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보문고가 낯선 대화나 시선으로 독서를 방해하지 말아 달라는 이례적인 에티켓 공지문을 내걸었습니다.
- 취향을 나누려던 소수의 만남 시도가 SNS 숏폼을 거치며 서점을 단순한 '번따 성지'로 왜곡시켰습니다.
- 조회수를 위해 공간의 본질을 소모하고 기존 이용자를 밀어내는 흐름은 전형적인 문화적 젠트리피케이션에 해당합니다.

최근 교보문고에 이례적인 공지문 하나가 붙었습니다. "소중한 독서 순간이 낯선 대화나 시선으로 방해받지 않도록 배려해 주세요. 몰입의 시간을 지켜 주세요." 서점이라는 정적이고 사적인 몰입의 공간에 왜 이런 경고성 문구가 걸려야 했을까요? 바로 SNS를 타고 번진 이른바 '교보문고 번따(번호 따기)' 유행 때문입니다.

서점이라는 공간이 본래의 목적을 잃고 낯선 시선과 방해로 얼룩지고 있습니다.
1.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온라인 커뮤니티와 숏폼 플랫폼을 중심으로 교보문고에서 이성의 연락처를 주고받았다는 후기들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성에게 호감을 표현하고 연락처를 묻는 행위 자체가 위법은 아니지만, 그 무대가 다름 아닌 '교보문고'라는 점에서 묘한 위화감을 자아냅니다.
초기에는 책을 좋아하고 취향의 결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던 소수의 진지한 만남 시도였을 수 있습니다. 유흥가나 헌팅포차 같은 자극적인 공간을 꺼리는 2030 세대에게, 조용한 서점에서 자연스럽게 취향을 공유하는 상대를 찾는 일은 나름의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작은 흐름이 온라인에 노출되는 순간, 본질은 빠르게 변질되었습니다.
2. 왜 이 현상에 주목해야 하는가
문제는 이 현상이 대중적 호기심을 끌자마자 SNS 알고리즘과 인플루언서들이 가세해 공간의 성격을 왜곡했다는 점입니다. 인스타그램 릴스와 숏폼 영상에는 '남친 사귀고 싶어서 번따 성지 교보문고 다녀옴', '재테크 코너가 번따 성지인 이유' 같은 자극적인 콘텐츠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교보문고를 헌팅의 성지로 규정하고 이를 유희화하는 SNS 콘텐츠들이 쏟아지며, 서점은 본연의 정체성을 잃고 피로감이 쌓인 공간으로 변질되었습니다.
핸드크림으로 향을 퍼뜨리라거나 책 읽는 척을 하라는 식의 얕은 '공략법'이 공유되면서, 서점의 핵심인 '책'은 부수적인 소품으로 전락했습니다. 책을 읽는 행위는 사라지고 연락처를 주고받는 행위만이 주된 목적이 된 것입니다. 공간 본연의 맥락은 지워진 채, 오로지 이성을 유혹하기 위한 무대로 바뀌었습니다.
3. 현상을 추동하는 알고리즘과 무책임한 조회수 문화
이 사태를 부추긴 주범은 맥락 없이 조회수만을 좇는 SNS 생태계입니다. 실제로 한 인플루언서가 서점에서 번호를 따이기 위해 방문했다는 릴스를 올렸을 때, "서점을 왜 헌팅 성지로 만드느냐, 책 사러 가는 곳이다"라는 비판 댓글이 달렸습니다. 하지만 해당 창작자는 "그냥 콘텐츠인데 '방방봐(방송은 방송으로 봐라)'"라며 무책임하게 넘겼습니다.

공간의 본질을 흐리는 무분별한 콘텐츠 제작에 대해 이제는 피로감을 느끼는 시선이 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교보문고가 어떤 가치를 지닌 공간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알고리즘을 타고 조회수를 뽑아낼 수 있는 자극적인 껍데기만 필요할 뿐입니다. 일각에서는 이런 관심이 독서 시장의 부흥으로 이어지지 않겠느냐고 묻기도 하지만, 책 자체에 관심 없는 이들이 만든 일회성 유행으로 출판 생태계가 살아날 가능성은 없습니다.
4. 누가 피해를 보고 무엇이 파괴되는가
이 현상은 과거 홍대나 연남동에서 일어났던 '젠트리피케이션'과 구조적으로 일치합니다. 독창적인 문화 예술인들이 일궈놓은 거리에 프랜차이즈와 상업 자본이 들어와 원주민을 내쫓았듯, 교보문고에서도 똑같은 '문화적 젠트리피케이션'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피해는 오롯이 독서를 즐기러 서점을 찾은 일반 이용자들에게 돌아갑니다. 책에 집중하고 싶은 순간에도 집요하게 말을 걸거나 시선을 던지는 이들 때문에 불쾌감과 불안을 느끼는 이용자가 늘어났고, 서점 측은 결국 독서를 방해하지 말라는 공지문까지 붙이게 되었습니다. 단물만 취하고 떠나는 SNS 유입자들로 인해 고유한 문화 공간의 평온함이 파괴된 셈입니다.
5. 앞으로 우리가 사유해야 할 질문
물리적인 상권뿐만 아니라 특정 공간의 분위기와 문화마저도 SNS의 단기 소비재로 전락하는 시대입니다. 조회수가 될 법한 문화를 발견하면 본질은 무시한 채 껍데기만 취해 자극적으로 소비하고, 유행이 지나면 황폐해진 공간만 남겨두고 떠나는 행태가 반복됩니다.
우리는 공간이 지닌 고유한 맥락과 타인의 몰입을 존중하고 있는가, 아니면 알고리즘에 휩쓸려 타인의 일상을 콘텐츠의 배경으로 착취하고 있는가. 지금 교보문고에 붙은 작은 공지문은 SNS 과잉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까지 사유하는 사람들을 위한 고요한 식당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도 댓글로 남겨주시면 잘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면 바이.
FAQ
교보문고에 '독서 방해 금지' 공지문이 붙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서점에서 이성의 연락처를 묻는 이른바 '번따'가 SNS 숏폼 트렌드로 번지면서, 독서에 몰입하려는 일반 이용자들에게 원치 않는 대화와 시선으로 인한 불편과 불쾌감을 초래했기 때문입니다.
서점 번따 트렌드를 '문화적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공간 고유의 분위기를 향유하던 기존 이용자들이 조회수와 자극적인 유행을 좇아 몰려든 외부 유입자로 인해 밀려나고, 공간 본래의 문화가 퇴색되는 구조가 상권 젠트리피케이션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헌팅 유행이 독서 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는 없나요?
책 자체에는 관심이 없는 일회성 유행 소비에 그치기 때문에, 실제 독서 인구 유입이나 출판 생태계의 지속적인 성장으로 이어지기는 어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