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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IFA는 본래 유럽 귀족들의 순수한 사교 모임이었으나, 아디다스의 호르스트 다슬러가 각국 임원진을 장악하며 상업 권력 조직으로 재편되었습니다.
  • 다슬러는 정밀한 정보 수집망과 제3세계 표심을 활용해 아벨란제를 회장에 세웠고, 스포츠 마케팅사 ISL을 통해 자금과 권력의 파이프라인을 구축했습니다.
  • 다슬러 본인은 일찍 세상을 떠나고 아디다스의 주인도 바뀌었지만, 그가 구축한 '돈과 표로 연동된 마피아형 시스템'은 오늘날 FIFA에서 그대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FIFA가 오늘날 순수한 축구 연맹이 아니라 수익 극대화와 정치적 로비에 몰두하는 거대 권력 조직처럼 움직이는 이면에는, 과거 아디다스 창업자의 아들 호르스트 다슬러가 구축한 '돈·표·정보'의 공고한 권력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최근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FIFA의 이해하기 힘든 행보가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월드컵 수익권을 전담하는 자회사를 차려 유명 사모펀드에 지분을 매각하려 하거나, 결승전 티켓에 수요에 따라 가격이 치솟는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적용해 수만 달러까지 가격을 매기는 등의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도대체 법적으로 스위스 민법상 비영리 사단법인에 불과한 FIFA가 왜 이렇게까지 돈에 집착하는 걸까요?


화면 왼쪽에는 FIFA의 자회사 지분 매각 추진 논란을 다룬 뉴스 기사 제목들이 나열되어 있고, 오른쪽에는 정장을 입고 안경을 쓴 남성이 마이크 앞에서 대화하는 모습이 담긴 방송 화면입니다.

FIFA가 비영리 단체의 본질을 넘어 수익 극대화에 치중하며 외부 사모펀드와 지분 매각을 시도한 일련의 논란들은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최근 FIFA의 행보가 의아했던 이유: 월드컵 수익권 매각과 상업화

겉으로 볼 때 FIFA는 주식을 발행해 주주에게 배당을 지급하는 주식회사가 아닙니다. 법적으로 영리 추구가 제한된 사단법인이기 때문에, 아무리 월드컵으로 거액을 벌어들여도 지도부나 임원들이 공식적으로 배당금을 챙겨갈 수는 없는 구조입니다.

그러다 보니 수뇌부가 챙길 수 있는 합법적인 몫은 수십억 원대의 연봉과 보너스, 법인카드 비용 정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현실의 FIFA는 전 세계 어떤 거대 기업보다도 지독할 정도로 상업화되어 있습니다. 이 지독한 집착의 뿌리를 파헤치려면, 100년 전 단순한 사교 모임이었던 이 단체가 어떤 계기로 '스포츠 자본주의의 최정점'으로 변질했는지 추적해야 합니다.


오른쪽에는 안경을 쓴 남성이 마이크 앞에서 대화하는 스튜디오 장면이 있고, 왼쪽에는 흑백 사진 속 두 남성의 모습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축구 행정의 거대한 권력을 설계한 아디다스 창업자 형제와 그 이면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귀족들의 사교 모임에서 거대 권력으로: 왜 FIFA의 변신에 주목해야 하는가

1904년 처음 설립될 당시 FIFA는 프랑스와 영국의 신사들이 모여 만든 순수한 사교 모임이었습니다. 참전 경험이 있던 유럽 귀족들은 국가 간 피비린내 나는 전쟁 대신 축구를 통해 우애를 다지고 세계 평화를 모색하자는 명분을 내걸었습니다. 당대의 FIFA는 명예직으로 운영되며 고전적인 품위를 유지하던 단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을 지나며 이 모임의 성격은 근본적으로 흔들립니다. 전환점의 중심에는 정치가도, 전설적인 축구 선수도 아닌 한 신발 회사의 후계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아디다스 창업자 아디 다슬러의 아들, 호르스트 다슬러(Horst Dassler)입니다.

