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주차장 의무화 이후 확산된 필로티 구조는 1층 벽체가 없어 지진 횡력과 비틀림에 취약한 약층을 형성합니다.
- 설계자들은 1층 전체에 벽을 두는 대신 계단실 코어에 두꺼운 전단벽을 집중 배치해 횡하중을 전담시키는 방식으로 딜레마를 풀었습니다.
- 2018년 개정 기준에 따라 150mm 이하 띠철근 시공과 감리 사진 검증이 도입되었으나, 기존 노후 필로티 건물의 내진 보강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동네 골목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필로티 빌라는 1층에 벽이 없고 몇 개의 기둥 위에 건물 전체가 얹혀 있는 독특한 형태를 띱니다. 이 구조는 건물에서 가장 무거운 상부 하중을 가장 취약한 1층이 받치는 형국이라, 지진이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파괴 위험에 노출됩니다.
이 건물이 안고 있는 딜레마는 벽을 빼야 주차가 가능하고, 벽이 있어야 지진을 버틴다는 상충 관계에서 출발합니다. 2002년 세대당 주차 공간 확보가 의무화되면서 좁은 대지 위에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1층 벽을 걷어냈고, 그 결과 상부는 벽식 구조로 단단하고 하부는 텅 빈 약층 구조가 골목마다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약층(Soft Story)과 비틀림이 만드는 구조적 취약점
약층이란 인접한 층에 비해 강성이나 내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층을 뜻합니다. 수직으로 누르는 중력 하중은 기둥만으로도 충분히 지탱할 수 있지만, 지진으로 땅이 좌우로 흔들리는 횡하중이 작용하면 역학적 조건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넓적한 벽체는 옆에서 미는 힘에 강하게 저항하지만 가느다란 기둥은 횡력에 취약합니다. 상부 벽체 구간은 지진 시 한 덩어리로 단단하게 거동하는 반면, 기둥뿐인 1층은 상부의 막대한 질량을 떠안은 채 전단력을 집중적으로 받아 심하게 휘청거리게 됩니다.
여기에 계단실의 위치가 편심을 유발합니다. 1층에서 유일하게 단단한 콘크리트 박스인 계단실이 건물 한쪽 구석에 치우쳐 있으면, 지진이 닥쳤을 때 건물이 그 단단한 모서리를 축으로 회전하는 비틀림 현상이 발생합니다. 그 결과 계단실 반대편에 위치한 기둥들은 횡하중에 비틀림 응력까지 더해져 파괴가 가속됩니다.
2017년 포항 지진이 드러낸 시공과 설계의 간극
2017년 포항 지진 당시 다수의 필로티 건물 기둥이 파괴되며 내부 주철근이 밖으로 드러나는 피해가 집중되었습니다. 조사 결과는 단순히 구조 형식 자체의 한계뿐 아니라 현장 시공 규정 미준수의 문제를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기둥 내부의 세로 주철근을 감싸는 띠철근(대근)은 콘크리트가 횡방향으로 터져 나가는 것을 막고 철근의 좌굴을 방지하는 핵심 부재입니다. 당시 피해 건물 상당수는 기둥 단부의 띠철근 간격이 250mm 안팎으로 벌어져 있었거나, 기둥 내부에 빗물 배관을 매립해 유효 단면적을 훼손한 사례가 확인되었습니다. 기준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설계와 시공에서 기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던 셈입니다.
발상을 뒤집은 코어 벽체 집중 설계와 배근 기준
1층 전체에 벽을 세우면 주차가 불가능하고 기둥 단면만 무작정 키우면 공간 손실과 함께 강성 증가로 인한 추가 하중 집중이 발생합니다. 이에 공학자들은 힘을 이기려 하지 않고 맞을 자리를 지정해 주는 역발상을 적용했습니다.

지진 발생 시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균열이 생기는 취약한 구조적 특징을 보여줍니다.
계단실과 승강기 코어 한 구역에 두꺼운 전단벽을 집중 배치해 지진 시 발생하는 횡력을 코어가 전담하도록 분리한 것입니다. 기둥은 수직 하중만 지탱하고, 건물 전체의 횡하중은 강성이 가장 높은 코어 벽체가 대신 흡수함으로써 주차 공간과 구조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했습니다.
현재 설계 가이드라인은 5층 이하 필로티 건물의 벽체 및 기둥 면적 비율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둥 전 구간에 걸쳐 띠철근 간격을 150mm 이하로 촘촘히 감고, 갈고리 끝단을 135도로 꺾어 콘크리트 내부로 정착시키도록 의무화했습니다. 90도 갈고리는 피복 콘크리트 탈락 시 쉽게 풀려버리지만, 135도 갈고리는 지진 하중 하에서도 주철근을 끝까지 결속하기 때문입니다.

필로티 구조의 빌라 1층 기둥은 지진 시 전체 하중을 견뎌야 하므로 더욱 견고한 배근과 설계가 필수적입니다.
제도적 검증 절차와 기존 필로티의 남은 과제
도면상의 수치가 현장에서 누락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8년 12월부터 3층 이상 필로티 건축물은 기초 및 1층 기둥 배근 상태를 감리자가 직접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고 구조기술사의 협력을 받도록 제도가 개선되었습니다. 2층 이상 또는 연면적 200㎡ 이상 건축물로 내진 설계 대상도 전면 확대되었습니다.
다만 이러한 규정은 개정 이후 인허가를 받은 신축 건물에만 적용되며, 이전에 지어진 수많은 노후 필로티 빌라는 여전히 보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기존 건물의 1층에 내진 전단벽을 신설하거나 강판으로 기둥을 보강할 경우 주차 구획이 축소되는 현실적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구조적 안전과 거주 편의성 사이의 균형 있는 관리 방안이 계속해서 요구됩니다.
FAQ
필로티 구조는 지진에 무조건 취약한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코어 벽체를 적절한 위치에 배치해 횡력을 분담시키고, 150mm 이하 띠철근과 135도 갈고리 배근 규정을 정확히 지켜 시공하면 횡하중과 비틀림에 안전하게 저항할 수 있습니다.
기둥에 띠철근을 135도로 꺾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진으로 강한 충격을 받아 콘크리트 표면이 깨져 나가더라도, 135도로 안쪽에 정착된 갈고리는 풀리지 않고 세로 주철근이 바깥으로 휘거나 터지는 좌굴 현상을 끝까지 막아주기 때문입니다.
2018년 이전에 지어진 기존 필로티 빌라는 안전 규정이 적용되지 않나요?
건축법 규정은 소급 적용되지 않으므로 2018년 12월 이전 허가 건물은 강화된 배근 및 사진 감리 기준 대상이 아닙니다. 안전성을 높이려면 철판 압착이나 별도 전단벽 신설 등 사후 내진 보강이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