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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겪은 인생 4대 굴욕이 나를 단단하게 만든 이유

spark_icon7분 지식
  • 피자 배달부터 주유소 알바, 군대 파병 시절까지 20대 무렵 겪었던 네 가지 굴욕적인 순간들을 솔직하게 되짚어본다.
  • 무릎 꿇고 피자를 꺼내던 순간부터 미숙했던 실수와 타인의 시선에서 느낀 열등감까지 숨김없이 고백한다.
  • 당시엔 지우고 싶었던 굴욕들이 결국 타인을 배려하는 가치관을 심어주고 자신을 단단하게 키운 자산이었음을 전한다.

20대 시절을 돌이켜보면 지금도 생각할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순간들이 있어. 누구에게나 지우고 싶은 기억이나 굴욕적인 장면 하나쯤은 가슴속에 남아있잖아? 나에게도 인생을 통틀어 잊히지 않는 네 가지 굴욕 모먼트가 있어. 배달 일을 하던 2002년 무렵부터 주유소 알바, 그리고 군대 파병 시절까지 나를 거쳐 간 난감했던 장면들이야.

안경을 쓴 남성이 야외 거리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무언가를 설명하는 모습이 담긴 셀카 구도의 영상 캡처 화면

20대 시절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꾸리던 그 시절의 추억이 담긴 거리를 되짚어 봤어.

첫 번째 굴욕은 2002년 피자 배달을 할 때였어. 당시에 피자 브랜드에서 '핫박스'라는 보온 가방을 도입했거든. 손님 문앞에 가서 무릎을 한쪽 꿇고 핫박스에서 피자를 직접 꺼내 확인시켜 드리는 게 서비스 매뉴얼이었어. 하루는 모텔로 배달 호출이 떠서 피자를 들고 갔지. 벨을 누르니까 안에서 여자 목소리로 "오빠 나가봐" 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문이 열리는데 거구에 문신이 많은 형님이 몸에 수건 하나만 밑에 달랑 두르고 서 있는 거야. 겁이 나니까 눈도 제대로 못 맞추고 매뉴얼대로 무릎을 꿇은 채 피자를 꺼냈어. 그런데 그분이 "혼자 왔어?" 하더니 "뭐 어때" 하면서 바닥에 수건을 툭 풀어버리더라고. 헬멧을 쓰고 무릎을 꿇은 위치라 고개만 조금 올려도 바로 민망해지는 각도였지. 잔돈을 거슬러 드리는 내내 눈을 둘 곳이 없어 땀을 뻘뻘 흘렸어. 밖으로 나와 스쿠터에 올라타는데 '아, 배달은 이제 그만해야겠다' 싶더라고.

안경을 쓴 남성이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 정면을 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뒷좌석에는 빨간색 어린이용 카시트가 놓여 있다.

손님에게 팁을 요구했다가 크게 혼쭐이 났던 그 시절의 아찔했던 기억을 떠올려봐

두 번째는 중학교 방학 때 주유소에서 알바하며 겪은 일이야. 세차를 마치고 나온 차들의 물기를 수건으로 정성껏 닦아주면 손님들이 고맙다고 팁을 주곤 했거든. 하루는 연속으로 차 세 대를 닦고 팁을 4천 원이나 받았어. 당시 시급이 1,800원이었으니 어린 마음에 너무 신이 나서 사무실 형들과 누나들에게 자랑했지. 그랬더니 "너 이번에도 가서 팁 받아와봐" 하고 부추기더라고.

마침 고급 차 한 대가 들어왔어. 쓰레기도 버려드리고 물도 가져다주며 온갖 애교와 정성을 다했지. 손님이 "학생 참 열심히 하네" 하고 덕담을 건네길래, 나도 모르게 "그러면 저 팁 좀 주세요" 하고 불쑥 말을 내뱉어 버렸어. 그 순간 손님 인상이 싹 굳더니 "뭐? 팁을 달라고? 너 사장 불러와!" 하고 버럭 화를 내시더라고. 너무 놀라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지. 차창을 붙잡고 손이 발이 되도록 죄송하다고 빌어 겨우 넘어갔어. 팁을 달라고 요구하는 건 결국 구걸이라는 걸 그때 뼈저리게 배웠지. 부끄러워서 당장이라도 쥐구멍에 숨고 싶었던 순간이야.

