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주댐 건설로 삶의 터전을 잃었던 주민들이 23년 만에 정식 어업 허가를 얻어 성주호 최초의 어부로서 새 삶을 시작했습니다.
- 수십 년간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성주호는 50cm가 넘는 대형 붕어와 쏘가리, 보호 어종인 자라가 서식하는 청정 수생태계로 자리 잡았습니다.
- 과거 생계와 물자 교환의 통로였던 대가천과 무흘구곡은 이제 천혜의 비경과 고향의 추억을 간직한 귀중한 문화·생태 자산으로 공존하고 있습니다.

바다를 보기 어려운 내륙 분지 경상북도 성주에 23년 만에 정식 어업 허가를 받은 어부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댐 건설로 조상 대대로 일구어 온 논밭을 물밑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수몰민 이웃들입니다. 오랜 세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던 인공호수에 처음으로 그물을 내리자, 50cm가 넘는 대형 붕어와 쏘가리, 그리고 청정 1급수 지표종인 자라가 올라오며 새로운 삶의 희망을 건져 올리고 있습니다.
23년 만에 성주호에 드리운 첫 그물과 내륙 어부의 탄생
성주와 고령 전역에 안정적인 농업용수와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성주댐이 들어선 지 어느덧 23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총 3,800만 톤의 저수량을 자랑하는 거대한 인공호수 성주호 주변에는 오랜 세월 터전을 지켜온 주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인근 마을 주민 이군제 씨와 김광현 씨는 최근 성주군 최초로 정식 내수면 어업 허가 1호를 취득하고 매일 아침 성주호로 출항합니다.

여름이면 주민들이 찾아와 다슬기를 잡으며 더위를 식히는 대가천의 평화로운 물줄기가 발길을 사로잡습니다.
바다가 없는 내륙 산골에서 평생 농사만 짓던 이들이 배를 띄우고 그물을 던지는 어부로 변신한 것은 마을 역사에서도 유례없는 일입니다. 20년 넘게 낚시와 조업이 전면 금지되었던 호수에서 걷어 올린 그물에는 56cm에 달하는 대형 붕어와 58cm급 쏘가리, 살이 오른 메기 등이 가득 차오릅니다. 심지어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에서만 서식하는 보호 어종인 자라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잡혀 올라오고 있습니다.
수몰의 상실을 딛고 얻은 또 다른 삶의 터전
성주댐 건설 당시 고향 마을과 논밭이 수몰되면서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생계 기반을 잃는 쓰라린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대가천이 모여 만든 거대한 물길은 수십 년의 시간을 거치며 상처를 보듬고 새로운 생명의 보고로 거듭났습니다.

예로부터 마을 사람들이 배를 묶어두고 쉬어가던 정자에는 이제 그 시절의 풍경 대신 고요한 물소리만이 남아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사람 손을 타지 않은 덕분에 성주호는 인위적인 남획 없이 자연 그대로의 어족 자원을 풍부하게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어부 경력 1년도 채 되지 않은 초보 어부들이 던진 그물마다 연일 월척이 걸려드는 배경에는 바로 이 기나긴 자연 치유와 보호의 시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땅 대신 호수가 내어준 풍요는 주민들에게 새로운 생계의 기회이자 자부심이 되었습니다.
가야산 맑은 물길 대가천과 수변 생태계의 복원
성주호의 풍부한 어족 자원을 지탱하는 핵심 동력은 가야산 북사면에서 발원해 흐르는 대가천의 청정한 수질입니다. 대가천은 성주 들녘을 적시는 젖줄이자, 낙동강으로 합류하기 전까지 성주 주민들의 생계와 추억을 함께해 온 역사적인 하천입니다.

가야산 자락 대가천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는 선바위는 여름철이면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입니다.
대가천 하류 수륜면 수성리 일대에서는 지금도 여름철이면 주민들이 맑은 자갈밭 사이에서 다슬기(고동)를 줍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과거 다슬기는 산골 주민들의 귀중한 주소득원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비록 시대가 변하며 생계 수단으로서의 비중은 줄어들었지만, 맑은 물과 모래, 자갈이 어우러진 대가천의 자연환경은 여전히 주민들의 쉼터이자 생태계의 보고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뱃길에서 문화 자산으로: 무흘구곡과 선바위의 재발견
대가천 물길을 거슬러 오르면 조선 중기 대학자 한강 정구 선생이 찬탄했던 '무흘구곡(武屹九曲)'의 비경이 펼쳐집니다. 날아가는 봉황을 닮은 제1곡 봉비암부터 선비의 정취가 깃든 배바위에 이르기까지, 대가천은 단순한 물길을 넘어 성주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가 축적된 공간입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추억을 떠올리며 정겨운 대화를 이어가는 이들의 표정이 참 밝습니다.
도로가 변변치 않던 과거에는 인근 산골 주민들이 이 대가천 물길을 따라 배를 띄워 이웃 마을과 식량과 물자를 교환했습니다. 노를 젓다 지친 뱃사공들이 배를 묶어두고 쉬어가던 '배바위'와 30여 미터 높이로 웅장하게 솟아오른 '선바위'는 유년 시절 물놀이의 추억을 간직한 명소로 지금도 많은 피서객과 탐방객을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상생: 대가천이 열어갈 다음 걸음
성주호와 대가천의 변화는 인공적인 개발로 인한 상실의 상처를 자연과의 상생으로 극복해 낸 대표적인 사례를 보여줍니다. 댐 건설로 농토를 잃었던 농민들이 내륙 호수의 생태계를 지키는 어부로 안착하고, 옛 선비의 풍류가 서린 무흘구곡은 트레킹과 힐링의 명소로 가치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주목해야 할 과제는 성주호의 내수면 어업 활동과 대가천의 자연 보전 사이에서 지속 가능한 균형을 유지하는 일입니다. 무분별한 남획을 방지하고 가야산에서 발원하는 대가천 본류의 청정 수질을 유지할 때, 성주호는 앞으로도 지역 주민들의 든든한 일터이자 후손들에게 물려줄 생태 관광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FAQ
성주호에서 50cm가 넘는 대형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성주댐 건설 이후 23년 동안 일반인의 조업과 낚시가 엄격히 제한되어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장기간 자연 번식과 성장이 이루어져 붕어와 쏘가리 등 대형 어종이 풍부하게 서식하고 있습니다.
성주댐은 언제, 어떤 목적으로 건설되었나요?
성주댐은 약 23년 전 성주와 고령 지역 전역에 농업용수와 전력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 대가천 물길을 막아 건설된 인공호수입니다.
무흘구곡이란 어떤 곳인가요?
가야산에서 발원해 낙동강으로 흐르는 대가천 물줄기를 따라 형성된 아홉 군데의 절경으로, 조선 시대 대학자 한강 정구 선생이 그 빼어난 경관에 반해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던 역사적 명승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