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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 사회의 '대중'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획일적 단위이며, 이제는 개별성과 다양성을 소통하는 '다중'의 개념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 2002년 월드컵과 촛불집회는 자발적이고 수평적인 다중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나, 플랫폼과 대기업의 독점 구조 속에서 다시 무력하게 퇴각했습니다.
  • 독점 생태계를 깨고 스스로를 객관화(To know oneself)할 때, 비로소 우리는 획일화된 소비자가 아닌 주체적인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사람을 보며 '대중의 힘'을 말합니다. 과연 정말 그럴까요? 우리가 무심코 쓰는 '대중(Mass)'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머릿수가 많은 집단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철저히 근대 산업사회가 만들어낸 획일화되고 평균화된 인간의 단위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하나의 색깔로 묶일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수직적으로 통제되는 '대중'을 넘어, 저마다의 다양성을 유지한 채 수평적으로 연대하는 '다중(Multitude)'의 개념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왜 한국 사회가 때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집단 지성을 발휘하면서도, 때로는 독점 플랫폼과 대기업 자본 앞에 무력하게 굴복하는지 그 모순을 풀어낼 수 있습니다.

1. '대중'과 '다중'의 명확한 정의

'대중'은 철저히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개념입니다. 이집트 노예들이 모세를 따라 탈출할 때의 무리를 우리는 대중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대중은 산업혁명, 도시화, 국민국가의 탄생, 계몽주의 사상, 그리고 결정적으로 매스 미디어와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자본주의가 결합하여 18세기 말에서 20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세계사적 현상입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이자,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적 소비자로 규정되는 인간의 단위가 바로 대중입니다.


강연자가 '대중의 등장'이라는 제목의 슬라이드 앞에서 청중을 향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

근대 산업사회가 만들어낸 획일화된 인간 단위로서의 대중이 어떤 역사적 배경을 통해 등장했는지 살펴봅니다.


반면, 안토니오 네그리 같은 후기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제시한 '다중(Multitude)'은 대중의 한계를 넘어선 탈근대의 개념입니다. 다중은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묶이지 않습니다. 저마다 상이한 취향, 생활 스타일, 정치적 입장을 가진 개별적 주체들이 수평적으로 의사소통하고 토론하며 새로운 의제를 생산해 나가는 열린 네트워크입니다. 획일화된 소비를 강요당하는 대중과 달리, 다중은 다양성을 유지한 채로 상생하는 생태계를 지향합니다.

2. 우리가 흔히 혼동하는 지점: 군중, 공중, 그리고 대중

많은 사람이 다수의 인간 단위를 뜻하는 군중(Crowd), 공중(Public), 민중(People)을 대중과 혼동합니다. 하지만 이 개념들은 엄연히 다릅니다. 군중은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 모인 일시적인 무리일 뿐이며, 공중은 이성적인 비판 능력을 갖춘 시민적 주체에 가깝습니다. 민중은 지배 계급에 대비되는 피지배 계급으로서의 정치적 성격이 강합니다.

진짜 심각한 혼동은 우리가 스스로를 '자유롭고 다양한 선택을 하는 주체'라고 착각하는 데서 발생합니다. 우리는 멀티플렉스 극장에 가면서 "다양한 영화를 보기 위해 간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아닙니다. 영화를 만드는 대기업 자본(CJ, 롯데 등)이 극장 체인까지 통째로 움켜쥐고 있는 수직 계열화 구조 속에서, 우리는 그들이 억지로 밀어주는 블록버스터 한두 편을 강제로 소비하는 수동적인 '대중'에 불과합니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독점방지법 때문에 제작사와 유통사(극장)의 겸업을 법적으로 엄격히 금지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대기업의 횡포를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승인해 주고 있습니다.


안경을 쓴 남성이 마이크를 들고 강연하는 모습과 그 앞에 놓인 노트북

대중의 정의와 현대 사회의 소비 체계가 지닌 모순을 짚어봅니다.


3. 2002년 대한민국이 보여준 '다중'의 발현과 한계

대한민국 역사에서 이 '다중'의 에너지가 가장 폭발적으로 드러난 순간이 바로 2002년이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거리로 쏟아져 나온 '붉은 악마'는 위로부터 조직된 수직적 집단이 아니었습니다. 그 누구도 동원하지 않았으나 스스로 질서를 만들고 쓰레기를 주웠던, 전 세계 외신기자들을 소름 돋게 만든 '새로운 시민적 질서'였습니다.