원래 아디다스와 푸마는 한 마을의 다슬러 형제가 갈라서면서 만든 라이벌 기업이었습니다. 초기에는 스타 선수들에게 돈 봉투를 주며 자사 신발을 신기는 일차원적 마케팅으로 경쟁했습니다. 하지만 아들 호르스트 다슬러는 아버지가 하던 방식의 한계를 금방 파악했습니다. 개별 선수를 일일이 따라다니며 설득하는 일은 너무 피곤하고 비효율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두 명의 남성이 서재 배경의 스튜디오에서 책상에 앉아 마이크를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으며, 뒤편 화면에는 'BOOK 언더스탠딩' 로고가 떠 있습니다.

축구 권력의 정점인 FIFA가 어떻게 거대한 이익 집단으로 변모했는지 그 이면을 파헤쳐 봅니다.


선수가 아닌 '임원'을 장악하라: 아디다스 호르스트 다슬러의 판짜기

호르스트 다슬러가 내린 결론은 명쾌했습니다. "선수가 아니라 감독과 축구 연맹 임원을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연맹 임원을 자기 편으로 만들면 공식 용품 계약을 통째로 따낼 수 있고, 판 전체를 아디다스의 영향력 아래 둘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다슬러는 사설 정보기관을 방불케 하는 로비 조직을 아디다스 내부에 구축했습니다. 전 세계 스포츠 임원들의 성향, 정치적 야망, 경제적 사정, 선물 취향은 물론 약점까지 카드 데이터베이스로 체계적으로 수집했습니다. 각국 축구 협회 임원들의 사정을 완벽히 파악한 이 정보망은 훗날 FIFA 회장 선거전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합니다.

1974년 FIFA 회장 선거에서 다슬러는 오랜 유럽 기득권이었던 영국의 스탠리 라우스 회장을 끌어내리기 위해 브라질 출신의 주앙 아벨란제(João Havelange)를 옹립했습니다. 당시 FIFA는 '1국 1표'라는 엄격한 평등 투표제를 채택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축구 변방이라도 유럽 강호와 똑같은 한 표를 행사한다는 점에 주목한 것입니다.

다슬러와 아벨란제는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제3세계 국가들을 집중 공략했습니다. 월드컵 참가국 수를 16개국에서 두 배로 늘리겠다는 파격적인 공약과 함께 현금 지원, 인프라 구축을 약속했습니다. 탈식민지 명분과 아디다스의 든든한 로비 자금이 결합하자 제3세계 표심이 한쪽으로 쏠렸고, 결국 아벨란제가 승리하며 FIFA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정장을 입고 두 손을 모은 제프 블라터 전 FIFA 회장의 모습이 화면 왼쪽에 나타나고, 오른쪽 작은 화면에는 안경을 쓴 남성이 마이크 앞에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 캡처.

아벨란제의 뒤를 이어 FIFA의 수장이 된 제프 블라터는 아첨과 처세에 능한 인물로 평가받으며 조직 내에서 빠르게 입지를 다졌습니다.


ISL이라는 파이프라인: FIFA의 돈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나

권력을 잡은 다슬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1980년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마저 장악하기 위해 스페인 사마란치 위원장의 당선을 물밑에서 지원했습니다. 사마란치 체제의 IOC는 '아마추어만 참가 가능'하다는 기존의 족쇄를 풀어버렸고, 프로 선수의 올림픽 참가를 허용하며 스포츠 시장의 파이를 폭발적으로 키웠습니다.

FIFA와 IOC라는 세계 양대 스포츠 기구를 동시에 손에 넣은 다슬러는 ISL(International Sport and Leisure)이라는 스포츠 마케팅 대행사를 설립했습니다. 일본 최대 광고기획사 덴츠와 합작해 만든 이 회사는 FIFA와 IOC의 중계권 및 마케팅 독점권을 독식하는 구조를 구축했습니다.

