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스트리트저널은 주요 빅테크 기업들이 재무제표 각주에 숨겨둔 부외 약정(미래 부채)이 3조 달러에 달한다고 보도했습니다.
- 데이터센터 미개시 리스와 미인도 반도체 구매 약정 구조로 인해 지난 1년 자본지출의 5배에 달하는 지출 의무가 유예되어 있습니다.
- 심각한 악재 보도에도 불구하고 샌디스크·마이크론 등 메모리 주가가 반등한 점은 기술주 투심이 바닥을 지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주요 빅테크 기업들의 재무제표 뒤에 약 3조 달러(한화 약 4,000조 원) 규모의 숨겨진 부채 약정이 존재한다는 충격적인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이는 최근 1년간 아홉 개 주요 빅테크 기업이 집행한 자본지출(CapEx) 합계인 6,000억 달러의 무려 5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대형 악재에도 불구하고 당일 시장에서는 마이크론과 샌디스크 등 메모리 반도체 주가가 6~9% 넘게 급등하며 예상 밖의 초강세를 연출했습니다.
시장 전체의 부정적인 뉴스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지수는 오히려 2.6% 상승하며 강세를 보였습니다.
왜 3조 달러라는 거대한 금액이 재무제표에 나타나지 않았나
시장이 주목한 본질은 빅테크 기업들이 자본 지출 부담을 공식 재무제표 본문이 아닌 분기 보고서 각주(Notes) 형태의 부외 약정(Off-balance sheet commitments)으로 우회했다는 점입니다. 기업이 실제로 돈을 집행하거나 자산을 인수한 시점에 부채를 계상하는 회계 규정의 허점을 활용해, 미래에 반드시 지불해야 할 막대한 지출 의무를 장부 밖으로 미뤄둔 것입니다.
이 3조 달러의 부외 약정은 크게 두 가지 핵심 메커니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약 1.2조 달러 규모의 미개시 리스(Uncommenced leases)입니다. 이는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를 건설 중이지만 아직 완공되지 않아 입주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완공 후 입주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본격적인 리스 부채로 재무제표에 반영되지만, 건설 기간 동안에는 부채로 잡히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반도체 및 장비 구매 약정으로, 대량의 AI 반도체를 구매하기로 최종 계약을 체결했으나 실물 제품을 수령하기 전이라 장부상 부채로 표시되지 않은 물량입니다.
빅테크 기업들이 재무제표에 드러나지 않는 막대한 규모의 부채 약정을 어떻게 운용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메타와 알파벳의 사례로 본 부외 약정의 실제 작동 방식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 메타(Meta)의 데이터센터 투자가 대표적입니다. 메타는 자산운용사인 블루 아울(Blue Owl)과 손잡고 데이터센터 지분의 80%를 운용사 펀드가 가지도록 하고, 메타는 20% 지분만 보유하는 특수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해당 데이터센터를 2029년부터 메타가 임차하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회계 기준상 아직 임차료 지급이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장부상 부채는 제로입니다. 그러나 메타는 이 데이터센터에 대해 20년간 임대 수입 손실을 보증하는 조건을 걸었기 때문에, 사실상 무조건적인 장기 부채와 동일한 리스크를 지고 있습니다.
빅테크 중 이러한 부외 약정이 가장 심각한 곳은 알파벳(Google)입니다. 전체 3조 달러의 부외 약정 가운데 무려 3분의 1에 해당하는 1조 달러가 알파벳 한 곳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특히 알파벳의 구매 약정 금액은 불과 3개월 만에 약 500억 달러가 급증했습니다. 알파벳은 이러한 지출 증가에 대해 '기술 인프라, 재고, 데이터센터 전력 확보 목적'이라는 모호한 설명 외에 명확한 세부 내역을 공시하지 않아 투자자들의 우려를 키웠습니다.
부정적 악재 속에서도 메모리 반도체가 반등한 이유
이처럼 빅테크의 현금 고갈과 채권 발행 남발, 과도한 지출 약정이 기업 재무를 압박한다는 경고가 잇따랐음에도 반도체 주가는 강하게 반등했습니다. 엔비디아가 오픈AI 데이터센터 구축에 1,050억 달러(약 140조 원)라는 어마어마한 자금을 또 다시 투입한다는 뉴스가 나왔고, 알파벳의 호주 달러 기준 회사채 발행 소식까지 겹쳤지만 시장은 이를 악재로 소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실질적인 실적 지표와 수급 개선이 부정적 뉴스를 압도했습니다. 생성형 AI 기업 엔트로픽(Anthropic)의 2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4배 급증한 115억 달러를 기록하고 조정 영업이익 흑자를 달성하며 'AI로 실제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습니다. 또한 최근 강제 청산(마진콜) 여파로 시장에 매도 압력을 가했던 시추에이션 아날리시스 펀드의 13F 공시 결과, 이들이 보유했던 핵심 자산이 마이크론과 샌디스크였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악성 매물 소화가 일단락되었다는 안도감이 투자 심리를 되살린 것입니다.
특정 헤지펀드의 포트폴리오 조정 내역을 통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수급 변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향후 관전 포인트와 투자자가 주의해야 할 지점
이번 사태가 던지는 핵심 시사점은 시장의 투자 심리(Sentiment)가 바닥을 지나고 있는가입니다. 빅테크의 3조 달러 부외 부채라는 파괴력 높은 부정적 보고서와 엔비디아의 대규모 투자 지출 발표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지수(SOX)가 2.6% 상승하는 등 시장이 악재를 튕겨내는 모습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다만 장기 투자자 관점에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부외 약정은 사라지는 돈이 아니라, 데이터센터가 완공되고 반도체가 인도되는 시점에 실제 법적 부채와 이자 비용으로 재무제표에 쏟아져 들어올 시한폭탄이기 때문입니다. 빅테크의 AI 투자 수익성이 엔트로픽의 사례처럼 빠르게 입증되어 이 막대한 미래 부채를 감당할 수 있을지, 아니면 자본 지출 부담이 기업의 영업이익을 훼손할지 지속적으로 1차 데이터를 검증해 나가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