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바다 참다랑어 양식장은 태풍 방문 시 수십 미터 파도 충격과 물고기 집단 폐사라는 난관에 직면합니다.
- 파도의 에너지가 수면에만 집중되는 물리학적 특성을 이용해 공기를 빼고 깊은 바다로 가라앉히는 부침식 가두리가 개발되었습니다.
- 자연을 힘으로 무작정 억누르지 않고 수심 아래로 피하는 역발상을 통해 태풍 속에서도 안전하게 양식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태풍 예보가 뜨면 먼바다에 떠 있던 참다랑어 양식장이 통째로 바닷속으로 사라집니다. 도망칠 수 없는 바다 한복판에서 태풍을 만났을 때, 파도와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대신 물속 깊은 곳으로 숨어버리는 부침식 가두리 기술입니다.
태풍 앞 수십억 참다랑어가 하룻밤 새 사라지는 이유
참다랑어는 육지 수조에서 키우기 까다로울 정도로 환경에 예민한 수종입니다. 그래서 방파제조차 없는 먼바다 한복판에 거대한 그물 우리를 띄워 키워야 하죠. 문제는 그 먼바다가 하필이면 매년 거센 태풍이 지나가는 길목이라는 점입니다.
거센 파도가 직접 타격하는 수면 위의 가두리는 태풍 앞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2012년 태풍 볼라벤이 제주 앞바다를 덮쳤을 때, 참다랑어 양식장이 그야말로 초토화되었습니다. 수년 동안 정성껏 키운 수십억 원 가치의 물고기들이 단 하룻밤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겁니다. 먼바다 양식의 가장 큰 숙제가 바로 이 태풍의 파괴력이었습니다.
파도와 싸우면 왜 망할까? 버티는 구조가 실패하는 까닭
그러면 질문이 생깁니다. 가두리 틀을 더 크고 튼튼하게 만들어서 파도를 버텨내면 되지 않냐고요? 하지만 물리적인 한계가 명확합니다.
수십 미터 높이의 파도가 들이칠 때 구조물이 그 힘을 모두 받아내면 결국 부서지고 맙니다.
태풍이 몰아치면 수십 미터 높이의 파도가 가두리 틀을 정면으로 들이받습니다. 그 엄청난 에너지를 억지로 버티려다가는 구조물이 버티지 못하고 결국 산산조각이 나고 맙니다. 설령 틀이 부서지지 않고 버틴다 해도 더 큰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거친 파도에 우리가 심하게 요동치면, 내부의 예민한 참다랑어들이 그물 벽에 부딪히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집단 폐사하게 됩니다. 물고기를 지키려고 만든 우리가 오히려 물고기를 잡는 꼴이 되니,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이죠.
수면 아래로 숨어버리는 '부침식 가두리'의 원리
여기서 바다의 중요한 물리학적 성질 하나가 등장합니다. 파도가 가진 가공할 에너지는 대부분 수면 근처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수면 근처에서 강하게 몰아치는 파도는 거대한 에너지를 담고 있어 구조물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곤 합니다.
수면 위에서는 집어삼킬 듯한 파도가 몰아쳐도, 수심 수십 미터 아래는 딴 세상처럼 잔잔하고 정적만 흐릅니다. 그래서 해양공학은 파도와 힘겨루기를 하는 대신 발상을 뒤집습니다. 파도가 미치지 못하는 깊은 바닷속으로 우리를 통째로 내려보내기로 한 겁니다.
수면 아래로 가두리를 가라앉히기 위해 공기를 빼내며 구조물의 부력을 조절하는 원리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침식 가두리'입니다. 구조는 마치 잠수함과 같습니다. 평소에는 수면에 떠 있다가 태풍이 접근하면 틀 내부에서 공기를 빼내어 수심 깊은 곳으로 가라앉힙니다. 태풍이 지나가면 다시 틀에 공기를 채워 수면으로 띄워 올립니다. 어민들은 평상시 먹이를 줄 때만 우리를 물 위로 올려 관리합니다.
동해 매미와 통영 욕지도에서 증명된 깊이의 힘
이 원리는 실제 현장에서 몸으로 겪으며 입증된 기술입니다. 동해 어민들은 태풍 매미 당시 수심 15m 어장에 15m 높이의 거대한 파도가 들이치는 비극을 겪은 후, 가두리를 수심 20m 아래까지 내려보내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필요할 때만 수면 위로 떠올라 먹이를 주는 부침식 가두리는 잠수함처럼 안전한 깊이를 찾아 내려갈 수 있습니다.
경남 통영 욕지도 해역의 참다랑어 외해 가두리 역시 이러한 잠수형 가두리를 도입해 매년 태풍철을 안전하게 넘기고 있습니다. 거친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가두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수면으로 떠올라 밥때를 맞이합니다.
정면 승부 대신 자연의 결을 타는 기술적 역발상
거대한 자연의 힘을 인간의 힘이나 자본으로 무작정 억누르려 하면 반드시 한계에 봉착합니다. 수십 미터 파도의 에너지를 강철 구조물로 막아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자연의 물리적 특성을 역이용하면 아주 명쾌한 해결책이 나옵니다.
도망칠 수 없다면 깊은 물속으로 숨는다는 역발상, 파도의 에너지가 수면에만 머문다는 물리학적 원리를 활용한 부침식 가두리는 이렇게 탄생한 겁니다.
FAQ
부침식 가두리는 태풍이 올 때 어떤 원리로 작동하나요?
잠수함의 원리와 같습니다. 태풍 예보 시 가두리 프레임에서 공기를 빼내어 파도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수심 20m 안팎의 잔잔한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힙니다.
가두리 구조물을 무작정 더 크고 튼튼하게 만들면 안 되나요?
수십 미터 높이의 파도 에너지를 정면으로 받으면 단단한 틀도 결국 파손됩니다. 또한 구조물이 버티더라도 파도에 의한 격렬한 요동 때문에 예민한 물고기들이 그물에 부딪혀 죽게 됩니다.
태풍이 지나간 후 물고기 먹이는 어떻게 주나요?
태풍이 지나가면 프레임에 다시 공기를 채워 수면 위로 가두리를 부상시킵니다. 어민들은 가두리가 수면으로 올라왔을 때 먹이를 지급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