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nel_banner
  • 국내 의료 현장에서 연간 100만 건 넘게 쓰이는 뼈와 피부 등 인체조직의 91.6%를 미국 등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 뇌사 상태에서만 가능한 장기 기증과 달리, 조직 기증은 사후 24시간 이내에 이루어지며 단 한 명의 기증으로 수백 명의 환자를 살릴 수 있습니다.
  • 미국처럼 병원의 잠재 기증자 의무 통보 제도를 도입하고, 기증자에 대한 사회적 예우를 강화하는 등 제도적 정비가 시급합니다.

여러분은 큰 수술을 받을 때 몸에 이식하는 뼈나 피부가 어디서 오는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국내에서 기증받았으리라 짐작하기 쉽지만,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놀랍게도 국내 의료 현장에서 쓰이는 수술용 인체조직의 91.6%는 수입에 의존하며, 대부분 미국에서 들여옵니다.

연간 100만 건이 넘는 조직 이식 수술이 이루어지는 의료 강국 대한민국에서, 정작 핵심 재료인 인체조직의 자급률은 한 자릿수에 머물러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 언더스탠딩에서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박종훈 교수와 함께 이 충격적인 수입 의존도의 배경과 의료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깊이 있게 짚어보았습니다.


2023년 국내 인체조직 생산 및 공급 현황을 보여주는 표와 이를 설명하는 전문가가 담긴 화면

국내 인체조직 이식재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현실과 그에 따른 윤리적, 경제적 문제를 보여줍니다.


장기 기증은 알아도 '조직 기증'은 모르는 우리

인체조직 기증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수입에 의존하는 걸까요? 많은 이들이 심장이나 신장을 나누는 '장기 기증'은 잘 알지만, '조직 기증'은 생소하게 여깁니다. 핵심은 장기 기증과 조직 기증의 작동 방식과 기증 조건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입니다.

장기 기증은 환자가 뇌사 상태에 빠졌을 때, 장기가 살아 있는 짧은 골든타임 안에 적출해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기증자를 찾기도, 시점을 맞추기도 매우 까다롭습니다. 반면 뼈, 피부, 인대, 혈관, 각막 등을 나누는 인체조직 기증은 환자가 사망한 후 24시간 이내에 기증하는 방식입니다. 뇌사 상태를 기다릴 필요가 없으며, 사고로 병원 도착 전에 사망한 경우라도 고인의 뜻이나 유족의 동의가 있다면 기증할 수 있습니다.

또한 조직 기증은 면역 처리(탈세포화)를 거치므로 기증자와 수혜자의 혈액형이 달라도 이식이 가능합니다. 뼈 같은 조직은 가공과 냉동 건조 처리를 거쳐 최대 5년까지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어 활용도가 매우 높습니다. 결정적으로 장기 기증은 한 사람이 살릴 수 있는 인원이 제한적이지만, 조직 기증은 단 한 명의 기증으로 수백 명의 환자에게 새 삶의 기회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소중한 자원을 이토록 수입에 의존하고 있을까요?

국가가 통제하자 오히려 꺾여버린 기증률

그렇다면 왜 유독 한국은 기증률이 이처럼 낮을까요? 통계를 보면 격차가 심각합니다. 인구 100만 명당 기증자 수가 미국은 130명에 달하는 반면, 한국은 겨우 3.2명에 불과합니다. 단순히 우리 국민에게 정이 없어서일까요? 그렇게만 보기에는 제도적인 맹점이 존재합니다.


인체조직 기증률을 국가별로 비교한 표와 설명이 담긴 발표 자료 화면

주요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한국의 인체조직 기증률을 보여주는 비교 지표입니다.


과거에는 대학병원 등 민간 영역에서 자체적으로 뼈나 조직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조직은행'이 제법 활발히 운영되었습니다. 예컨대 인공관절 수술 중 잘라내 버리는 뼈를 병원 냉동고에 보관했다가 다른 수술에 요긴하게 재활용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안전성과 투명한 관리를 명분으로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과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을 설립해 관리를 일원화하면서 상황이 묘하게 뒤틀렸습니다.

공공이 관리를 주도하면서 기존 민간 병원의 자율적인 기증 설득 활동과 인프라가 급격히 위축되었습니다. 현장 의료진이나 코디네이터가 기증자를 적극 발굴하고 유족을 설득할 실질적인 유인책이나 제도적 지원이 사라지면서, 통합 관리 이후 오히려 기증률이 하락하는 기현상이 발생했습니다. 관리는 철저해졌을지 몰라도, 기증 자체의 파이가 줄어든 셈입니다.

뼈가 녹아내려도 다시 걷게 만드는 인체조직의 기적

실제 의료 현장에서 이 조직들이 어떻게 쓰이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박종훈 교수의 전공 분야인 뼈암(골종양) 수술에서는 암세포가 퍼진 다리나 팔뼈를 통째로 10cm 이상 잘라내야 하는 상황이 자주 생깁니다. 서까래가 빠진 집처럼 뼈가 사라지면 사람은 제대로 서지도 걷지도 못합니다.


골종양 제거 및 골이식 수술 과정을 보여주는 엑스레이 사진들과 이를 설명하는 전문가의 모습

종양으로 손상된 뼈를 제거한 뒤 기증받은 뼈를 이식해 기능을 회복시키는 수술 과정입니다.


