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중 200일 넘게 경기가 없는 돔구장은 비어 있어도 냉난방과 관리비로 막대한 고정비가 계속 빠져나갑니다.
- 잠실 돔구장은 행사 날만 기다리지 않고 상시 숙박 수요가 발생하는 비즈니스 호텔과 MICE 단지를 결합했습니다.
- 토론토 로저스 센터와 홋카이도 에스콘 필드의 사례처럼, 경기장 단일 수익을 넘어 365일 돌아가는 복합 소비 공간으로 작동하는 구조입니다.

2032년 문을 열 잠실 돔구장에는 객실 창문 밖으로 그라운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4성급 호텔 306실이 함께 들어섭니다. 침대에 앉아 홈런 타구를 감상하는 이색적인 야구 관람 호텔처럼 보이지만, 이 호텔이 진짜 노리는 목표는 경기 날이 아니라 경기가 없는 날입니다.
겉보기에는 야구팬을 위한 특화 시설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지붕을 덮는 순간 폭증하는 돔구장의 가혹한 유지관리비 청구서를 해결하려는 치밀한 건축·사업적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1년 중 200일이 비어 있는 돔구장의 딜레마
야구장은 구조적으로 1년의 절반 이상이 비어 있는 건축물입니다. 잠실구장을 함께 쓰는 LG와 두산의 정규시즌 홈경기를 모두 합쳐도 1년에 약 144경기에 불과합니다. 열흘 중 나흘 정도만 관중이 차고, 나머지 200일이 넘는 날과 겨울 비시즌에는 관중석이 텅 비는 셈입니다.
야외 야구장이라면 문을 닫아두면 그만이지만, 사방이 막힌 폐쇄형 돔구장은 이야기가 전혀 다릅니다. 경기가 없어도 내부 공기 순환, 적정 온도 유지, 기본 조명과 시설 보수를 쉬지 않고 가동해야 합니다. 실제로 고척스카이돔의 경우 2018년 한 해 운영비만 약 65억 원, 매달 5억 원 이상이 고정비로 지출되었습니다.

야구장이 1년의 절반 이상 비어 있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향후 40년의 운영 성패를 결정합니다.
더군다나 잠실 복합단지는 세금이 아닌 민간 자본 3조 원 이상이 투입되는 민간투자사업입니다. 사업권을 쥔 민간 회사는 시설을 서울시에 기부채납하기 전까지 40년 동안 공사비와 유지비를 회수하고 수익을 내야 하는 절대적인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관람용 특화 시설이 아니라 '상시 가동 엔진'
많은 이들이 야구장 호텔을 '비싼 값에 경기를 보려는 팬들을 위한 프리미엄 관람석'으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경기 관람 수요는 1년에 기껏해야 140여 일에 불과해 막대한 건축비와 운영비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발상을 뒤집은 해법이 바로 호텔입니다. 대형 이벤트는 날을 골라 불연속적으로 열리지만, 잠자리는 매일 필요한 소비재이기 때문입니다.

야구장과 호텔을 결합해 비수기 없이 단지를 상시 가동하려는 수익 모델을 담고 있습니다.
잠실 돔구장 호텔의 전체 306실 중 그라운드를 바라보는 객실은 약 120실입니다. 이 공간들은 다목적으로 교차 가동됩니다.
- 경기 및 공연일: 필드 뷰를 원하는 야구팬과 겨울철 대형 콘서트 관람객이 객실을 채웁니다.
- 행사가 없는 날: 바로 옆에 들어서는 코엑스 2.5배 크기의 대형 전시·컨벤션(MICE) 시설을 찾는 국내외 출장객과 관광객이 침대를 메웁니다.
비어 있는 200여 일의 적자 구멍을 불확실한 대관 행사에만 맡겨두지 않고, 상시 회전하는 비즈니스 숙박 수요로 메우는 구조입니다.
선배 돔구장들이 남긴 교훈: 로저스 센터와 에스콘 필드
경기장과 호텔을 결합한 시도는 잠실이 처음이 아닙니다. 1989년 개장한 캐나다 토론토의 로저스 센터는 개폐식 돔구장에 348실 규모의 호텔을 덧붙여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객실 창문을 관람석으로 쓰는 혁신을 보여줬지만, 초기 공사비가 예산의 4배로 불어나며 1998년 파산 보호를 신청했고 결국 구장과 호텔이 헐값에 분리 매각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로저스 센터는 초기 설계와 달리 운영 비용 문제로 고전하며 재정적인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로저스 센터의 역사는 호텔 하나만 덩그라니 붙인다고 경기장이 저절로 살아나지 않는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객실 소음 차단과 야간 조명 차광 설비 같은 기술적 한계는 물론, 단일 시설로는 거대한 고정비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을 증명한 셈입니다.
그래서 최근의 돔구장들은 경기장을 넘어 '마을'을 짓는 방식을 택합니다. 2023년 개장한 일본 홋카이도의 에스콘 필드는 야구장 내 호텔 객실뿐 아니라 온천, 상가, 레저 시설을 하나의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빌리지로 묶어냈습니다.
365일 작동하는 도시 복합 공간의 탄생
잠실이 선택한 길도 에스콘 필드의 확장판에 가깝습니다. 돔구장 하나만 외롭게 세우는 대신 호텔, 전시장, 오피스, 상업시설을 한 덩어리로 묶어 서로의 빈틈을 채워주도록 설계했습니다.
지붕을 덮는 순간 경기장은 짓는 데도 두 배의 비용이 들고, 비어 있어도 쉼 없이 돈이 빠져나가는 거대한 청구서가 됩니다. 비어 있는 날의 한계를 출장 손님의 하룻밤과 일상적인 도시 소비로 돌파하는 역발상, 잠실 돔구장 호텔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FAQ
경기 중 소음이나 조명 때문에 호텔 투숙객이 불편하지 않나요?
돔구장 내부 소음은 100dB을 넘나들기 때문에 특수 방음 유리와 흡음 커튼, 암막 시설이 기본 설비로 적용됩니다. 로저스 센터의 선례를 바탕으로 조명 차광과 방음 성능을 대폭 강화해 설계합니다.
고척돔처럼 콘서트 대관만으로 적자를 메울 수는 없나요?
고척돔은 시 재정으로 지어져 유지관리비 중심이지만, 잠실은 민간 자본 3조 원 이상이 투입되어 40년 내 원금과 수익을 회수해야 합니다. 비정기적인 콘서트 대관만으로는 365일 발생하는 고정비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라운드가 안 보이는 나머지 객실은 어떻게 활용되나요?
단지 바로 옆에 코엑스의 2.5배에 달하는 대규모 전시·컨벤션 시설이 함께 들어서므로, 비즈니스 출장객과 일반 관광객 수요를 안정적으로 흡수하도록 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