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내 독서량 감소에도 불구하고 반스앤노블을 비롯한 오프라인 서점 사업자 수는 최근 4년 사이 70% 이상 증가했습니다.
- 이는 현대인의 외로움 심화와 기존 사교 공간의 감소 속에서 서점이 집과 직장 외의 '제3의 장소' 역할을 맡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서점은 지점별 맞춤 큐레이션과 커뮤니티 이벤트를 강화하며, 서적 판매를 넘어 '머무는 공간'과 디스플레이 광고 플랫폼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미국인 3명 중 1명은 1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고, 10년 전보다 독서량이 줄었다는 응답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국 최대 오프라인 서점 체인인 반스앤노블(Barnes & Noble)은 매장을 거침없이 늘리고 있으며, 미국 내 서점 사업자 수도 최근 4년 만에 70% 증가했습니다. 책을 안 읽는 시대에 오프라인 서점이 급증하는 이 역설의 핵심은 서점이 책 파는 상점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제3의 장소(Third Place)'로 변모했기 때문입니다.
독서량 감소 시대에 서점이 늘어나는 역설
미국 CBS 뉴스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0년 전보다 책을 덜 읽게 되었다는 응답자가 30%를 넘었습니다. 스마트폰 사용과 소셜미디어, OTT 시청 등으로 인해 주의 집중력이 떨어지고 바빠졌다는 것이 주요 이유였습니다. 일반적인 상식대로라면 오프라인 서점은 빠르게 쇠퇴하고 문을 닫아야 마땅합니다.
현대 사회의 깊어지는 외로움을 보여주는 이 삽화는 사람들이 관계 속에서 멀어지고 홀로 시간을 보내는 현상을 반영합니다.
하지만 실제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통념과 전혀 다릅니다. 2019년 사모펀드 엘리엇에 매각되며 파산 위기에 몰렸던 반스앤노블은 2024년부터 매년 60개 이상의 신규 매장을 새로 개장하고 있습니다. 대형 체인뿐만 아니라 동네 독립서점까지 포함한 미국 전체 서점 사업자 수 역시 2021년 약 2,000개 수준에서 불과 4년 만에 70% 가까이 급증했습니다. 책 구매는 온라인으로 대체되었는데 오프라인 서점은 왜 다시 살아나는 걸까요?
'제3의 장소'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사회학자 레이 올덴버그(Ray Oldenburg)가 제시한 '제3의 장소(Third Place)' 개념을 이해해야 합니다. 제3의 장소란 제1의 장소인 '집', 제2의 장소인 '직장이나 학교'가 아닌, 사람들이 부담 없이 모여 사교 활동을 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비공식적인 공공 공간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함께 교류하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공공장소가 점차 사라지면서 현대 사회의 주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 사회는 이른바 '외로움 전염병(Loneliness Epidemic)'에 직면해 있습니다.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고독감을 호소하고 있으며, 하루 평균 타인과 직접 만나 교류하는 사교 시간은 20년 전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기존에 제3의 장소 역할을 하던 동네 바, 나이트클럽, 볼링장, 영화관 등 물리적 휴식 공간들이 인구 대비 지속해서 감소했습니다. 주거비와 공과금 등 물가 상승으로 인해 외출해서 유흥을 즐기는 비용 부담이 커진 것도 주요 원인입니다.
'온라인 쇼핑 때문에 서점이 망한다'는 통념의 허점
많은 사람이 오프라인 서점의 위기를 단순한 '가격 경쟁력'과 '편리성'의 문제로 해석하곤 합니다.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더 저렴하고 집 앞까지 배송되니 오프라인 매장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이는 서점이라는 공간이 지닌 사회적 기능을 간과한 해석입니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소소한 몰입과 사회적 연결을 찾기 위해 다시 주목하고 있는 아날로그적 취미들입니다.
온라인 연결이 과잉된 시대에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물리적 대면 연결과 몰입을 열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디지털 피로감에 지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퀼팅, 베이킹, LP 감상, 버섯 채집 같은 아날로그 취미가 급부상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사람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단순한 상품 구매가 아니라, 돈을 많이 쓰지 않고도 타인과 같은 공간에 머물며 연결감을 느낄 수 있는 안전한 거점이었습니다. 카페마저 음료 가격 상승과 혼잡으로 부담스러워진 상황에서 서점이 그 공백을 메우는 대체재로 떠오른 것입니다.
반스앤노블은 어떻게 공간 플랫폼이 되었나
반스앤노블의 구원투수로 투입된 제임스 돈트(James Daunt) CEO는 매장의 운영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꿨습니다. 과거처럼 본사에서 일괄적으로 책을 배정하고 진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책 선정 및 진열 권한을 각 지점장에게 전격 위임했습니다.
미국 서점들은 책 판매를 넘어 지역 사회와 소통하는 제3의 장소로 변모하며 새로운 활력을 찾고 있습니다.
지역 주민의 특성에 맞춰 동네 서점처럼 큐레이션을 차별화하고, 직원들이 손글씨로 직접 쓴 추천 문구를 붙였습니다. 매장을 찾은 단골 고객에게 개인 맞춤형으로 도서를 추천하며 끊어진 인적 교류를 다시 살려낸 것입니다. 또한 LP 음반 발매 기념 감상회, 북토크, 주말 어린이 스토리타임 등 다양한 커뮤니티 이벤트를 지속적으로 개최하여 서점을 '책을 사는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머무는 공간'으로 전환시켰습니다.
재밌는 건 서점의 수익 모델 구조도 함께 변화했다는 점입니다. 서점에서 책을 구경한 뒤 실제 구매는 온라인에서 하더라도, 수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오프라인 서점 매장은 출판사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디스플레이 광고판(Billboard) 역할을 하게 됩니다. 서점은 서적 판매 마진뿐만 아니라 출판사로부터 받는 주요 진열 매대 광고 수익을 확보하며 안정적인 오프라인 공간 비즈니스로 재탄생했습니다.
공간 비즈니스와 오프라인의 재해석
반스앤노블의 부활은 오프라인 공간 비즈니스를 기획하는 모든 이들에게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이제 오프라인 점포의 경쟁력은 '무엇을 파는가'가 아니라 '어떤 경험과 연결감을 선사하는가'에서 결정됩니다.
자, 정리해 볼까요?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서점이 늘어나는 것은 기괴한 현상이 아닙니다. 파편화되고 고립된 현대 사회에서 오프라인 공간이 줄어들수록, 부담 없이 모여 타인과 온기를 공유할 수 있는 제3의 장소에 대한 희소 가치는 오히려 커집니다. 오프라인 비즈니스의 미래는 단순히 물건을 건네는 유통 채널이 아니라, 현대인의 외로움을 다독이고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공간 플랫폼에 있습니다.
FAQ
독서량이 줄어드는데 오프라인 서점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서점이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외로움과 고립감이 심화된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부담 없이 머물고 교류할 수 있는 '제3의 장소'로 전환되었기 때문입니다.
반스앤노블의 경영 정상화 전략 핵심은 무엇인가요?
본사 중심의 일괄적 도서 공급에서 벗어나 지점장에게 큐레이션 권한을 위임하고, 직원들의 개인 맞춤 추천과 지역 커뮤니티 이벤트를 강화하여 매장을 머무는 공간으로 재구성한 점입니다.
책이 팔리지 않는데 서점은 어떻게 수익을 내나요?
오프라인 매장에 수많은 방문객이 모여들면서, 출판사로부터 서적 노출 및 진열에 대한 디스플레이 광고 수익을 얻는 '광고판 비즈니스 모델'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