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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이트 와인은 숙성 후 생기는 부케보다 개봉 시 즉각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1차 향인 아로마가 생명이기에, 향이 사라진 와인은 요리용 외에 가치가 없습니다.
  • 달콤하고 시큼한 밸런스의 독일 모젤 리슬링과 톡 쏘는 풀 향과 높은 산도의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은 여름철 식사 및 어패류 페어링의 완벽한 해답입니다.
  • 남아서 김이 빠지거나 맛이 간 화이트 와인은 훌륭한 벨기에식 홍합탕 베이스로 재탄생시키고, 가벼운 스파클링은 아페롤과 섞어 스프리츠 칵테일로 즐길 수 있습니다.

화이트 와인을 마시며 "아, 맛있다"라는 막연한 감탄사만 내뱉고 계셨습니까? 화이트 와인의 진짜 매력은 입안에 머금기 전, 잔을 흔들 때 코끝을 강타하는 영롱하고 정교한 '1차 향(아로마)'에 있습니다. 이 본질적인 향의 차이를 모른 채 와인을 마시는 것은 그 가치의 절반을 길바닥에 버리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사주에서 인간의 기운을 분석하듯 와인도 오감을 동원해 그 개성을 발라내야 합니다. 특히 무더운 계절이 다가올 때 차갑게 칠링된 화이트 와인을 제대로 고르고 즐길 줄만 알아도 인생의 윤택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솟습니다. 귀족 품종들의 속사정부터 맛이 가버린 낙오자 와인을 구제하는 실전 팁까지 한 번에 정리해 드립니다.

화이트 와인에 애정을 가질 때 일어나는 변화들

만약 여러분이 레드 와인의 묵직하고 떫은맛에 길들여져 있다면, 화이트 와인은 그저 가벼운 음료 정도로 치부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화이트 와인은 레드 와인에 비해 알코올 도수가 대략 2도 이상 낮아 술이 약한 사람들도 큰 부담 없이 마실 수 있습니다.

진짜 강력한 강점은 한식이든 일식이든 아우를 수 있는 음식 스펙트럼이 아주 넓다는 점입니다. 가격 또한 합리적인 선택지가 널려 있고 접근성도 훌륭합니다. 격식을 차리지 않고 가볍게 홈술을 즐길 때나 파티의 오프닝을 열 때 화이트 와인만 한 치트키가 없습니다.

'아로마'가 없는 화이트 와인은 수명이 끝난 시체다

화이트 와인을 논할 때 절대 헷갈리지 말아야 할 핵심 개념이 바로 '아로마(Aroma)'입니다. 와인의 향은 크게 포도 자체에서 오는 1차 향인 아로마와 숙성 과정에서 오크통 등과의 상호작용으로 피어나는 2차, 3차 향인 '부케(Bouquet)'로 나뉩니다. 장기 숙성을 전제로 하는 묵직한 레드 와인에서는 부케의 비중이 큽니다. 반면, 대부분의 화이트 와인에서는 처음 병을 땄을 때 바로 터져 나오는 과일향과 풀향 같은 아로마가 절대적인 생명 줄입니다.

이것이 흔히 범하는 혼동의 시작점입니다. 화이트 와인은 보통 생산된 지 2년 안에 다 소비해야 하는 대중적인 품종이 대다수입니다. 이 시기를 놓쳐 아로마를 잃어버린 화이트 와인은 상하지 않았더라도 그냥 맹물에 알코올만 섞어 놓은 무미건조한 액체에 불과합니다. 코를 갖다 댔을 때 아무런 과일 향도 느껴지지 않고 알코올 부즈만 튄다면, 아쉽지만 와인으로서의 생명력은 완전히 끝난 상태입니다. 그런 와인은 미련 없이 조리용으로 넘기셔야 합니다.

리슬링은 가볍고, 샤도네이는 지루하다는 오만

품종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품는 또 다른 왜곡된 통념이 있습니다. 바로 리슬링은 저렴한 단물에 불과하고, 샤도네이는 지루하고 흔해 빠진 화이트라는 편견입니다.

