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일본 하라주쿠 청년들의 자유롭고 독창적인 길거리 패션을 기록하며 세계적인 영감을 주었던 전설적인 잡지 '후르츠'가 2017년 폐간되었습니다.
- 잡지에 실리기 위해 개성을 흉내 내는 연출이 늘면서 거리의 진정성이 흐려졌고, 대형 SPA 브랜드의 진입과 치솟은 임대료로 소규모 인디 상권이 밀려났습니다.
- 스마트폰과 SNS의 대중화로 취향이 알고리즘에 맞춰 획일화되면서, 하라주쿠 특유의 야생적 창의성은 디지털 공간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과거 도쿄의 하라주쿠 거리는 전 세계 패션계에서 가장 파격적이고 창의적인 장소로 꼽혔습니다. 전문적으로 디자인을 배우지 않은 10대와 20대 청년들이 고스롤리, 사이버펑크, 기모노 해체주의 등 어떤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개성을 표출하던 시기였죠. 이 길거리 청년들의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렌즈에 담아 1997년 창간된 전설적인 스트리트 패션 잡지 '후르츠(FRUiTS)'는 전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습니다. 그러나 2017년, 사진작가 아오키 쇼이치는 "더 이상 찍을 만한 멋진 아이들이 남아 있지 않다"라는 말을 남기고 잡지를 전격 폐간했습니다.

기성 패션의 문법을 완전히 깨부수며 전 세계에 큰 충격을 던졌던 하라주쿠 스트리트 패션의 황금기입니다.
세계 패션계를 뒤흔든 하라주쿠의 자생적 반란
후르츠의 등장은 기존 패션 미디어의 문법을 완전히 뒤엎는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유명 패션지들은 파리나 밀라노 컬렉션을 기준으로 이번 시즌의 트렌드 컬러와 필수 아이템을 독자에게 상명하달식으로 전달하던 구조였습니다. 반면 후르츠에는 전문 모델도, 스튜디오 조명도, 화려한 협찬사 광고도 없었습니다.
아오키 쇼이치 작가가 길거리에서 마주친 청년들을 콘크리트 벽 앞에 세워두고 찍은 사진 한 장, 그리고 이름과 나이, 오늘 착용한 옷의 출처와 가격, 현재 빠져 있는 관심사를 담담하게 기록한 것이 전부였죠. 어떤 이는 수백만 원짜리 명품과 동네 구제 숍에서 산 300엔짜리 셔츠를 섞어 입었고, 어떤 이는 유치원생 동생의 장난감 가방을 메고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자생적 에너지는 알렉산더 맥퀸, 존 갈리아노, 제레미 스캇 같은 세계적 디자이너들에게 직접적인 영감을 주었고, 팝스타 그웬 스테파니의 음악과 콘셉트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2001년 세계적인 예술 출판사 파이돈(Phaidon)에서 출간된 영문판 사진집은 서구권 주요 도시에서 수십만 부가 팔려나가며 하라주쿠를 글로벌 서브컬처의 성지로 각인시켰습니다.

보행자 천국이 시행되던 시절, 하라주쿠 거리는 자신들만의 개성을 음악과 패션으로 마음껏 분출하던 청년들의 해방구였습니다.
전후 미군 기지에서 '보행자 천국'까지: 독창적 문화가 싹튼 배경
그렇다면 어떻게 하라주쿠라는 특정 공간에서 이토록 기괴하면서도 매혹적인 패션이 태동할 수 있었을까요? 그 시작은 제2차 세계대전 패망 이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라주쿠가 미군 장교와 가족들을 위한 주거 기지 '워싱턴 하이츠'로 사용되면서 일본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었고, 자연스레 미군을 상대로 한 상점과 저렴한 임대료의 주택가가 형성되었습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부지가 반환된 이후에도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빈티지 의류 상점들이 남았고, 싼 임대료를 찾아 가난한 화가, 사진작가, 패션 디자이너들이 작업실을 차렸습니다. 훗날 세계적 거장이 된 꼼데가르송의 레이 가와쿠보와 요지 야마모토 역시 이 시절 하라주쿠의 낡은 맨션 구석에서 브랜드를 시작했습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1977년 도입된 '보행자 천국' 제도였습니다. 매주 일요일마다 하라주쿠 차도에 차량 통행이 전면 통제되자, 카세트 플레이어와 악기를 든 젊은이들이 쏟아져 나와 춤을 추고 인디 록 공연을 펼쳤습니다. 1990년대 초 버블 경제가 붕괴되자 취업난과 미래에 대한 불안, 엄격한 동조 압력에 지친 청년들은 기성세대의 질서와 과시적인 명품 소비에 저항하며 스스로 옷을 찢고 덧대는 방식으로 내면의 해방감을 분출했습니다.
