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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방이 높은 그릇 지형인 거제 고현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둑으로 막거나 땅을 돋우어 해결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구조였습니다.
  • 해결책은 물의 유입을 막는 대신 가장 낮은 자리에 692억 원 규모의 배수펌프장을 설치해 시간당 11만 5천 톤씩 퍼내는 속도 제어였습니다.
  • 900mm가 넘는 기록적 폭우에도 물이 도시에 머무는 시간을 3시간으로 단축하며 방재의 패러다임을 '완벽 차단'에서 '체류 시간 통제'로 바꿨습니다.

폭우가 쏟아질 때 도시가 침수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물이 들어오는 양보다 빠져나가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입니다. 경남 거제의 중심가인 고현 일대는 사방이 저보다 높은 전형적인 그릇 모양 지형으로, 비가 오면 도시 전체의 물이 바닥으로 집중되는 입지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지형을 통째로 바꿀 수 없는 상황에서 거제시는 물이 도시에 머무는 체류 시간을 제어하는 배수 구조를 선택했고, 그 결과 기록적인 폭우 속에서도 단 3시간 만에 물을 모두 빠져나가게 만들었습니다.

도시 침수 대응에서 '배수 속도'와 '체류 시간'이 중요한 이유

도시 방재에서 물을 완전히 막아내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특히 산지 비탈 끝자락에 위치하여 사방의 빗물이 모여드는 저지대 도시는 비가 오면 유입량이 유출량을 순식간에 압도합니다. 이때 중요한 핵심 개념이 바로 '물에 잠기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물이 도시에 머무는 시간'을 줄이는 것입니다.

물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하실 침수, 전기 시설 단전, 도로 통제 등으로 인한 피해는 누적됩니다. 반대로 유입되는 물을 빠르게 퍼내어 배수 속도를 극대화하면, 설령 잠시 시가지가 잠기더라도 도시의 기능을 수 시간 내로 복구할 수 있습니다.

물을 막는 기술과 물을 내보내는 기술: 개념의 명확한 정의

전통적인 치수 공학이 차수벽이나 둑을 세워 물의 유입을 차단하는 '유입 차단 기술'에 집중했다면, 현대 도시 방재 공학은 강제 배수 설비와 저장조를 활용해 유출 속도를 늘리는 '유출 속도 제어 기술'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유입 차단은 하천이나 바다처럼 물의 방향이 정해진 곳에서는 유효하지만, 도시 위 하늘에서 직접 떨어지는 강우에는 무용지물입니다. 뚜껑 없는 욕조 안에 비가 내릴 때 욕조 테두리에 둑을 쌓아봐야 내부의 물은 계속 차오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따라서 저지대 도시에서는 물이 낮은 곳으로 모이는 물리 법칙을 역이용하여, 물이 모이는 지점에 강력한 펌프를 달아 바다로 강제 배출하는 역발상이 필요합니다.

둑을 쌓고 땅을 돋우면 방재가 될 것이라는 흔한 오해

흔히 침수 피해가 발생하면 "둑을 더 높게 쌓으면 되지 않냐"거나 "땅을 돋워서 지대를 높이면 되지 않냐"는 대안을 제시하곤 합니다.


물이 가득 차 있는 그릇 모양의 3D 모델 위에 빨간색 화살표가 치수를 표시하고 있으며 하단에 '셈이죠.'라는 자막이 적힌 모습.

주변보다 지대가 낮아 빗물이 모여들기 쉬운 그릇 모양의 지형이 도시 침수를 유발하는 구조적 원인입니다.


하지만 거제 고현의 사례처럼 이미 바다 쪽 매립지가 들어서면서 물길이 좁아졌고, 가장 낮은 그릇 바닥에 백화점, 극장, 터미널 등 핵심 번화가가 밀집해 있는 도시에서는 두 방법 모두 적용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는 둑으로 막을 수 없으며, 이미 형성된 도시의 대형 건축물과 도로망을 통째로 들어 올릴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환장할 노릇인 셈입니다.

