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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주 나쁜 사람인 철학적 이유

spark_icon5분 지식
  • 피해가 실제로 발생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남에게 위험을 주는 잠재적 가해자이자 고통받는 이를 외면하는 방관자로 살아갑니다.
  • 현대 분석 윤리학은 피터 싱어의 얕은 연못 비유와 잠재적 위험 논리를 통해 평범한 개인이 매 순간 지는 무거운 책임을 입증합니다.
  • 규칙 결과주의나 상호 위험 분담 논리로 책임을 덜어내려 해도, 인간이 지닌 본질적인 편향과 위선에서 온전히 벗어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 하지만, 현대 분석 윤리학의 엄밀한 논리를 적용하면 우리는 일상에서 끊임없이 타인에게 잠재적 해악을 끼치고 방관을 저지르는 존재로 드러납니다. 고속도로에서 안전거리를 좁혀 운전하거나 이어폰을 낀 채 자전거를 타는 행동처럼, 실제로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남을 해칠 잠재성을 품은 행동을 일상적으로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윤리학 계산은 사건의 결과가 확정된 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따지는 사후적 관점에 머무를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아직 피해가 구체화되지 않은 잠재적 위험을 두고도 도덕적 비판을 가해야 마땅한 상황이 수없이 많습니다.

철도 선로가 분기되는 지점에서 레버를 조작해 열차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을 묘사한 트롤리 딜레마 도식과 하단에 자막이 있는 화면.

다섯 명과 한 명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하는 트롤리 딜레마는 결과가 확정된 상태에서의 윤리적 판단이 과연 충분한지 의문을 던집니다.

결과가 일어나지 않아도 위험을 방치한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전통적 사고 실험인 트롤리 딜레마에서는 선로를 변경했을 때 몇 명이 사망하는지가 확정적인 수치로 주어집니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결과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지는 잠재적 위험을 판단해야 합니다.

예컨대 운전대를 잡는 행위 자체도 보행자에게 치명적인 위험을 가할 잠재성을 내포합니다. 이런 위험에 대해 '합당한 예방 조치'를 취했거나 서로 위험을 주고받는 '상호성' 원리로 일정 부분 상쇄된다고 항변할 수는 있지만, 위험을 유발하는 잠재적 가해자라는 사실 자체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습니다.

흰 머리에 안경을 쓴 노신사가 헤드셋 마이크를 착용한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 옆으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세계에 존재하는 무수한 아이들을 죽이고 있다'라는 자막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방관이 어떻게 타인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는지 피터 싱어의 급진적인 통찰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지구 반대편의 죽음을 방치하는 행위는 연못의 아이를 지나치는 것과 같습니다

철학자 피터 싱어(Peter Singer)는 우리가 일상에서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충분히 살릴 수 있음에도 외면하는 태도가, 눈앞의 얕은 연못에 빠진 아이를 옷이 젖는다는 이유로 지나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고 역설했습니다.

현대 사회는 정보 기술과 금융 시스템의 발달 덕분에 클릭 몇 번만으로도 먼 곳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물리적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도덕적 책무가 약해진다는 변명은 현대 사회의 촘촘한 연결성을 외면한 반박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단지 내 삶의 안락을 누리고자 타인의 생명을 외면하고 있는 셈입니다.

흰 벽을 배경으로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젊은 남성이 앉아 카메라를 보며 이야기하고 있으며, 화면 하단에는 '사실 굉장히 미미한 잘못이다'라는 자막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도덕적 책임을 공동체 전체가 나누어 가진다고 가정하면, 개인이 저지르는 방관의 무게 또한 아주 가볍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집단적 규칙 뒤에 숨는 것만으로는 개인의 도덕적 결백을 증명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이에 대해 '규칙 결과주의' 관점이나 도덕적 책임의 분산 논리로 반박할 수도 있습니다. 사회 전체가 합의한 보편적 규칙을 따르며 경제 활동을 하고 세금을 내는 것만으로도 사회 유지에 기여하고 있으며, 전 세계 인구가 잘못을 n분의 1로 나누어 지기 때문에 개인이 져야 할 책임은 미미하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론은 개인에게 할당된 최소한의 몫만 채우면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도 면책된다는 기형적인 결론을 낳습니다. 도덕적 의무를 철저히 규칙과 분담의 문제로 환원할수록, 정작 눈앞의 비극을 방치하는 부조리를 용인하게 되는 모순에 부딪힙니다.

일상적 편향과 위선을 직시하는 것이 윤리적 사유의 출발점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불공정함에는 분노하면서도 정작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특혜를 베푸는 편향을 매일 저지릅니다. 타인의 과오는 가혹하게 비판하면서도 자신 역시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는 위선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성창원 교수의 저서 『처음 만나는 철학의 세계』가 다루듯, 현대 분석 윤리학의 가치는 인간을 무결한 존재로 포장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정교한 논리 분석을 거쳐 우리가 얼마나 위선적이고 불완전한 존재인지를 명확하게 직시하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스스로의 악함을 온전히 인정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여전히 자신을 합리화할 논리를 찾고 계신가요?


FAQ

피해가 실제로 발생하지 않은 잠재적 위험 행동도 도덕적 비판의 대상이 되나요?

그렇습니다. 현대 윤리학에서는 실제 결과가 발생하기 전이라도 타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는 위험을 충분한 예방 조치 없이 방치하거나 유발하는 행위 자체를 도덕적 평가의 대상으로 봅니다.

피터 싱어의 '얕은 연못' 비유가 지적하는 핵심 논리는 무엇인가요?

자신에게 큰 희생이 따르지 않음에도 고통받는 타인을 돕지 않고 지나치는 것은, 얕은 연못에 빠져 죽어가는 아이를 옷이 젖는다는 이유로 방치해 숨지게 하는 행위와 도덕적으로 같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규칙 결과주의로 개인의 방관 책임을 완전히 면제받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규칙 결과주의나 책임 분담 논리에만 매달리면, 개인이 자신에게 할당된 최소한의 규칙만 준수했을 때 추가적인 비극이나 타인의 고통을 방치해도 아무런 도덕적 문제가 없다는 모순에 도달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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