진정성의 오염과 상업 자본의 침투
영원할 것 같았던 하라주쿠의 독창성은 아이러니하게도 후르츠가 얻은 거대한 명성 때문에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잡지에 실리는 것이 곧 최고의 패션 감각을 증명하는 인증마크가 되자, 전국에서 청년들이 몰려들어 아오키 작가의 동선과 자주 나타나는 벽면을 파악해 서성이는 일명 '아오키 기다리기'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자신의 불안과 내면을 치유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피어났던 개성이 '잡지에 찍히기 위해 일부러 과장되게 꾸미는 연출'로 변질된 것입니다. 진짜와 가짜가 뒤섞이며 대중 역시 거리의 기괴한 옷차림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잡지에 실리기 위해 연출된 개성이 넘쳐나면서 하라주쿠 거리 문화의 본래 모습은 점차 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상업적 환경의 변화가 치명타를 가했습니다. 1998년 유니클로의 하라주쿠 입점을 시작으로 자라, H&M, 포에버21 등 글로벌 SPA 브랜드들이 랜드마크를 장악하면서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독특한 옷을 만들어 팔던 골목길의 인디 빈티지 숍과 개성 있는 신진 디자이너 매장들은 비싼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외곽으로 밀려나거나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스마트폰 시대와 획일화된 취향, 서브컬처의 다음 행보
결정적으로 2008년 전후 스마트폰의 보급과 SNS의 등장은 오프라인 거리 문화의 종말을 앞당겼습니다. 더 이상 사진작가의 눈에 띄기 위해 하라주쿠 길바닥에서 몇 시간씩 서성거릴 필요 없이, 누구나 방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전 세계에 자신을 알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SNS 알고리즘은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는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취향을 복제하고 확산시켰습니다. 그 결과 거리는 평균 이상의 세련미와 깔끔한 핏을 갖춘 사람들로 채워졌지만, 규칙을 부수며 충격을 주던 야생의 창의성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청년들의 에너지가 패션이라는 캔버스에서 스마트폰과 인터넷이라는 디지털 세상으로 옮겨간 셈입니다.
비록 전설적인 잡지 후르츠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최근 일본에서는 '지라이케이'나 '야미카와이'처럼 SNS를 기반으로 새로운 서브컬처 패션이 다시 자라나고 있습니다. 억압된 현실에 맞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고자 하는 젊은 세대의 갈망이 존재하는 한, 형태는 달라질지라도 그들만의 표현 방식은 끊임없이 진화할 것입니다.
FAQ
스트리트 패션 잡지 '후르츠(FRUiTS)'는 어떤 잡지였나요?
1997년 사진작가 아오키 쇼이치가 창간한 잡지로, 도쿄 하라주쿠 거리에서 기성 패션의 문법을 깨고 독창적인 스타일을 선보이던 일반 청년들의 모습을 날것 그대로 담아내며 세계적인 영감을 준 스트리트 스냅 매거진입니다.
후르츠가 2017년에 돌연 폐간된 핵심 이유는 무엇인가요?
잡지에 찍히기 위해 일부러 특이하게 꾸미는 연출이 늘어나며 거리의 진정성이 훼손되었고, 대형 SPA 브랜드 입점으로 인한 임대료 상승과 SNS 대중화에 따른 패션 취향의 표준화가 겹치며 개성 있는 옷차림을 한 청년들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하라주쿠 거리에서 독창적인 패션이 번성할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은 무엇인가요?
전후 미군 기지 주둔으로 빈티지와 이국적인 문화가 유입되었고, 저렴한 임대료 덕분에 신진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후 차도를 개방한 '보행자 천국' 제도와 버블 경제 붕괴 후 청년들의 억압된 심리 분출이 맞물리며 폭발적인 자생 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