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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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사람 피까지 수출할까?

spark_icon7분 지식
  • 인공 합성이 불가능한 필수 의약품 원료인 혈장을 미국은 유료 채혈 제도를 바탕으로 전 세계 수요의 70% 이상 공급하고 있습니다.
  • 대다수 선진국이 윤리와 감염 위험을 이유로 유료 매혈을 금지한 사이, 미국은 저소득층 밀집 지역의 채혈 센터와 보상 제도로 독점적 공급망을 구축했습니다.
  • 윤리적 무상 헌혈 원칙을 지키는 국가들조차 결국 미국산 유료 혈장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적 역설에 직면해 있습니다.

미국의 주력 수출 품목 순위를 살펴보면 자동차, 정유, 반도체, 항공기 같은 전통 제조업·첨단기술 제품 사이에 이색적인 품목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바로 사람의 피에서 세포를 걸러내고 남은 노란색 액체, 혈장(Blood Plasma)입니다. 현재 전 세계 의약품 제조에 투입되는 혈장의 약 70%가 미국인의 몸에서 나오고 있으며, 유료 혈장 시장으로 좁히면 미국의 점유율은 94%까지 치솟습니다.

투명한 비닐 팩에 담긴 노란색 혈장이 클로즈업되어 있으며 화면 왼쪽에는 '혈장'과 '석탄'이라는 글자가 적힌 수출 품목 순위 표가 있다.

미국의 주요 수출 품목 목록을 살펴보면 자동차나 반도체 같은 제품들 사이로 이색적인 품목인 혈장이 상위권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대다수 국가는 인간의 존엄성과 혈액 오염 방지를 이유로 피를 사고파는 행위를 법으로 엄격히 금지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유료 보상을 허용할 뿐만 아니라 연간 최대 104회까지 채혈을 승인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사람의 혈액 성분이 석탄이나 금에 필적하는 거대 수출 상품으로 자리 잡는 독특한 공급망이 형성되었습니다.

대체 불가능한 원료와 상업화의 구조

혈장이 거대한 글로벌 시장을 형성한 근본적인 이유는 화학적 인공 합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혈장 안에는 감염병을 방어하는 항체인 면역글로불린과 피를 멎게 하는 혈액응고인자 등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단백질이 들어 있습니다. 면역 결핍증 환자나 혈우병 환자는 평생 이 단백질을 외부에서 투여받아야만 생존할 수 있습니다.

공장에서 원료를 합성할 수 없다면 산업 경쟁력은 기술력이나 설비가 아니라 원료(사람)를 얼마나 규칙적이고 대량으로 확보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통상적인 수혈용 전혈은 보관 기간이 짧아 국가 간 무역이 불가능하지만, 혈장에서 추출·정제한 단백질 치료제는 장기 보관과 장거리 운송이 가능합니다. 이 분리 기술이 확립되면서 혈액은 지역 의료 자원을 넘어 국경을 넘나드는 고부가가치 무역 상품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어두운 조명 아래 팔에 정맥주삿바늘이 꽂혀 있고 투명한 튜브가 연결된 모습

미국 내 혈장 채혈 센터들이 저소득 지역에 밀집해 있는 입지 전략 뒤에는 이처럼 독특한 상업적 공급망이 숨어 있습니다.

규제의 차이가 만들어낸 미국의 절대적 공급 독점

이 산업의 글로벌 판도를 가른 결정적 요인은 바이오 기술 격차가 아닌 단 한 줄의 법적 규정이었습니다. 영국, 캐나다, 호주, 한국 등 대다수 선진국은 자발적 무상 헌혈 원칙을 고수합니다. 반면 유료 채혈을 허용하는 국가는 미국,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등 소수에 불과하며, 그중에서도 규제가 가장 유연하고 인구 규모가 큰 미국이 글로벌 공급의 절대다수를 책임집니다.

무상 헌혈은 기증자의 선의에 의존하기 때문에 공급량 예측과 대량 조달이 어렵습니다. 반면 회당 3만~6만 원 수준의 현금 보상을 지급하는 미국 채혈 센터는 공급의 규칙성을 확보했습니다. 2024년 말 기준 미국 전역에 1,200곳 이상의 채혈 센터가 운영 중이며, 이들 중 약 80%가 저소득층 밀집 지역과 국경 지대에 전략적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청년층과 저소득층이 생활비나 학자금 대출 상환을 위해 채혈에 참여하면서 안정적인 대량 공급망이 완성된 셈입니다.