우선 독일을 대표하는 품종인 리슬링(Riesling)은 추위에 졸라 강하고 과일향이 풍부한 최고급 품종입니다. 비록 입문용 리슬링은 달콤함 뒤에 신맛이 살짝 도는 형태가 흔하지만, 수확 시기와 수분의 증발 정도에 따라 카비네(Kabinett) -> 슈페트레제(Spätlese) -> 아우스레제(Auslese) -> 베렌아우스레제(Beerenauslese) ->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TBA) 등으로 등급이 올라갈수록 몸값은 상상을 초월하게 치솟습니다. 최고급 명가들의 고급 등급은 한 병 소매가가 180만 원을 가볍게 상회할 정도로 살벌한 귀족 대접을 받습니다. 리슬링을 그저 '달콤하고 저렴한 와인'이라 낮잡아 보다가 큰코다치기 십상입니다.


독일 모젤 지역의 닥터 루젠 리슬링 와인병 사진과 그 옆에 알코올 도수, 권장 음용 온도, 평가 점수 등 주요 정보가 적힌 영문 및 국문 텍스트 화면

독일 화이트 와인을 대표하는 리슬링의 생생한 특징과 매력을 확인할 수 있는 와인 정보입니다.


양대 산맥인 샤도네이(Chardonnay) 역시 재배 지역에 따라 완전히 다른 괴물로 변신합니다. 프랑스 브루고뉴를 중심으로 청량하게 빚어진 샤도네이는 산도가 날카롭고 미네랄이 서슬 퍼렇게 날 서 있지만, 뜨거운 햇살을 받고 오크통 공정을 거치며 완성된 캘리포니아 샤도네이는 버터처럼 녹진하고 묵직한 크리미함으로 입안에 쩍쩍 달라붙습니다. 극과 극의 질감이 하나의 품종 안에 공존하는 것입니다.

여름의 지배자와 전설 속의 귀족

리슬링과 대비되는 개성의 결정판이자 이른바 '여름의 화이트'라 불리는 존재가 바로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입니다. 비가 개고 난 뒤 잔디밭에 코를 대고 누웠을 때 나는 까실까실한 풀내음, 피망 향, 심지어 매니아들이 열광하는 '고양이 오줌 냄새' 같은 기구한 향의 지평을 품은 녀석입니다.

이 품종은 원래 프랑스 루아르나 보르도가 본진이었지만, 변방으로 취급받던 뉴질랜드 남섬 말보로 지역에 심어지면서 세계적인 히트 상품으로 폭발했습니다. 스텐 와인통에서 숙성해 청량하고 차갑게 마시면 어패류나 갑각류의 특히 잘 어울려 최고의 궁합을 보여줍니다. 치즈와 어울려 마셔도 크리미함을 강한 밀도로 끊어주어 완벽한 마리아주를 발휘합니다.


실내에서 강사가 스크린의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가리키며 청중에게 와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며 화면 옆으로 빌라 마리아 와인 병이 크게 합성되어 있다.

뉴질랜드 와인을 세계적으로 알린 빌라 마리아의 소비뇽 블랑을 통해 품종의 개성을 함께 살펴봅니다.


그리고 마침내 전 세계 모든 화이트 와인의 정점에 서 있는 황제, 부르고뉴의 몽라셰(Montrachet)가 있습니다. 소설 삼총사의 작가 뒤마가 "몽라셰를 마실 때는 모자를 벗고 무릎을 꿇어야 한다"라고 극찬했던 바로 그 전설의 술입니다. 한 병당 백 몇십만 원을 호가하는 살벌한 가격을 자랑합니다.

저도 평생에 단 딱 한 번 마셔봤습니다. 와인을 잘 모르는 친구가 150만 원짜리 명품 몽라셰와 15만 원대 하위 등급인 퓔리니 몽라셰 와인을 한 병씩 사 왔는데, 어떤 게 비싼 건지 이름을 헷갈려 하는 틈을 타 모르는 척 비싼 녀석을 시원하게 오픈한 기억이 아주 또렷합니다. 딱 첫 잔을 넘겼는데, 내 혀 위에 투명하고 정교하게 조각된 기하학적 유리궁전 미니어처가 사뿐히 올라서 있는 듯한 완벽한 조형미가 느껴졌습니다. 가히 생애 최고이자 독보적인 촉감이었습니다. 독보적인 감각은 아는 만큼, 그리고 대담하게 지르는 타이밍 안에서 소유할 수 있는 법입니다.

