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8년 안보 위기 속에서 적 전차의 진입을 막기 위해 벙커와 아파트를 결합한 '위장형 대전차 방호시설'이 서울 도봉동에 세워졌습니다.
- 평시에는 시민 주거 공간으로 활용되고 유사시에는 건물을 폭파해 잔해로 길을 막는 구조로 설계된 역발상 건축이었습니다.
- 2004년 상부 아파트가 철거된 뒤 방치되던 벙커는 2017년 '평화문화진지'라는 문화공간으로 재생되어 역사적 의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건물은 본래 오래 견디고 안전하게 거주하기 위해 지어집니다. 하지만 1970년 서울 도봉동에 세워진 한 아파트는 처음 지어지는 순간부터 마지막 임무가 '폭파'로 정해져 있던 특수 목적 건축물이었습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주거 공간이었지만, 1층은 두꺼운 콘크리트 벙커였고 그 위로 사람이 사는 아파트를 올려둔 구조였습니다.
이처럼 군사적 방어 기능과 민간 주거 기능을 하나로 결합한 건축을 위장형 대전차 방호시설이라고 부릅니다. 안보적 위기와 도시의 일상이 기묘하게 교차했던 이 공간은 왜 만들어졌으며, 어떻게 작동하도록 설계되었을까요?
군사 요새를 숨겨야 했던 도시의 딜레마
1968년 1월, 무장 공비 31명이 서울까지 침투한 1·21 사태가 발생하면서 정부는 수도 서울을 지킬 전술적 방어책을 다각도로 모색하게 됩니다. 특히 도봉동은 북쪽에서 진입하는 적 전차부대가 서울 중심부로 들어오는 결정적인 길목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길목을 확실히 차단할 강력한 방벽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여기서 고전적인 방식은 도로 한가운데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을 세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도시 초입에 노골적인 요새를 세우는 방식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적의 우선 타격 표적이 되기 쉬울 뿐만 아니라, 마을을 반으로 갈라놓아 도심의 미관을 해치고 시민들에게 상시적인 전쟁의 공포를 느끼게 만든다는 점이었습니다.
"전쟁이 나면 그때 벽을 쌓으면 되지 않냐고요?" 안타깝게도 전차의 이동 속도는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방어 벽은 반드시 사전에 설치되어 있어야 하고, 그러면서도 평소에는 요새처럼 보이지 않아야 하는 진퇴양난의 과제가 던져진 셈입니다.
발상을 뒤집은 '위장 주거 공간'의 탄생
평범한 주거 공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군사 요새를 겸하도록 설계된 당시의 독특한 건축 구조입니다.
요새를 숨기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그 자체를 사람이 사는 집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군 당국과 지자체는 벙커 위에 아파트를 얹는 역발상 구조를 채택했습니다.
기반이 되는 1층에는 두꺼운 콘크리트 진지와 벙커를 구축하고, 그 위로 진짜 사람이 거주하는 3개 층의 아파트를 올렸습니다. 유사시 전투가 벌어지면 상부 아파트 구조물을 폭파하여 발생하는 막대한 콘크리트 잔해로 도로 전체를 물리적으로 차단하고, 1층 벙커에 진입한 군전력이 적을 방어하는 작전 개념이었습니다.
그렇게 1970년, 벙커 위에 5개 동 규모로 들어선 이 건물은 도봉구 최초의 시민아파트가 되었습니다. 주민들은 아래층이 폭파 목적의 군사 벙커라는 사실과 상관없이 밥을 짓고 빨래를 너는 평범한 일상을 이어갔습니다.
무너뜨리려던 벙커에서 '평화의 공간'으로
세월이 흘러 폐기된 군사 시설은 시민을 위한 평화의 공간으로 탈바꿈하며 새로운 일상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파트가 노후화되면서 2004년 상부의 주거 층은 모두 철거되었습니다. 하지만 1층의 견고한 콘크리트 벙커는 함부로 부술 수도, 그렇다고 자랑스럽게 공개할 수도 없는 상태로 10년 넘게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치울 수도 덮을 수도 없던 이 공간은 2017년 10월, 다시 한번 발상을 전환하여 '평화문화진지'라는 이름의 시민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습니다. 흉물로 남겨질 뻔했던 콘크리트 벙커의 골조를 그대로 살려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과 시민들의 휴식처로 바꾼 것입니다. 마당에는 분단의 아픔과 극복을 상징하는 베를린 장벽 실제 조각 3개가 함께 세워졌습니다.
파괴와 방어를 목적으로 설계되었던 어두운 군사 유산이, 오늘날에는 과거의 역사를 기록하고 평화를 되새기는 문화적 공간으로 거듭났습니다. 분단의 딜레마를 주거 공간으로 풀어내고, 다시 그 흉터를 문화 공간으로 전환한 도봉동 방호시설은 한국 현대 건축사가 남긴 매우 독특한 역발상의 기록입니다.
FAQ
도봉동 대전차 방호시설 위에 있던 아파트는 실제 사람이 살던 곳인가요?
네, 실제 주민들이 거주했던 도봉구 최초의 시민아파트였습니다. 1층 벙커 위로 3개 층의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으며 1970년에 완공되어 2004년 철거될 때까지 일상적인 주거 공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유사시 아파트를 폭파한다는 것은 어떤 원리였나요?
적 전차가 진입하는 비상시 상부 아파트 구조물을 폭파하여 발생하는 거대한 콘크리트 잔해로 도로를 막고, 1층 벙커 내부에서 방어 작전을 수행하도록 설계된 구조였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평화문화진지는 어떻게 방문하고 활용되나요?
2004년 아파트 철거 후 남겨진 1층 벙커를 2017년에 리모델링하여 시민들을 위한 문화예술 공간 및 전시·휴식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