안경을 쓴 중년 남성이 마이크를 들고 한 손을 들어 올리며 강연하는 모습

2002년 당시 자발적으로 축제를 즐기며 질서를 지켰던 시민들의 모습은 다중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같은 해 가을에 일어난 효순·미선 사건 촛불집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과거의 집회는 운동권 명망가들이 마이크를 잡고 수직적으로 통제하는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2002년의 촛불은 인터넷에 "촛불을 들고 나오자"고 처음 제안한 한 30대 비정규직 학원 강사의 글 하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무 배경 없는 익명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연대하여 광장을 메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 위대한 다중의 역동성은 2007년을 기점으로 아주 순식간에 무력하게 퇴각했습니다. 왜일까요? 다중이 지속 가능한 상생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가 위키피디아 같은 집단 지성의 공유 자산을 만들어갈 때, 한국은 네이버라는 거대한 독점 포털에 갇혀버렸습니다. 네이버는 "우리 안에서 다 해결해라, 밖으로 나가지 마라"며 사용자를 가두고 상생의 생태계를 파괴했습니다. 자발적 주체여야 할 우리가 압도적인 지지로 네이버식 독점과 획일화된 질서를 스스로 승인해 버린 셈입니다.

4. 진정한 주체로 살아가기 위한 '다중적 성찰'

저는 참 평론가로서 자질이 없는 사람입니다. 제 살아생전에는 한국 노래가 절대 외국에 진출하지 못할 것이라 장담했고, 컴퓨터가 바둑으로 인간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 전 재산을 걸고 예언했으나 둘 다 아주 처참하게 깨졌습니다. 좀 더 일찍 죽었어야 했나 봅니다.

하지만 이 뼈아픈 예측 실패 속에서 제가 깨달은 철학적 교훈이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과 인간의 역동성은 결코 고정된 공식이나 위정자들의 기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며, 그 존엄성은 획일화된 시스템에 저항할 때 발현됩니다.

역사를 돌아봅시다. 19세기 말 조선이 망해갈 때, 민비(명성황후) 일가는 나라를 통째로 거덜 냈습니다. TV 드라마나 뮤지컬에서는 그녀를 '조선의 국모'로 미화하지만, 사실은 임오군란 때 피신하던 중 자신을 험담했다는 이유로 시골 우물가의 무고한 여인네들을 싸그리 잡아 죽인 아주 잔인하고 독점적인 권력자였습니다. 당시 민초들은 "이 씨의 사촌이 되지 말고 민 씨의 팔촌이 되라"는 아리랑 타령을 부르며 그 부패한 권력을 냉소했습니다. 소설은 거짓말을 할 수 있어도, 대중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는 노래는 언제나 '참말'만을 담아내기 마련입니다.

여러분, 우리 선생님들. "투 노 원 셀프(To know oneself)", 자신을 객관적으로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대기업이 짜놓은 멀티플렉스 판에서 주는 대로 영화를 보고, 네이버가 가두어 놓은 검색창 안에서만 세상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결코 주체적인 '다중'이 될 수 없습니다. 독점적이고 폭력적인 질서에 길들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연대하는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갈 때 비로소 우리는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요주의 인물 강헌이었습니다.


FAQ

'대중'과 '다중'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대중'은 산업혁명과 매스 미디어가 만들어낸 획일화되고 수동적인 소비 집단인 반면, '다중'은 개개인의 다양한 정체성과 취향을 유지한 채 수평적으로 소통하고 연대하는 능동적인 주체들의 네트워크입니다.

2002년 월드컵 응원 문화가 왜 '다중'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나요?

국가나 특정 단체에 의해 위로부터 동원된 수직적 구조가 아니라, 익명의 시민들이 아래로부터 자발적으로 모여 수평적인 축제 문화와 질서를 스스로 창조해 냈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다중'의 에너지가 지속되지 못하고 퇴각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터넷의 개방성을 살린 상생 생태계를 만들지 못하고, 네이버 같은 독점 포털이나 대기업 멀티플렉스와 같은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독점 자본 구조에 스스로 길들여지고 이를 용인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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