맛이 간 화이트 재활용과 10분 칵테일 제조법

1. 전사한 와인으로 만드는 파리지앵 홍합탕

아로마를 다 잃어버리고 가버린 화이트 와인을 아깝게 하수구에 쏟지 마십시오. 수퍼에서 헐값에 파는 싱싱한 홍합을 사 와 통째로 들이부은 뒤 이 맛이 간 와인과 마늘을 넣고 자작하게 찌면 훌륭한 벨기에 및 프랑스식 '화이트 와인 홍합찜'이 탄생합니다. 알코올은 날아가고 홍합의 비린내를 와인이 완벽하게 통제하면서 정말 깊고 시원한 육수가 흘러나옵니다.

2. 가성비 끝판왕 식전주, 아페롤 스프리츠(Aperol Spritz)

이탈리아인들이 노천 카페에서 죄다 오렌지 오렌지한 잔을 들고 마시는 광경을 보셨을 겁니다. 화이트 와인과 스파클링을 가장 트렌디하게 소비하는 비법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완벽한 홈메이드 비율: 이마트 같은 곳에서 만 원대로 파는 가장 드라이하고 싼 스파클링 와인 '프로세코(Prosecco)' 한 병을 구매합니다.
  • 여기에 오렌지 계열 리큐어인 '아페롤(Aperol)'을 섞습니다.
  • 얼음을 잔뜩 넣고 프로세코 대 아페롤 대 탄산수를 취향껏 대략 1:1:0.5의 비율로 붓고 오렌지 슬라이스를 얹어 주면 끝납니다.

정해진 완벽한 비율의 절대 법칙은 없습니다. 알코올을 낮추고 더 시원하게 마시고 싶다면 탄산수와 얼음 비중을 높여 자기만의 방식으로 맛있게 제조해 버리면 그만입니다. 사다 마시는 가격의 오분의 일도 안 되는 돈으로 손님을 대접할 때 마치 유럽 파티장에 온 듯한 졸라 있어 보이는 감성을 완벽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화이트 와인은 격식을 차리고 복잡하게 점수를 매겨 가며 분석하는 학문이 아닙니다. 이 계절과 음식의 한 축을 즐거움으로 메워 줄 가장 직관적이고 사치스럽지 않은 도구로 삼아 보십시오.

요주의 인물 강헌이었습니다.




FAQ

화이트 와인을 사서 오랫동안 셀러에 보관해도 될까요?

특정 고급 샤도네이나 빈티지 리슬링 등의 일부 품종을 제외하고,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대부분의 가성비 화이트 와인은 2년 내에 신속하게 소비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화이트 와인은 신선함과 1차 아로마가 생명이므로 오래 묵힌다고 해서 무조건 좋아지지 않습니다.

독일 리슬링 등급 명칭이 너무 어려운데 아주 쉽게 구별할 방법이 없나요?

포도의 수확 시기가 늦어지고 수분이 증발에 가깝게 많이 날아갈수록 당도가 높은 고가의 등급입니다. 평소 단맛이 없고 청량함을 원하신다면 표기된 용어 중 가장 기본형인 '카비네(Kabinett)'나 드라이함을 뜻하는 '트로켄(Trocken)' 표시를 우선 구매하시면 안전합니다.

소비뇽 블랑에서 풀이나 피망 냄새가 유독 강하게 나는데, 상한 것인가요?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뉴질랜드 및 유기농 소비뇽 블랑 포도 품종이 가지고 있는 시그니처 아로마(1차 향)입니다. 비가 갠 후 풀이나 아스파라거스 향 뒤에 산뜻하게 톡 쏘는 산도가 잘 살아 있다면 정상적인 와인의 훌륭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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