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시령터널은 개통 초기 이동 시간을 20분 이상 줄인 대표적 성공 사례였지만, 30년 장기 수입 보장 계약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 2017년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통행량이 60% 이상 급감했고, 매년 100억 원대의 세금이 보전금으로 투입되고 있습니다.
- 교통 지형 변화로 불거진 미시령터널 사례는 민자사업을 설계할 때 장기적인 위험 분담 구조가 왜 필요한지 보여줍니다.

도로나 터널 같은 인프라를 구축할 때 지방자치단체는 부족한 예산을 충당하고자 민간 자본을 유치합니다. 하지만 개통 초기 성공적인 민자사업으로 평가받던 터널이, 불과 몇 년 뒤 지방 재정을 압박하는 막대한 부담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그 핵심 원인은 통행량이 미달할 경우 지자체가 부족분을 세금으로 메워주는 수입 보전 계약 구조에 있습니다.
1. 차가 안 다닐수록 세금이 새는 이상한 구조: 민자사업 손실보전의 원리
민간 자본으로 시설을 건설할 때 사업자는 막대한 초기 투자비를 부담합니다. 이때 통행료 수입만으로는 투자금 회수가 어렵거나 통행량 변동 위험이 크면, 지자체는 일정 기간 최소 수입을 보장하는 계약을 체결합니다. 통상 최소운용수입보장(MRG)이나 손실보전금 계약으로 불리는 이 제도는 민간 사업자에게 확실한 수익 안전망을 제공합니다.
지자체 역시 당장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지 않고도 주요 인프라를 조기에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문제는 예측 수입 보장 기간이 보통 30년이라는 장기 계약으로 묶인다는 사실입니다. 통행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그 차액은 온전히 지방정부의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구조가 됩니다.
2. 어디서 오해가 생기는가: 계약 당시의 합리성이 만든 30년의 덫
흔히 이런 손실보전 계약을 두고 '처음부터 지자체가 부실하게 계약을 체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당시 정황을 짚어보면 사정은 조금 다릅니다.
2006년 민간 자본으로 개통한 3.5km 길이의 미시령터널이 대표적입니다. 인제와 속초를 잇는 미시령 고갯길은 겨울마다 폭설로 통제되던 험준한 산길이었습니다. 터널 개통으로 이동 시간이 20분 이상 단축되자, 운전자들은 통행료를 부담하면서도 터널로 몰려들었습니다. 개통 초기 미시령터널은 예측 통행량을 뛰어넘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였습니다. 계약 체결 당시만 해도 30년 보증 조항이 지자체에 큰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한 번 체결하면 30년간 이어지는 계약 기간이 지자체 재정에는 예상치 못한 부담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3. 미시령터널 사례: 고속도로 개통으로 뒤집힌 4,000억 원의 계산서
상황이 완전히 뒤집힌 계기는 2017년 서울양양고속도로 완공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속초로 향하는 통행 흐름이 새로 개통된 고속도로로 대거 이동하면서, 미시령터널의 하루 통행량은 기존 15,000대에서 5,000대 수준으로 60% 이상 급감했습니다.
통행량이 3분의 1 수준으로 토막 났지만, 30년 장기 계약 조항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강원도가 한 해에 부담해야 하는 보전금만 100억 원대로 급증했습니다. 2036년 계약 종료 시까지 추가 지급해야 할 손실보전금은 3,852억 원에 달하며, 이미 지급된 금액까지 더하면 터널 하나에 투입되는 세금만 4,000억 원대에 도달합니다.
통행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세금으로 메워야 할 손실보전금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계약을 다시 변경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자 계약은 법적 구속력을 갖춘 양자 간 계약입니다. 강원도가 사업자 이익까지 보장하는 방식을 운영비만 보전하는 형태로 변경하자고 요청했지만, 민간 사업자가 이를 거부하면서 결국 법정 다툼으로 이어졌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전금 부담을 낮추고자 터널로 연결되는 옛 국도 주변을 관광 도로로 만들어 통행량 자체를 인위적으로 늘리려는 시도까지 등장했습니다. 가만히 앉아 세금을 축내는 것보다 차량 유입을 다각도로 늘리는 편이 낫다는 발상의 전환이지만, 근본적인 계약 위험을 해결하지 못한 임시방편이라는 한계가 명확합니다.
상황이 반전되면서 터널 운영 계약은 지자체에 갚아야 할 막대한 빚으로 돌아왔습니다.
4. 민자 인프라 구조를 바라보는 실전 관전 포인트
미시령터널 사례가 전하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인프라 사업의 성패는 당장의 이동 시간 단축 효과에 그치지 않고, 향후 주변 교통망 변화에 맞추어 계약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앞으로 대형 민자 인프라 사업을 살펴볼 때에는 다음 세 가지 기준을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통행량 예측 모델에 장기적인 대체 인프라(고속도로, 철도 등) 개통 계획이 제대로 반영되어 있는가.
둘째, 통행량 미달 시 사업자의 이익까지 전액 보장해 주는 과도한 수입 보장 조항이 들어있지는 않은가.
셋째, 주변 교통 환경이 바뀌었을 때 운영비 보전 방식으로 수정을 요구할 법적 재협상 장치가 마련되어 있는가.
주변 도로 환경이 바뀌는 순간 안전망이던 계약이 재정 부담으로 급변하는 현상, 이것이 우리가 민자사업의 손실보전 구조를 깊이 이해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FAQ
최소운용수입보장(MRG) 계약이란 정확히 무엇인가요?
민간 사업자가 인프라를 건설·운영할 때 실제 통행료 수입이 사전 예측 수입에 미치지 못하면, 그 부족분을 지방자치단체나 정부가 세금으로 메워주는 수입 보장 제도입니다.
통행량이 60% 이상 줄어들었는데 왜 계약을 바로 수정하지 못하나요?
민자 계약은 지자체와 민간 사업자 사이의 구속력 있는 법적 계약이므로, 한쪽 사정이 변했다는 이유만으로 일방적 변경을 강제할 수 없습니다. 사업자가 거부하면 법정 소송을 거쳐야만 합니다.
지자체가 통행량을 늘리기 위해 우회 국도를 관광길로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손실보전 계약 특성상 통행량이 늘어나야 지자체가 지불할 보전금이 감소하므로, 관광 수요를 창출해서라도 차량 유입을 늘려 세금 지출을 줄이려는 차선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