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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토 구조상 발전소와 전력 소비지가 멀리 떨어져 있어 산등성이를 가로지르는 초대형 송전탑 구축이 필수적입니다.
  • 도로를 내지 않고 헬기로 자재를 분할 수송하며, 지름 30cm 미만의 마이크로파일 기초를 박는 역발상 공법이 적용됩니다.
  • 공학 기술을 넘어 교류를 직류(HVDC)로 전환하고 철탑 높이를 낮추는 등 주민 합의를 도출해 내는 과정이 전력망 구축의 핵심입니다.

도로도 없는 산꼭대기에 아파트 수십 층 높이의 거대한 철탑이 서 있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의문을 품게 됩니다. 트럭도 크레인도 올라가지 못하는 험준한 산악 지형에 수십 톤의 쇳덩이를 어떻게 세웠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산을 깎아 오른 게 아니라 하늘로 넘어간 겁니다.

국토의 3분의 2가 산림인 한국에서 동해안과 남해안의 대형 발전소로부터 수도권으로 전력을 보내려면 산줄기를 직통으로 가로지르는 송전망이 필수적입니다. 도로조차 없는 험준한 산 정상에 초고압 송전탑을 꽂아 넣고 수십 가닥의 맨몸 전선을 띄우는 공학적 역발상의 원리를 정리했습니다.

왜 굳이 산꼭대기에 초대형 송전탑을 세울까

대한민국의 전력망은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와 전기를 소비하는 도시가 서로 반대편에 위치하는 명확한 불균형 구조를 띱니다. 동해안과 남해안에 집중된 원자력 및 화력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소비량이 가장 많은 수도권으로 보내려면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넘어야만 합니다. 돌아갈 길이 없기 때문에 전력선은 산등성이를 따라 곧장 직진해야 합니다.

여기서 선로의 효율성이 결정적인 변수가 됩니다. 765kV 초고압 선로는 기존 345kV 선로 여러 개의 전력을 혼자서 나르는 전력 고속도로 역할을 합니다. 높은 전압으로 대용량 전력을 한 번에 보내면 송전 손실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필요한 용지 면적도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습니다. 철탑 높이를 높이 195m(아파트 75층 규모) 수준까지 대형화하는 이유 역시 철탑 간 간격을 최대한 벌려 산림 훼손 부지를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입니다.

산을 깎지 않는 공학: 헬기 운반과 마이크로파일 기초

초기 송전탑 건설에서는 산에 임시 도로를 뚫고 중장비를 올려보냈습니다. 그러나 도로 개설은 산비탈을 잘라내어 대규모 산사태를 유발하고 자연환경을 심각하게 훼손했습니다. 험준한 산악 지대에서는 도로를 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수천 점에 달하는 부재와 볼트를 사람이 직접 등에 지고 올라가는 것은 공사가 아니라 극기 훈련에 가깝습니다.


헬리콥터가 줄에 매달린 송전탑 부재를 운반하여 산 정상으로 이동시키는 모습이 담긴 그래픽 영상입니다.

무거운 자재를 직접 들고 산을 오르는 대신, 하늘길을 활용해 송전탑 부재를 운반하는 효율적인 방식을 택했습니다.


엔지니어들은 산을 아래에서부터 깎아 올라가는 대신 위에서 자재를 내려놓는 역발상을 선택했습니다. 철탑 부재를 헬기나 공사용 케이블카(삭도)가 들 수 있는 무게 단위로 잘게 분할한 뒤, 하늘길로 산 정상 공사장까지 직접 운반하는 방식입니다. 비록 악천후 시 작업이 중단된다는 한계는 있지만 산림 훼손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결정적 해법이 되었습니다.


하늘을 배경으로 언덕 위에 서 있는 거대한 송전탑의 3D 그래픽 영상, 화면 왼쪽 하단에 SKY PATH PROJECT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지형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땅을 넓게 파는 대신 좁은 구멍을 뚫는 마이크로파일 공법으로 송전탑 기초를 다집니다.


기초 공사 역시 산을 크게 파내는 토목 방식을 버렸습니다. 땅을 깊게 파헤치는 대신 지름 30cm가 안 되는 작은 구멍을 뚫고 고강도 강재를 박아 넣는 마이크로파일(Micropile) 공법을 도입했습니다. 산에 거대한 포클레인을 대는 대신 얇은 침을 꽂아 기초를 완성한 뒤, 그 위에 분할 수송된 철탑 조각들을 차곡차곡 조립해 올리는 방식입니다.

