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4년 금융위기로 공사가 중단된 45층 빌딩 '토레 다비드'에 2007년부터 3,000여 명의 주민이 정착해 자생적인 수직 마을을 이뤘습니다.
- 국유 자산으로 방치된 빌딩 안에서 주민들은 직접 배관과 전력을 연결하고 자체 상권까지 구축했으나, 2014년 외곽 공공주택으로 대대적인 이주가 진행되었습니다.
- 한국 역시 소유권 분쟁 등으로 멈춰 선 공사 중단 건축물이 수백 곳에 달하는 만큼, 방치된 유휴 공간과 주거 취약계층의 주거난 해결이라는 과제를 시사합니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도심 한복판에는 옥상에 헬리패드가 딸린 45층짜리 초고층 금융센터 골조가 서 있습니다. 본래 대형 은행 본사로 지어지던 이 건물은 1994년 금융위기와 함께 공정률 약 70% 상태에서 공사가 전면 중단되었습니다. 국유 자산이었던 이 버려진 콘크리트 골조 안으로 2007년 10월부터 갈 곳 없는 서민들이 모여들었고, 정부 집계 1,156세대, 외신 추산 약 3,000명이 7년 동안 거대한 '수직 마을'을 이루며 살아가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45층 건물 속 28층의 수직 도시: 무슨 일이 일어났나
건물은 45층 규모였지만 실제로 사람이 거주한 공간은 2층부터 28층까지였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단 한 대도 설치되지 않은 탓에 위쪽 17개 층은 7년 내내 빈 골조로 남았습니다.
이 기묘한 공간의 구조적 한계는 명확한 숫자로 드러납니다. 주차장 램프 경사로를 통해 오토바이가 올라갈 수 있었던 높이는 10층, 주민들이 직접 모터를 달아 올린 수돗물이 도달한 한계는 22층, 그리고 사람이 걸어서 살았던 최고층은 28층이었습니다. 28층 주민은 층고 3.6m 기준으로 매일 약 100m 높이의 계단을 직접 걸어서 오르내려야 했습니다.

베네수엘라 금융 위기 당시 정부가 청산을 결정했던 금융 기관들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이 건물은 주인이 전혀 없던 무주공산이 아니었습니다. 본래 이름은 '센트로 피난시에로 콘피난사스'였으며, 1980년대 금융 호황기 당시 '킹 데이비드'로 불리던 다비드 브리엠부르 회장이 추진하던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러나 1993년 브리엠부르 회장이 사망하고, 1994년 1월 대형 은행 방코 라티노의 파산으로 베네수엘라 전역을 강타한 금융위기 속에서 정부는 GDP의 약 10%에 달하는 66억 달러를 투입하며 부실 금융사를 정리했습니다. 이때 이 미완공 빌딩의 소유권도 정부 예금보험기구로 넘어갔습니다.
2001년 정부는 최저가 6,000만 달러에 매각을 시도했으나 마감 공사와 엘리베이터 23대 설치 비용이 신축보다 더 든다는 이유로 응찰자는 0명이었습니다. 소유주는 국가였지만 사실상 6년 넘게 방치 상태로 놓여 있었던 셈입니다.
왜 이 사건이 벌어졌는가: 극심한 주택난과 도심 방치
2007년 10월, 복음주의 목사이자 주민협동조합 대표인 알렉산더 다사의 주도 아래 초기 200세대가 텐트와 공사 자재를 들고 진입했습니다. 당시 카라카스는 인구 400만 명 중 약 40%가 비공식 정착지(슬럼)에 거주했고, 시내에서만 40만 호 이상의 주택이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도심 내 점거된 건물만 400여 개에 달했으며, '토레 다비드(다비드의 탑)'는 그중 가장 높았을 뿐입니다.

지속적인 화폐 개혁으로 인해 거주자들이 낸 관리비의 가치를 정확히 환산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우고 차베스 정부는 이 점거를 묵인했습니다. 퇴거 조치도, 보수 지원도 없이 방치하자 주민들은 자체적인 생존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 급수 및 하수 체계: 주민들이 펌프 2대를 설치해 11층과 16층 주탱크를 거쳐 22층까지 주 2회 물을 끌어올렸고, 텅 빈 엘리베이터 승강로(샤프트)에 하수관을 연결해 오수를 내렸습니다.
- 관리 조직과 회계: 2009년 공식 주택협동조합을 등록하고 세대당 월 150볼리바르 안팎의 관리비를 걷어 보안·청소 상근 인력 20여 명을 고용했습니다. 임대료는 0원이었지만 공용 관리비는 철저히 징수되었습니다.
