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73

동남아도 다 먹는 혁신 신약이 한국에만 7년 늦게 들어오는 이유

spark_icon6분 지식
  • 해외에서 널리 쓰이는 혁신 신약이 한국에는 수년씩 늦게 도입되거나 비급여로 출시되는 '코리아 패싱' 현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기존 저가 약제 중심의 엄격한 약가 평가와 한국 약가가 글로벌 협상 기준이 되는 '참조 가격제' 구조가 제약사의 진입 지연으로 이어집니다.
  • 건강보험 재정 안정과 환자의 신약 접근권 사이에서 점진적 혁신의 가치를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제도적 유연성이 필요합니다.

해외 주요국은 물론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도 널리 쓰이는 혁신 신약이 한국에는 수년씩 늦게 들어오거나 출시 자체를 포기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불면증 치료제 데이비고는 미국에서 2019년에 출시되었으나, 한국에서는 7년이 지난 2026년에야 비급여 형태로 시장에 진입했습니다. 의료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한국에서 최신 신약의 도입이 이처럼 지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 명의 남성이 스튜디오 책상 앞에 앉아 마이크를 사용해 대화하고 있으며, 앞쪽에는 광고 문구가 적힌 패널들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혁신 신약 도입이 늦어지는 배경에는 기존 약물과 단순 비교하는 경직된 국내 약가 평가 체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150원짜리 기존 약물과 단순 비교하는 경직된 약가 평가

신약 도입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국내 건강보험 약가 평가 체계입니다. 현행 제도 아래에서는 기존 치료제 대비 약효가 압도적으로 월등하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면 적정한 약가를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널리 처방되어 온 수면제 성분 졸피뎀은 1정당 약 150원 수준에 불과합니다. 반면 작용 기전과 안전성 프로파일이 전혀 다른 혁신 신약에 대해서도 정부는 기존 저가 복제약의 가격대를 기준으로 삼아 약가 인하를 강하게 요구합니다.

안경을 쓴 중년 남성이 스튜디오 책상에 앉아 마이크를 앞에 두고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으며, 앞쪽에는 방송 로고가 들어간 액자와 이름표가 놓여 있다.

기존 약물 가격에 얽매여 신약 도입이 늦어지는 국내 보건 의료 시스템의 현실을 지적합니다.

신약 개발은 완전히 새로운 우주선을 띄우는 것이 아니라, 기존 약제의 부작용을 줄이고 안전성이나 복약 편의성을 단계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현행 평가 체계는 이러한 점진적 혁신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 약가가 글로벌 기준이 되는 '참조 가격의 덫'

"한국 시장에만 특별히 저렴하게 공급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제약 시장의 가격 결정 구조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한국은 글로벌 제약 시장에서 일종의 표준 참조 국가(Reference Country) 역할을 합니다. 제약사가 한국 시장의 요구를 수용해 낮은 약가로 계약을 맺으면, 다른 국가들과의 약가 협상에서도 "한국에는 이 가격에 공급하면서 왜 우리에게는 비싸게 받느냐"는 연쇄적인 가격 인하 압박을 받게 됩니다.

안경을 쓴 중년 남성이 스튜디오 테이블 앞에 앉아 손을 들어 설명하고 있는 모습으로, 테이블 앞에는 이름과 소속이 적힌 명패와 로고가 새겨진 액자가 놓여 있습니다.

한국의 낮은 약가가 글로벌 시장에서 기준점이 되어 신약 도입을 가로막는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결국 글로벌 제약사로서는 규모가 크지 않은 한국 시장에 낮은 가격으로 진입했다가 글로벌 전체 수익성이 훼손되는 위험을 감수하기 어렵습니다. 특허 만료 시점까지 한국 출시를 미루거나 포기하는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을 선택하게 되는 구조적 이유입니다.