3시간 만에 물을 빼낸 거제 고현 배수펌프장의 실제 작동 방식

거제시는 들어오는 물을 막을 수 없다면 나가는 속도를 바꾸기로 결정했습니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원리를 이용해, 물이 제 발로 찾아오는 그릇의 바닥 자리에 대형 배수펌프장을 짓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배수펌프장 내부를 단면으로 보여주는 3D 그래픽으로, 하부의 저수조에서 펌프를 통해 물이 수직 파이프를 타고 올라가 외부로 배출되는 과정을 빨간 화살표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물을 억지로 막기보다 고인 물을 빠르게 퍼내어 외부로 배출하는 배수펌프장의 구조입니다.


이 시설은 2015년 첫 삽을 떠 2018년 완공된 배수펌프장으로, 고현항을 재개발한 민간 사업자가 692억 원을 들여 지은 뒤 거제시에 기부채납한 핵심 방재 인프라입니다. 내부에는 6대의 대형 펌프가 설치되어 있어 고현과 장평 일대 112헥타르에 떨어진 빗물이 모여들면 시간당 11만 5천 톤이라는 엄청난 양의 물을 바다로 퍼냅니다.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서 물이 빠르게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3D 그래픽 영상으로, 화면 중앙에는 '세 시간 만에'라는 텍스트와 함께 빨간색 타이머 그래픽이 겹쳐져 있다.

도시의 가장 낮은 곳에 설치된 강력한 배수 펌프가 엄청난 양의 빗물을 바다로 퍼내며 기록적인 폭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 구조적 역발상은 2026년 8월, 이틀간 900mm가 넘는 폭우와 시간당 최고 124.5mm라는 설계 상한선을 아득히 벗어난 기록적 비가 쏟아졌을 때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비가 너무 쏟아져 잠시 시가지가 잠기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지만, 6대의 펌프가 풀가동되면서 단 3시간 만에 시가지의 물이 모두 빠져나가는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한계를 인정하고 시간을 제어하는 도시 방재의 역발상

거제 고현의 사례는 자연의 힘을 무작정 억누르려 하지 않고, 물리학적 한계를 담담히 인정한 뒤 이를 역이용한 명쾌한 공학적 해법을 보여줍니다.

자연재해의 규모가 기존 도시 설계의 범위를 넘어서는 시대에는 '100% 침수 방지'라는 불가능한 목표 대신 '피해 최소화 및 신속한 배수'라는 현실적인 목표가 훨씬 강력하게 작동합니다. 도시의 가장 낮은 자리에 강한 심장을 달아 물이 머무는 시간을 바꿔놓은 배수 시스템, 포구 앞 거제 고현의 마른 길바닥은 이렇게 탄생한 겁니다.


FAQ

거제 고현 일대는 왜 비만 오면 침수 위험이 높았나요?

고현 일대는 주변 산지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비탈 끝자락에 위치한 저지대로, 사방이 높은 그릇 모양 지형입니다. 해안 매립으로 물길이 좁아진 데다 가장 낮은 자리에 번화가가 들어서 물이 쉽게 고이는 구조였습니다.

왜 둑을 쌓거나 땅을 높이는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나요?

도시 위 하늘에서 직접 내리는 빗물은 둑으로 막을 수 없으며, 이미 백화점과 터미널 등 주요 시설이 들어찬 도시 전체의 지반을 들어 올리는 것 역시 물리적·경제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고현 배수펌프장의 배수 능력은 어느 정도인가요?

총 6대의 대형 펌프가 가동되며, 시간당 11만 5천 톤의 빗물을 바다로 강제 퍼낼 수 있는 성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폭우 당시 침수를 완전히 막지 못했는데도 성공적인 방재로 평가받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설계 기준을 크게 뛰어넘는 폭우로 일시적 일수가 발생했으나, 배수펌프장이 물이 도시에 머무는 체류 시간을 3시간으로 단축시켜 도심 기능 마비와 누적 피해를 최소화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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