.

일본인의 북촌 진출을 막기 위해 정세권은 대규모 한옥을 매입한 후 이를 주거용으로 재개발해 조선인들에게 공급했습니다.

정세권의 전략은 명확했습니다. 조선의 혼이 서린 북촌을 지키려면 조선인들이 그곳에 뿌리내리고 살아야 한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그는 대규모 한옥 부지를 사들인 뒤 10평에서 30평형대 소규모 필지로 나누어 분양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북촌에서 만나는 근대식 개량한옥(건양주택)의 시초입니다. 내부에 수도 시설을 넣고 남향 설계를 적용해 실용성을 극대화한 건양주택은 서민과 중산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며 당시 서울 연간 주택 공급량의 20%를 담당하는 부동산 개발사로 우뚝 섰습니다.

단순한 이윤 추구를 넘어선 '의도'가 브랜드의 성패를 가른다

건양사가 거둔 진짜 성과는 막대한 부동산 수익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사업의 구심점에 자리 잡은 '북촌에 일본인이 발붙이지 못하게 하겠다'는 확고한 신념이었습니다. 정세권에게 주택 건설은 단순한 영리 사업이 아니라 경영을 통한 항일운동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항구 배경으로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서 있는 흑백 사진이 영상 화면에 보임

부동산 사업을 통해 조선의 주권을 지키고자 했던 정세권은 우리 물자를 지키고 알리는 일에도 앞장섰습니다.

그는 주택 사업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조선물산장려운동의 유통 거점인 '장산사'를 세워 전국 각지의 조선산 생필품을 엄선해 판매했습니다. 나아가 당대 조선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잡지 《실생활》을 창간하고, 사재를 털어 조선어학회의 핵심 후원자로 활동했습니다. 비록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뚝섬 일대 토지 3만여 평을 일제에 빼앗기고 모진 고초를 겪었지만, 그가 남긴 발자취는 강력한 브랜드가 어디서 출발하는지를 웅변합니다. 브랜드가 오래 살아남는 비결은 정교한 마케팅 기술 이전에 창업자가 품은 내적인 '의도(Intent)'에 있습니다.

100년 전 건양사와 현대 토니스 초코론리를 잇는 공통 동력

이러한 '의도 중심 브랜딩'의 힘은 현대 글로벌 시장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네덜란드의 대표 초콜릿 브랜드인 토니스 초코론리(Tony's Chocolonely)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흰색 격자무늬 배경 중앙에 다양한 색상의 토니스 초코론리 초콜릿 바들이 쌓여 있고 그 주위를 노란색 원이 감싸고 있는 뉴스 그래픽 화면입니다.

확고한 신념과 가치를 브랜드에 담아낸 정세권의 건양사와 오늘날의 토니스 초코론리는 시대를 초월해 강력한 구심점을 만들어냈습니다.

다큐멘터리 기자였던 창업자 퇸 판 더 케퀴엔(Teun van de Keuken)은 서아프리카 카카오 농장의 아동 노예 노동 실태를 고발하다가 구조적 문제가 바뀌지 않자 직접 회사를 세웠습니다. 포장지에 '100% 노예 노동 없는(100% Slave Free)'이라는 직설적인 슬로건을 내걸고 불공정한 초콜릿 유통 구조를 바로잡겠다는 분노와 사명감으로 출발한 것입니다. 일반 제품보다 가격이 비쌈에도 토니스 초코론리는 2005년 창업 이후 매출 하락 없이 네덜란드 국민 브랜드를 넘어 글로벌 브랜드로 안착했습니다. 초콜릿을 팔기 위해 억지로 가치를 덧붙인 것이 아니라, 불의를 바로잡겠다는 창업자의 감정적 의도가 제품의 가장 강력한 셀링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가치 소비와 미닝아웃 시대, 기업이 마주한 변화와 한계점

오늘날 소비자들은 단순히 제품의 스펙이나 가성비만을 따지지 않습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가치와 신념을 소비로 표현하는 미닝아웃(Meaning Out)이 보편화되면서 기업의 의도와 태도를 면밀하게 검증합니다.

하지만 멋진 슬로건만 내세우는 '그린워싱'이나 겉치레식 ESG는 오히려 역풍을 부릅니다. 진정한 브랜드 정체성은 경영진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문제의식, 분노, 슬픔, 사명감 같은 근본적인 감정과 맞닿아 있어야 합니다. 창업자의 삶과 철학이 제품의 설계 및 운영 전반에 투명하게 녹아 있지 않다면, 위기가 닥쳤을 때 브랜드의 일관성은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브랜드가 생존하기 위해 던져야 할 질문

우리는 종종 브랜드를 시작할 때 매출 규모나 시장 점유율 같은 '목표'부터 세우곤 합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브랜드를 구축하려면 목표에 앞서 던져야 할 본질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 이 브랜드는 어떤 구체적인 사회적 결핍이나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는가?
  • 제품과 서비스 전반에 창업자의 내적 철학과 투명한 의도가 반영되어 있는가?
  • 단기적인 수익 악화나 외부 위기 속에서도 지켜낼 타협할 수 없는 가치가 존재하는가?

감정과 신념이 단단하게 결합된 의도는 브랜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스스로 밝혀줍니다. 북촌을 지킨 건양사와 노예 노동에 맞선 토니스 초코론리처럼, 뚜렷한 의도를 품은 기업만이 시대를 뛰어넘는 생명력을 증명해 낼 수 있습니다. 건양사와 브랜드의 의도, 읽어 드렸습니다.


FAQ

건양사가 지은 '개량한옥'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대규모 필지를 10~30평형대로 나누어 중산층과 서민이 살기 적합하게 구성했으며, 내부에 수도 시설을 설치하고 남향 채광을 살려 전통 한옥의 미를 유지하면서도 근대적 주거 편의성을 갖춘 실용적인 주택이었습니다.

토니스 초코론리가 고가임에도 꾸준히 성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카카오 농장의 아동 착취와 노예 노동을 없애겠다는 100% 공정무역 원칙 및 창업자의 명확한 의도가 제품의 맛과 독특한 패키지 디자인에 진정성 있게 결합되어 소비자들의 깊은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냈기 때문입니다.

브랜딩에서 '목표'와 '의도'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목표가 매출, 점유율, 상장 등 외부적으로 달성하려는 결과물이라면, 의도는 '이 일을 왜 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창업자의 내적인 태도, 분노, 사명감 등 본질적인 존재 이유와 감정적 맥락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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