그리폴스(Grifols) 기업의 채열 센터 400곳 운영과 세계 혈장 시장 25% 점유율을 보여주는 인포그래픽 화면입니다.

세계 혈장 시장을 주도하는 그리폴스는 압도적인 인프라를 바탕으로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혈장 분획제제 시장은 미국의 원료 독점을 기반으로 스페인의 그리폴스(Grifols), 호주의 CSL 베링(CSL Behring), 일본의 다케다(Takeda), 스위스의 옥타파마(Octapharma), 이탈리아의 케드리온(Kedrion) 등 5대 글로벌 제약사가 과점하고 있습니다. 1리터당 약 150달러의 비용으로 채취된 혈장은 고도화된 정제 및 바이러스 불활성화 공정을 거쳐 글로벌 시장에 수 배 이상의 가격으로 공급됩니다. 2024년 약 358억 달러 규모로 추산되는 이 시장은 진단 기술 발전과 고령화에 힘입어 2034년 약 800억 달러 규모까지 성장할 전망입니다.

무상 헌혈 원칙을 지키는 국가들이 마주한 현실적 모순

이러한 공급 구조는 국제 보건 시스템에 깊은 윤리적 역설을 던집니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는 생명 윤리와 안전을 위해 매혈을 금지하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자국 내 수요를 채우지 못해 치료제 원료의 상당 부분을 미국산 수입 혈장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한쪽이 지키는 윤리적 무상 원칙이 다른 쪽의 상업적 유료 채혈 시스템에 기대어 지탱되는 구조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인체 유래물의 상업화가 빈곤층에 대한 경제적 착취로 이어질 수 있으며 잦은 채혈이 기증자의 장기적 건강에 미치는 위험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고 경고합니다. 반면 유료 채혈 옹호론자들은 유료 시스템 없이는 수많은 희귀 질환자의 치료제 수급이 즉각 붕괴할 것이며, 단기 급전이 필요한 계층에게는 고금리 대출 대신 합법적인 소득 보완 수단으로 작동한다는 실증 연구를 제시합니다.

향후 글로벌 혈장 공급망의 과제와 변화

고령화와 면역 질환 진단율 증가로 글로벌 혈장 수요는 계속해서 급증하고 있습니다. 미국 중심의 단일 공급망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는 감염병 유행이나 물류 차질 시 전 세계적인 필수의약품 품귀 사태를 부를 수 있는 잠재적 취약점으로 지적됩니다.

이에 따라 캐나다 일부 주처럼 무상 헌혈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혈장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부분적으로 유료 채혈 모델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향후 글로벌 바이오 정책의 핵심 과제는 인도적 기증 원칙과 필수의약품 공급 안정성이라는 두 현실적 가치 사이에서 어떤 제도적 균형점을 찾아낼 것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FAQ

미국은 왜 수혈용 피와 의약품용 혈장의 채혈 규정을 다르게 적용하나요?

수술에 직접 쓰는 수혈용 혈액은 오염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무상 헌혈로만 받습니다. 반면 혈장 분획제제 원료는 고도화된 멸균 및 정제 공정을 거쳐 바이러스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어 안전성 확보가 가능하므로 유료 수집을 허용합니다.

혈장 치료제의 핵심 성분을 화학적으로 합성할 수는 없나요?

면역글로불린이나 알부민 같은 혈장 단백질은 분자 구조가 매우 복잡하고 인간 면역 체계와 직접 상호작용하므로 현재 기술로는 인공 합성이 불가능합니다. 오직 사람의 혈액에서만 추출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왜 유료 혈장 채혈을 전면 금지하고 있나요?

대한민국 혈액관리법은 혈액의 상업적 거래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과거 매혈 과정에서 발생했던 혈액 오염 사고를 방지하고 생명 윤리를 지키기 위한 조치이지만, 이로 인해 부족한 혈장 분획제제 원료는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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