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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년 대학을 휴학하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밴드 음악에 올인했던 청춘의 기록입니다.
  • 홍대 클럽 오디션부터 방송 출연까지 달렸지만, 1년 뒤 마주한 현실적인 수입의 벽 앞에서 활동을 정리했습니다.
  • 무모했던 도전은 버린 시간이 아니라 기획력과 추진력을 키워준 삶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주저 없이 음악을 했던 시절을 이야기할 것 같습니다. 고향인 창원에서 올라와 '창출(창원 출신)'이라는 밴드를 만들고 모든 걸 쏟아부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유튜브를 하고 있으니 남들이 보기에는 '결국 밴드 그만두고 시간만 날린 것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유튜브를 만드는 힘도 그때의 무모했던 경험에서 나왔다고 확신합니다.

가수가 되겠다거나 배우가 되겠다는 말은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처럼 들리곤 합니다. 마치 대통령이 되겠다는 선언처럼 거창하게 느껴지죠. 저 역시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남들이 다 말리는 그 무모한 길을 직접 걸어보고 나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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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해 보였던 음악 활동 시절, 끼니를 때우며 버텼던 그때의 경험은 지금의 나를 만드는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2018년, 중학교 때부터 음악을 함께하던 창원 친구들과 모여 결단을 내렸습니다. "어정쩡하게 하지 말고 제대로 한번 해보자." 그렇게 멤버 전원이 대학에 휴학계를 던지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지방에서 상경한 집 없는 청춘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이자,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이들이 모이는 신림동 대학동 녹두거리에 보금자리를 틀었습니다.

경사가 까마득한 언덕길을 매일 오르내리며 살았습니다. 퇴근길 정육점에 들러 1,200원짜리 냉동 삼겹살 한 줄을 사 와 햇반, 김치와 함께 저녁을 때우던 시절이었습니다. 서울 지리도 잘 몰라 단지 집값이 싸다는 이유로 신림에 보금자리를 잡았지만, 정작 우리의 주 무대는 홍대였습니다. 매번 무거운 기타와 이펙터 가방을 짊어지고 버스를 갈아타며 홍대로 향하는 길은 체력적으로 정말 고되었습니다.


홍대 거리의 낡은 건물 외벽에 'GOGOS2'라고 적힌 라이브 클럽 간판이 붙어 있고, 주변에는 오토바이를 탄 사람과 주차된 차량이 보인다.

음악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시절, 홍대 클럽 무대에 서기 위해 발로 뛰며 오디션을 찾아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뜨거웠습니다. 저는 밴드 공연도 중요하지만 확실한 결과물인 '음원'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음원 주의자였습니다. 누군가 "밴드 한다면서 멜론에 노래는 있어?"라고 물었을 때 당당히 보여줄 수 있는 오피셜한 결과물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전문적인 녹음 기술도, 돈도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집 안에 빨래건조대를 세우고 그 위에 두꺼운 이불을 덮어 나만의 간이 흡음 부스를 만들었습니다. 울리는 소리를 잡기 위해 좁고 더운 이불속으로 들어가 숨을 죽이고 마이크에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앨범을 하나씩 내면서 엔지니어와 소통하는 법, 소리를 다듬는 노하우를 깨우쳐 갔습니다.


거리에서 검은색 셔츠를 입은 젊은 남성이 양손을 펼치며 이야기하고 있고, 배경에는 도로와 건물, 차량이 보입니다.

음악을 하던 시절 녹음을 위해 이불까지 동원했던 열정은 오늘날 콘텐츠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홍대 무대에 서는 과정도 하나하나 배워야 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연고도 없는 홍대 클럽에서 공연하기 위해 평일 오디션을 찾아다녔습니다. 관객이라곤 다른 팀 멤버와 지인 몇 명이 전부인 10여 명 앞의 무대였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평일 무대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으면 주말 공연으로 승격되고, 나아가 라이브 클럽 데이나 락 페스티벌 무대까지 노릴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고고스' 같은 클럽에서 시작해 홍대를 대표하는 밴드 클럽인 'FF' 무대에 처음 섰던 날의 감격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터무니없어 보이던 '가수'라는 꿈도, 결국 작고 구체적인 단계들을 하나씩 밟아나가다 보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무모한 직진은 뜻밖의 기회로 이어졌습니다. 공모전에서 상을 받으며 KBS 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고, TV에서만 보던 여의도 방송국 대기실을 사용해 보기도 했습니다. 경남 지역 신문에 기사가 실리고, 고향인 창원시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창원 컨벤션센터(CECO) 무대에 서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창원 시민의 날 축제' 메인 무대에서 부활, 러블리즈 같은 유명 아티스트들과 함께 공연을 펼쳤습니다. 세상의 중심에 선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조명이 꺼진 뒤 마주한 현실은 차가웠습니다. 1년 동안 뜨겁게 달렸지만, 현실적인 수입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음원 저작권료로 한 달에 10만 원 남짓 들어오는 돈으로는 다섯 명의 멤버가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각자 알바를 병행해야 했고, 처음에 약속했던 '1년의 올인' 기간이 지나자 하나둘 다시 복학을 하고 취업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비닐에 포장된 여러 개의 검은색 밴드 굿즈 티셔츠가 바닥에 어지럽게 놓여 있는 모습이다.

음악 활동을 하며 직접 기획하고 제작했던 굿즈들은 훗날 사회에 나가 사업적 경험으로 인정받는 귀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스타가 되지 못했으니 그 1년은 물거품이 된 시간이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밴드를 운영했던 과정 전체가 하나의 '작은 사업'을 일궈낸 경험이었습니다. 곡이라는 상품을 만들고, 앨범 아트를 직접 디자인하고, 프로필을 만들어 홍보하고, 무대를 기획하는 모든 과정이 실전 비즈니스였습니다.

실제로 함께 고생했던 멤버는 이 밴드 활동에서 얻은 기획력과 추진력을 자소서와 면접에 녹여내어 대기업 입사에 성공했습니다. 저 역시 아무것도 모르던 상태에서 앨범 패키지 디자인과 굿즈 제작을 독학으로 해내며 콘텐츠 제작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그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유튜브 채널을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거대한 세상과 높은 벽을 바라보면 누구나 압도되어 무기력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작고 무모한 도전이라도 직접 부딪히며 하나씩 해내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가능성의 문이 열립니다. 남들이 하지 말라는 길에 도전했던 그 1년은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었고, 지금도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수 있게 만드는 강력한 엔진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FAQ

음악이나 예술 분야 도전을 망설이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무턱대고 모든 것을 걸기보다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기간'을 정해놓고 몰입해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스스로 기획하고 끝까지 실행해 본 경험 그 자체가 훗날 어떤 분야에서든 대체 불가능한 자산이 됩니다.

밴드 활동 경험이 실제 취업이나 유튜브 운영에 어떻게 도움이 되었나요?

음원 제작부터 홍보, 디자인, 공연 기획까지 밴드 운영은 하나의 소규모 창업과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익힌 셀프 브랜딩 능력과 영상·디자인 제작 경험이 취업 면접과 유튜브 콘텐츠 기획의 직접적인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방음 설비가 없는 집에서 홈 레코딩을 할 때 유용한 팁이 있나요?

전문 방음 부스가 없다면 빨래건조대에 두꺼운 이불이나 패브릭을 덮어 좁은 공간을 만드는 방법이 있습니다. 공간의 울림(잔향)을 잡아주어 한결 깔끔하고 선명한 음성 녹음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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