전선 연결의 오해: 땅을 밟지 않고 계곡을 건너는 긴선 작업

철탑을 세우고 나면 훨씬 더 까다로운 난관이 기다립니다. 피복도 없는 무거운 맨몸 전선 수십 가닥을 산과 산 사이에 걸어놓는 일입니다. 765kV 선로는 한 상에 전선 6가닥씩, 2회선 기준 수십 가닥의 중량 전선을 공중에 띄워야 합니다. 이 무거운 전선은 지상에 늘어뜨리는 순간 자체 무게 때문에 아래로 처지므로 사람이 들고 계곡을 건너는 것은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송전탑 사이의 케이블에 도르래가 걸려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이 담긴 3D 그래픽 영상 화면.

무거운 전선을 직접 옮기는 대신 가벼운 유도용 줄을 먼저 연결해 공중에서 작업하는 방식입니다.


이 문제 역시 공중을 활용해 해결합니다. 헬기가 가벼운 유도용 줄(메신저 와이어)을 물고 먼저 건너편 철탑으로 날아가 선을 걸어줍니다. 이후 한쪽 드럼장에서 본래의 무거운 전선을 묶어 서서히 풀어주면, 반대편 엔진장에서 강력한 힘으로 끌어당깁니다. 이 방식을 통해 3km에서 5km에 달하는 구간 동안 전선이 땅이나 계곡에 단 한 번도 닿지 않은 채 공중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전선을 건넨 뒤 수행하는 '긴선 작업'은 사계절 온도 변화에 따른 금속의 팽창과 수축을 정밀하게 계산하는 마무리 공정입니다. 여름철 열기로 늘어나거나 겨울철 결빙으로 무게가 무거워져도 지상과의 안전거리를 유지하도록 미리 정해진 계산 장력값에 맞춰 전선의 처짐 정도를 빈틈없이 고정합니다.

기술보다 오래 걸린 도전: 주민 합의와 HVDC로의 전환

공학적 한계를 극복하는 기술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리고 어려운 과제는 바로 산 아래 사는 주민들과의 사회적 합의였습니다. 2014년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격렬한 갈등은 사회적으로 큰 아픔을 남겼습니다. 이 사건은 송전선로 주변 지역 보상 범위를 법제화한 '송주법' 제정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울진-가평 간 230km 구간(철탑 440기)의 국내 최장 송전선로 사업은 이러한 사회적 교훈 위에서 추진되었습니다. 지중화(지상 매설) 요구와 산악 지형의 막대한 비용 격차 사이에서 한전이 제시한 해결책은 기술 규격 자체를 주민 친화적으로 변경하는 것이었습니다.

송전 방식을 기존의 교류 765kV에서 직류 500kV(HVDC)로 전면 변경하여 전자파 우려를 낮추고, 철탑 높이 역시 100m에서 75m로 25m 대폭 낮췄습니다. 그 결과 79개 경과지 마을 전 구간에서 주민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산을 넘는 공학 기술에는 수년이 걸렸지만, 사람의 마음을 넘고 안심을 얻는 데에는 10년이 넘는 세월이 걸린 셈입니다.

오늘 밤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는 도로조차 없는 산꼭대기에서 헬기가 자재를 나르고, 얇은 마이크로파일을 꽂아 세운 철탑, 그리고 공중으로 건너간 전선을 거쳐 전달된 결실입니다. 자연의 한계와 사회적 갈등을 역발상 공학으로 극복해 낸 산꼭대기의 송전탑은 이렇게 탄생한 겁니다.


FAQ

송전탑 자재를 운반할 때 헬기만 사용하나요?

아닙니다. 헬기 외에도 자재 운반 전용 공사용 케이블카(삭도)를 함께 활용합니다. 기상 악화로 헬기 운항이 불가능할 경우를 대비해 자재를 운반 가능한 무게로 분할하여 케이블카로 수송합니다.

마이크로파일 공법이란 무엇인가요?

산비탈을 대규모로 파헤치지 않고, 지름 30cm 미만의 소형 구멍을 여러 개 뚫은 뒤 고강도 강재를 박아 넣어 송전탑의 기초를 만드는 저소음·저진동 핀포인트 공법입니다.

교류(AC) 송전선로를 직류(HVDC)로 바꾸면 어떤 장점이 있나요?

직류 송전 방식은 전자파 발생 우려를 줄일 수 있으며, 전력 수송 효율을 유지하면서도 철탑 구조물의 높이와 크기를 대폭 줄여 지역 주민의 경관 및 환경적 거부감을 크게 낮출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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