국내 개발 신약마저 한국을 건너뛰는 역설

이러한 약가 정책의 한계는 해외 신약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국내 제약사가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들여 개발한 국산 신약조차 국내 출시를 미루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안경을 쓴 남성 출연자가 스튜디오 책상 앞에 앉아 이야기하고 있으며, 앞에는 로고가 새겨진 액자와 표지판이 놓여 있다.

국내 개발 신약조차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운 약가 체계의 현실을 짚어봅니다.

SK바이오팜이 독자 개발해 미국 뇌전증 치료제 시장에서 성과를 낸 세노바메이트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미국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안착했음에도 국내에서 제시되는 약가가 지나치게 낮아 도입이 장기간 지연되었습니다. 결국 학회와 전문가들의 거듭된 호소 끝에 뒤늦게 국내 출시가 추진되었습니다.

국내 기업이 개발한 혁신 신약조차 자국 환자들에게 제때 공급되지 못하고 미국 등 해외 시장을 먼저 거쳐야 하는 현실은 현행 약가 제도를 재점검해야 할 분명한 이유를 보여줍니다.

비급여 출시와 환자 부담의 가중

약가 협상이 결렬되어 신약이 건강보험 급여에 등재되지 못하면 결국 비급여로 시장에 출시될 수밖에 없습니다.

급여 약제는 정부가 정한 상한 금액과 규정된 조제료가 적용되지만, 비급여 약제는 약국과 유통 단계에서 가격이 자율적으로 책정됩니다. 데이비고의 경우 1정당 약 1,631원의 공급가에 조제료와 유통 마진이 더해져 한 달 복용 시 환자 부담액이 4~5만 원 이상으로 껑충 뜁니다. 여기에 조재료와 수가 조정까지 더해질 것이기에 장기 복용이 필요한 고령층 만성 질환 환자들에게는 상당한 경제적 부담입니다.

두 명의 남성이 스튜디오에 앉아 마이크를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담긴 방송 화면이며, 화면 배경에는 금융 상품 관련 텍스트와 종목 코드가 크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비급여 약품은 약국마다 조제료를 다르게 책정할 수 있어 환자에게 큰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자국 제약사가 개발한 혁신 치료제를 1차 치료 라인에 준하는 수준으로 신속하게 급여화해 환자 접근성을 높이고 산업을 육성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경직된 기준으로 신약의 급여 진입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 재정 안정과 치료 접근권 사이의 균형 과제

건강보험 재정을 건전하게 관리하고 국민 의료비 지출을 통제해야 하는 보건당국의 고충 역시 타당합니다. 한정된 재정 안에서 무조건 높은 약가를 수용하는 것은 재정적 부담을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기적인 가격 통제에만 치우치면 환자들이 최신의 안전한 치료를 받을 권리를 가로막는 결과를 낳습니다. 위험 분담제(RSA) 적용 범위 확대나 약효 개선분에 대한 합리적 가치 보상 등, 재정 건전성을 지키면서도 혁신 신약 도입 지연을 해소할 정교한 제도 개선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FAQ

글로벌 신약이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지연되는 핵심 이유는 무엇인가요?

국내 건강보험 약가 평가가 수십 년 전 개발된 저가 복제약 가격을 기준으로 엄격하게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제약사가 요구하는 가격과 정부 제시 가격 간의 격차가 커 협상이 결렬되거나 장기화됩니다.

제약사가 한국에만 특별히 약을 싸게 공급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국의 약가가 다른 국가들의 약가 협상에서 주요 참조 가격(Reference Price)으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가격을 크게 낮추면 다른 주요국에서도 연쇄적인 가격 인하 압박을 받게 되므로 제약사는 출시 자체를 미루게 됩니다.

비급여로 출시되면 환자에게 어떤 영향이 있나요?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약값 전액을 환자가 부담해야 하며, 약국마다 조제료와 마진을 자율 책정하므로 장기 복용 환자의 경제적 부담이 크게 가중됩니다.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