- 수직 자치 정부: 거주하는 28개 층마다 '층대표'를 선출해 총회를 운영했고, 일요일 의무 공동 청소 및 자체 출입 통제를 실시했습니다.
- 자체 상권 형성: 계단 이동이 힘든 구조 탓에 각 층 모서리와 세대 내부에 구멍가게(보데가), 미용실, 정육점, 사이버 카페, 심지어 무면허 치과까지 흩어져 입점했습니다. 옥상 테라스 헬스장에는 설치되지 못한 엘리베이터 도르래와 톱니바퀴가 운동기구로 쓰였습니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수상과 '빈곤 포르노' 논란
2012년 제13회 베네치아 국제 건축전에서 취리히 공대 기반의 건축 연구팀 '어반 싱크탱크' 등이 출품한 전시 작품 《토레 다비드: 그란 오리손테》가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으며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심사위원단은 미완공 폐건물에서 새로운 자생적 공동체를 일궈낸 주민들의 생명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토레 다비드의 실상을 연구하기 위해 꾸려진 프로젝트 팀은 1년 동안 현장에 머물며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거센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현지 건축가들은 "난간조차 없어 아이들이 추락사하고 범죄와 갈취가 일상인 열악한 비극의 현장을 선진국 예술가들이 8유로짜리 음식을 파는 배경 무대로 낭만화했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2014년에는 영국의 건축 비평에서 이를 두고 '빈곤 포르노(Poverty Porn)'라는 직설적인 평가를 내리며 선진국 중심의 미화 작업을 강하게 규탄했습니다.
강제 이주와 그 후: 남겨진 상처와 지진 위험
2014년 7월 22일, 베네수엘라 정부는 '오페라시온 사모라'를 개시해 주민들을 카라카스 남쪽으로 50~70km 떨어진 위성도시 '쿠아'의 공공주택 단지로 대대적으로 이주시켰습니다. 물리적 충돌은 없었으나 주민들의 반응은 복잡했습니다. 비록 안전한 주택을 배정받았지만, 도심 직장까지 1시간 이상 걸리는 외곽으로 밀려나면서 "타워에 살 때가 차라리 생계에는 더 나았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주민들이 퇴거한 뒤 건물은 더욱 위태로운 상태에 놓였습니다. 2018년 8월 지진으로 최상부 5개 층이 약 25도 기울었고, 2026년 6월 규모 7.2 이상의 강진으로 상층부 콘크리트 파편이 도로로 추락했습니다. 2026년 7월 카라카스 시 당국은 붕괴 위험 판정을 받은 옥상 콘크리트 고가 수조만 제한적으로 철거했을 뿐, 본체 철거도 완공도 진행하지 못한 채 30년 넘게 방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시사점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요? 국내에서도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된 건물이 2025년 기준 370곳을 넘어섰습니다. 충북 증평, 경북 칠곡 등 전국 곳곳에 수십 년간 멈춰선 아파트와 상가들이 존재합니다.
다만 한국에서는 복잡한 채권·소유권 분쟁과 엄격한 법 집행 탓에 유치권자 일부를 제외하면 빈 건물에 취약계층이 무단 점유하는 일이 사실상 발생하지 않습니다. 대신 수천 명의 주거 취약계층은 쪽방촌과 고시원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비어 있는 300여 곳의 유휴 건물'과 '갈 곳 없는 주거 빈곤층'이 만나지 못하고 각자의 영역에서 방치되는 구조입니다.
토레 다비드는 정부가 공공 자산의 관리 책임을 방기했을 때 도심 유휴 공간이 어떻게 자생적 슬럼으로 변모하는지 보여준 극단적인 사례입니다. 짓지도, 고치지도,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한 채 30년 넘게 흉물로 방치된 45층 콘크리트 골조는 국가와 도시가 주거와 자산 관리를 포기했을 때 치러야 하는 대가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FAQ
토레 다비드는 왜 45층 전체에 사람이 살지 못했나요?
건물 완공 전 공사가 중단되어 승강기가 단 한 대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토바이로 10층까지, 주민 자체 펌프로 22층까지만 물을 올릴 수 있어 실질적인 거주 한계선이 28층에 머물렀습니다.
주민들은 건물에 살면서 임대료를 지불했나요?
소유주인 정부와 임대차 계약이 없어 임대료는 0원이었습니다. 다만 2009년 결성된 주민협동조합에 매달 관리비를 납부해 자체 전기·수도 보수 인력과 보안 인력을 고용해 운영했습니다.
2012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전시가 비판받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난간 미설치로 인한 추락사, 심각한 위생 및 치안 문제 등 주민들의 비참한 실제 거주 현실을 지우고, 빈곤과 불법 점거를 대안적 건축 공동체로 과도하게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