메커니즘은 단순하면서도 치밀했습니다. FIFA가 중계권과 스폰서십 권리를 헐값에 ISL로 넘기면, ISL은 이를 글로벌 기업들에 되팔아 막대한 차익을 남겼습니다. FIFA 자체는 스위스 법 때문에 돈을 외부로 유출할 수 없었지만, 외주 마케팅 회사인 ISL에 돈을 몰아준 뒤 스위스 비밀 계좌를 거쳐 각국 스포츠 임원들의 주머니와 선거 자금으로 흘러들어가게 만드는 비자금 파이프라인을 완성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아벨란제 회장의 비리를 파헤치려던 스위스 출신의 고지식한 사무총장 헬무트 캐저는 온갖 정치적 모함 끝에 쫓겨났습니다. 그 빈자리를 채운 인물이 바로 처세에 능하고 다슬러를 스승으로 모셨던 제프 블라터(Sepp Blatter)였습니다.


서재 배경 앞에서 안경을 쓴 남성이 '피파 마피아'라는 제목의 책을 손으로 가리키며 이야기하고 있는 스튜디오 장면

거대한 조직이 마피아처럼 운영되는 과정과 그 이면에 숨겨진 메커니즘을 파헤쳐 봅니다.


시스템은 창업자를 넘어서 남는다: 앞으로 관전 포인트와 새로운 도전

아이러니하게도 다슬러가 정치와 로비전에 매몰된 사이, 본업인 신발 기술 개발은 소홀해졌습니다. 대관 업무를 담당하던 친위대만 승승장구하면서 아디다스의 제품 경쟁력은 떨어졌고, 결국 신생 브랜드였던 나이키에 역전을 허용하고 맙니다. 호르스트 다슬러는 1987년 51세의 나이로 요절했고, 아디다스 지분도 다슬러 가문의 손을 떠나 매각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돈과 표, 로비로 엮인 권력 시스템'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슬러 가문은 아디다스 주식은 매각했을지언정 검은돈의 젖줄이었던 ISL 지분만큼은 끝까지 지켜냈습니다. 다슬러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제프 블라터가 회장직을 이어받아 장기 집권에 성공했던 역사가 보여주듯, 한 번 구축된 'FIFA 마피아' 시스템은 스스로 생명력을 얻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FIFA를 움직이는 본질은 스포츠의 순수한 정신이 아닌, '1국 1표'를 둘러싼 철저한 정치적 셈법과 돈의 흐름입니다. 다슬러가 구축한 기득권 카르텔에 훗날 정몽준 전 FIFA 부회장이 야당의 입장에서 도전장을 내밀게 되는 과정 역시, 이 공고한 마피아 시스템이 얼마나 견고하고 치밀하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또 다른 단면입니다.


FAQ

FIFA는 비영리 단체인데 어떻게 임원들이 막대한 돈을 챙길 수 있나요?

FIFA 자체는 스위스 민법상 비영리 사단법인이라 직접 배당금을 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ISL 같은 외주 마케팅 자회사에 중계권과 마케팅 독점권을 헐값으로 몰아준 뒤, 그 수익을 비공식 로비 자금이나 스위스 비밀 계좌를 통해 각국 임원들에게 분배하는 방식을 썼습니다.

아디다스가 FIFA를 장악하는 데 '1국 1표' 제도가 왜 중요했나요?

FIFA 회장 선거는 강대국이든 약소국이든 똑같이 1표를 행사합니다. 아디다스의 호르스트 다슬러는 축구 인프라가 부족한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제3세계 국가에 지원금과 월드컵 참가권 확대를 약속하면서,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과반수의 표를 손쉽게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아디다스 창업자 가문이 떠났는데도 FIFA 마피아 시스템이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호르스트 다슬러가 단순한 일회성 로비를 넘어, 전 세계 스포츠 임원들에게 자금이 지속적으로 흘러가는 파이프라인과 친위대(제프 블라터 등)를 기구 내부에 이식했기 때문입니다. 창업자가 사라지더라도 돈과 표를 주고받는 내부 이해관계자들의 결속 구조 자체가 이미 자생력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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