안경을 쓴 남성이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 마이크를 손에 쥐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화면 하단에는 자막이 있다.

배달 아르바이트 시절 겪었던 당황스럽고 잊지 못할 또 다른 에피소드를 떠올려.

세 번째는 대학교 대강당으로 피자 배달을 갔을 때야. 피자 몇 판에 콜라까지 가방에 가득 짊어지고 조용한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갔어. 수십 명의 대학생과 교수님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데, 그 수많은 시선이 일하러 온 나에게 쏠리니까 갑자기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더라고. 솔직히 내 안의 열등감이 불쑥 고개를 든 거였지. 그런데 하필 핫소스를 깜빡하고 두고 온 거야.

교수님은 핀잔을 주고 학생들 시선은 꽂혀 있는데, 핫소스를 다시 가져오자니 왕복하는 사이에 피자를 다 먹어버릴 시간이었어. 강당 한가운데서 아무 말도 못 한 채 서 있던 그 30초에서 1분 남짓한 정적이 아직도 생생해. 결국 그냥 가라는 말에 쫓겨나듯 빠져나왔지. 내 실수로 시작된 일이었지만 여러 사람 앞에서 무안을 당했던 그 기분은 정말 최악이었어. 그래도 이 경험 덕분에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타인에게 면박을 주면 안 된다는 점과, 서비스 노동자를 늘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확실히 마음에 새기게 되었어.

실내에서 안경을 쓴 남성이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 캡처 화면입니다.

어설픈 영어 실력 때문에 겪었던 군 시절의 당혹스러운 기억이 지금의 영어 공부로 이어졌어.

마지막 굴욕은 군대에서 이라크 파병을 갔을 때 생겼어. 쿠웨이트 미군 캠프에 파견되어 있을 때였는데, 당시 나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 했거든. 하루는 중사 한 분이 물건을 쥐여주며 "가서 리펀(환불)해 와" 하고 심부름을 시켰어. 영어를 못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냥 가서 리펀, 리펀 하면 다 해줘!"라며 보냈지. 카운터에 가서 주눅 든 채 "리펀, 리펀" 해봤지만 미군들이 알아들을 리 없잖아.

결국 아무것도 못 하고 돌아왔는데, 마침 옆에 있던 통역병이 함께 가서 상황을 해결해 줬어. 그때 나를 바라보던 그 상사의 '영어도 한마디 못해서 환불도 못 받아오나' 하는 눈빛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 그 속상함과 굴욕감이 오기로 바뀌어 나중에 영어를 악착같이 공부하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지.

돌아보면 그 당시에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고 자괴감에 시달렸던 굴욕들이었어. 하지만 그렇게 부딪히고 깨져본 경험이 있었기에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일찍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 지금 혹시 어처구니없는 실수나 굴욕적인 일 때문에 현타가 오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너무 자책하지 마. 시간이 지나면 다 웃으며 털어놓을 수 있는 멋진 에피소드가 되고, 너를 한층 더 단단한 사람으로 벼려줄 테니까.


FAQ

20대 시절 겪은 굴욕담을 통해 얻은 가장 큰 배움은 뭐야?

당시에는 너무 부끄럽고 이불킥을 차고 싶었던 순간들이었지만, 결국 그 경험들이 타인을 배려하는 가치관을 만들어줬어. 특히 서비스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나 남에게 상처 주지 않는 대화법을 몸소 깨닫는 계기가 되었지.

알바나 일터에서 굴욕적인 실수를 했을 때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실수는 누구나 해. 중요한 건 그 순간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한 뒤,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거야. 시간이 흐르면 그 일도 다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든든한 경험치가 되더라고.

영어를 전혀 못 하던 시절의 굴욕이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되었어?

응, 파병 시절 환불 하나 제대로 못 해서 마주했던 그 서러운 눈빛과 굴욕감이 큰 자극이 되었거든. 그때 생긴 오기 덕분에 나중에 영어를 악착같이 공부하게 되었으니, 결과적으로 나를 성장시킨 좋은 계기였던 셈이지.

어린 나이에 일찍 아르바이트나 사회 경험을 하는 걸 추천해?

정말 추천해. 적은 돈이라도 직접 벌어보고 세상과 부딪혀보는 경험은 책이나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삶의 지혜를 주거든. 내가 무엇을 잘하고 싫어하는지 일찍 깨닫는 좋은 밑거름이 되어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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