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풍이 상륙할 때 부산항의 초대형 화물선들은 항구 안에 머물지 않고 넓은 바다로 나가는 외해 피항을 선택합니다.
- 좁은 항만 내에서는 거대 파도로 인해 선박이 부두나 다른 배와 부딪히는 2차 파손 위험이 극대화되기 때문입니다.
- 부산항은 선박대피협의회를 통해 대형선은 바다로 내보내고 소형선은 내항으로 숨기는 정교한 대피 순서를 운영합니다.

태풍 예보가 발령되면 국내 최대 규모인 부산항은 선박을 안으로 끌어모으는 대신 항구를 비우기 시작합니다. 거대한 폭풍우가 밀려오는데 배들이 피난처인 항구를 버리고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로 나가는 현상은 일반적인 상식과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하지만 대형 선박에 있어 태풍 상륙 시 항구 내부야말로 가장 위험한 충돌 구역으로 변하기 때문에 이러한 피항 결정이 내려집니다.
일반적으로 항구는 방파제가 파도를 막아주어 배가 안심하고 쉬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거대한 태풍급 파도가 밀려오면 상황이 완전히 바뀝니다.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 들어오면서 좁은 항만 내부의 물살은 평소보다 훨씬 사나워지고, 선박들이 정박해 있는 수역은 거대한 위협의 장소가 됩니다.
줄을 단단히 묶거나 뭍으로 올리면 되지 않을까?
항구 안에서 배를 더 단단히 묶어두면 안전할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물리적 한계를 간과한 생각입니다. 태풍 파도는 수천 톤에서 수만 톤에 달하는 선박을 쉬지 않고 들었다 놓았다 반복합니다. 이 엄청난 상하동요 에너지를 밧줄이 버텨내더라도, 줄을 고정한 선체나 부두의 갑판 구조물이 뜯겨 나가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항구는 안전한 피난처 같지만, 거센 태풍이 불어닥치면 정박된 배들이 서로 부딪히며 위험한 충돌 현장으로 변하고 맙니다.
또한 굵은 밧줄을 여러 겹 결속하더라도 파도에 흔들리며 선박끼리, 혹은 선박과 콘크리트 안벽이 직접 부딪히는 현상까지 막을 수는 없습니다. 줄이 하나라도 끊어지는 순간 수천 톤급 쇳덩이가 된 배는 항구 안을 통제 없이 떠다니며 주변 크레인과 부두 시설, 다른 선박을 연쇄적으로 파괴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선처럼 배를 육지로 끌어올리면 어떨까요? 작은 어선들은 실제로 크레인을 이용해 육상으로 견인하지만, 수만 톤급 화물선은 이를 들어 올릴 크레인도, 지상에 올려둘 물리적 공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국 묶어둘 수도, 육지로 올릴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지는 셈입니다.
강한 태풍이 몰아치면 아무리 굵은 밧줄로 단단히 고정해도 순식간에 끊어지고 맙니다.
항구를 비우고 먼바다로 나가는 '외해 피항'의 원리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해양 공학은 발상을 뒤집습니다. 배를 항구 안으로 숨기는 대신 태풍이 불어오는 넓은 바다로 내보내는 역발상 해결책을 사용합니다.
넓은 바다로 나간 선박은 뱃머리를 파도가 밀려오는 방향으로 향하게 함으로써 충격을 최소화합니다.
태풍 상황에서 배를 파손하는 진짜 원인은 파도 자체의 에너지보다 파도에 떠밀려 무언가에 부딪히는 이차 충돌입니다. 부딪힐 장애물이 전혀 없는 탁 트인 외해로 나가면 위험의 본질이 사라집니다. 넓은 바다로 나간 선박은 뱃머리(이물)를 파도 방향으로 똑바로 세우고 엔진 출력을 가동해 자체 동력으로 버티면서, 산더미 같은 파도도 안전하게 타고 넘을 수 있습니다.
부산항의 태풍 대피 시스템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태풍이 북상하면 부산항은 즉시 부산항만공사를 중심으로 항만 관계자들이 모여 선박대피협의회를 개최합니다. 회의를 통해 대피 명령이 결정되면 항만 내 선박들은 철저한 우선순위에 따라 항을 비우게 됩니다.
먼저 파도에 닻이 밀릴 위험이 있는 배나 연안에 바짝 붙은 대형 선박부터 순차적으로 먼바다로 출항시킵니다. 이 시점부터 정박지에 새로 닻을 내리는 정박 행위는 전면 금지됩니다.
항구의 물리적 한계로 인해 태풍이 오기 전 대형 선박들은 순차적으로 외해로 대피하게 됩니다.
반면 스스로 외해로 나가 거센 파도를 버티기 힘든 소형 선박들은 항구 가장 깊숙한 안쪽 부두로 밀집시킨 뒤 줄을 이중 삼중으로 보강합니다. 큰 배는 바다로 내보내고 작은 배는 깊숙이 숨기는 정교한 분리 대응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태풍 전날 부산 앞바다에서 도심은 창문을 잠그는데 수평선을 향해 대형 선박들이 줄지어 나가는 독특한 풍경은 이렇게 탄생한 겁니다.
FAQ
태풍이 오는데 바다로 나가는 게 정말 더 안전한가요?
대형 선박의 경우 좁은 항구 안에서 부두나 다른 배와 부딪히는 충돌 위험이 훨씬 큽니다. 장애물이 없는 넓은 바다에서는 배의 뱃머리를 파도 쪽으로 향하게 하고 엔진 출력으로 버티며 파도를 타고 넘을 수 있어 외해가 더 안전합니다.
배를 밧줄로 더 많이 묶어두면 항구 안에서도 버틸 수 없나요?
태풍급 파도는 수천 톤의 배를 지속적으로 들었다 놓기 때문에 밧줄이 견디더라도 밧줄을 고정한 선체나 부두 구조물이 뜯겨 나갑니다. 또한 선박끼리 부딪히는 충돌은 밧줄만으로 막을 수 없습니다.
대형 화물선도 어선처럼 육지로 끌어올릴 수 없나요?
수만 톤에 달하는 대형 화물선은 이를 들어 올릴 크레인도, 지상에 세워 둘 만한 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소형 어선만 육지로 견인하고 대형 선박은 외해로 나가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부산항의 선박 대피 순서는 어떻게 결정되나요?
태풍 예보 시 부산항만공사가 선박대피협의회를 개최하여 대피 명령을 내립니다. 닻이 끌릴 위험이 있거나 연안에 바짝 붙은 선박부터 순서대로 먼바다로 내보내고, 소형 선박은 항구 깊숙한 안쪽 부두로 몰아 정박시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