이때 기증받은 타인의 뼈를 정밀하게 재단해 빈자리에 끼워 넣고 금속판으로 고정하는 수술을 시행합니다. 놀라운 점은 이식된 뼈가 세포가 죽어 있는 상태일지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환자 본인의 진짜 뼈 세포와 혈관이 그 틈새로 자라 들어간다는 사실입니다. 수년이 지나면 이식된 경계선이 완전히 사라지고 울퉁불퉁했던 표면이 다듬어지며 환자 자신의 뼈로 완벽히 동화됩니다.

기증된 인체 뼈가 없다면 환자는 다리를 절단하거나, 내구성이 떨어지고 신체에 잘 붙지 않는 인공 금속 보형물에 평생 의존해야 합니다. 피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신 화상을 입은 환자는 자기 피부를 떼어다 붙일 여력이 없습니다. 이때 기증받은 피부로 덮어주지 않으면 감염과 진물로 인해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인체조직은 현대 의학에서 대체할 수 없는 '생명의 불씨'와 같습니다.

미국은 되는데 우리는 왜 안 될까? 시스템의 차이

그렇다면 미국은 어떻게 인구 100만 명당 130명이라는 경이로운 기증률을 기록하며 전 세계에 인체조직을 수출하는 나라가 되었을까요? 철저하게 짜인 의무 통보 체계와 시스템적 접근 덕분입니다.

미국은 병원에서 사망자나 사망 임박 환자가 발생하면, 병원 측이 전국의 구득 기관(OPO)에 이를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법제화했습니다. 보고를 받은 구득 기관의 전문 코디네이터는 즉시 병원으로 출동해 슬픔에 잠긴 유족을 위로하며 기증의 숭고한 의미를 설명합니다. 의사가 직접 유족에게 기증을 권유해야 하는 구조가 아니라, 고도로 훈련된 외부 전문가가 자연스럽게 개입하는 시스템이 정착된 것입니다.

반면 한국은 잠재적 기증자가 발생해도 의료진이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서 유족에게 권유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장례를 준비하는 유족에게 뼈나 피부를 기증해달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정서적 장벽이 너무 높고, 거센 항의를 받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장기 기증과 조직 기증의 코디네이터 체계마저 이원화되어 있어, 장기 기증을 마친 유족에게 다시 조직 기증을 권유하는 유기적 연계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미국산 뼈' 수입이 막히는 날을 대비하려면

사후에 화장을 선택한다면, 한 줌의 재로 사라질 몸의 일부를 나누어 환자들을 살리는 것보다 가치 있는 마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숭고한 가치가 의료 현장에서 실현되려면 명확한 변화가 필요합니다.

첫째, 미국처럼 병원 내 잠재 기증자 발생 시 전문 기관에 즉각 알리는 의무 통보 제도의 도입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둘째, 기증자와 유족에 대한 사회적 예우를 대폭 강화해야 합니다. 기증자를 위한 국립 추모 공원 조성이나 사회적 존경을 보여줄 수 있는 실질적 혜택을 통해, 기증이 '신체 훼손'이 아닌 '영예로운 나눔'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만약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나 환율 폭등으로 미국산 인체조직의 수입이 막힌다면, 당장 내일 아침 수술을 받아야 할 환자들이 수술을 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게 될 것입니다. 인체조직 자급률 제고는 단순한 윤리적 문제를 넘어,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의료 안보의 핵심 과제임을 이제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FAQ

장기 기증 희망 등록을 하면 인체조직 기증도 자동으로 신청되나요?

아닙니다. 장기 기증과 인체조직 기증은 법적 정의와 관리 체계가 서로 다릅니다. 기증 희망 등록을 하실 때는 반드시 '장기 기증'과 '인체조직 기증' 두 항목 모두에 각각 동의하셔야 등록이 완료됩니다.

암 환자나 전염성 질환이 있던 사망자도 조직 기증이 가능한가요?

기증 자체는 사후 24시간 이내에 누구나 신청할 수 있지만, 실제 이식에 쓰이기 위해서는 엄격한 의학적 검사를 거칩니다. 전신성 감염이나 특정 암, 전염성 질환이 있다면 안전성을 위해 기증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습니다. 다만 질환의 종류와 상태에 따라 기증할 수 있는 조직이 다를 수 있어 사후에 전문 기관의 평가를 거쳐 결정됩니다.

조직 기증을 하고 나면 시신이 심하게 훼손되어 장례를 치르기 어렵지 않나요?

흔히 오해하시는 부분입니다. 조직 채취가 끝나면 의료진은 인공 뼈나 보형물 등을 삽입해 시신의 외형을 생전과 다름없이 정성스럽게 복원하고 봉합합니다. 특히 얼굴이나 손처럼 노출되는 부위는 피하고 주로 보이지 않는 등 쪽 피부나 다리 안쪽 뼈를 채취하므로, 장례를 치르는 데 외관상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원본 영상 보기

# 고려대학교의과대학
#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
# 박종훈
# 보건의료정책
# 수술용뼈수입
# 언더스탠딩
# 인체조직기증
# 장기기증
# 조직은행
# 피부이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