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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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마지막 가르침

spark_icon4분 지식
  • 우리는 깨달은 존재인 붓다가 누구보다 확고하고 주체적인 중심을 가졌을 것이라 지레 짐작하곤 합니다.
  • 하지만 경전 속 붓다는 타인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으며, 심지어 악마 마라의 요구에도 선뜻 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 모든 것이 연결된 세계에서는 주체적인 것과 남에게 끌려다니는 것의 절대적 경계가 무너진다는 깊은 통찰을 전합니다.

보통 우리는 '깨달은 자'라고 하면 독보적인 자기 중심을 지닌 인물을 떠올립니다. 남들의 흔드는 말에 조금도 요동치지 않고, 자신만의 확고한 주관으로 타인의 요청을 서슴없이 거절할 것만 같은 신적인 존재 말입니다. 그런데 최근 읽은 책 《불교는 인생에 확실히 도움이 된다》의 한 대목이나 여러 경전 속 묘사를 보면, 붓다는 생각보다 남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으로 묘사되곤 합니다. 타인이 다가와 무언가를 청하면 "아, 그럴까?" 하며 선뜻 응하는 장면이 꽤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은 자못 흥미롭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의외의 특징'이라는 문구가 상단에 적혀 있고, 붓다 그림과 책 제목이 담긴 표지가 화면 중앙에 배치된 영상 프레임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깨달은 자의 모습과 달리, 붓다는 의외로 남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않는 인간적인 면모를 지녔습니다.

심지어 이러한 응답은 매우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이어집니다. 불교에서 악마와 같은 존재로 일컬어지는 '마라'가 찾아왔을 때의 일입니다. 마라는 붓다에게 다가와 "너는 이제 충분히 많이 설법하지 않았느냐? 이만큼 했으면 그냥 죽어도 되지 않겠느냐?"라고 묻습니다. 일반적인 관점이라면 자신을 음해하거나 세상을 떠나라고 종용하는 악마의 말에 단호히 맞서거나 호통을 칠 것이라 기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붓다는 의외의 대답을 남깁니다. "어, 나 석 달 있다가 죽지." 그리고 참으로 석 달 뒤에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집니다.

우리는 흔히 타인에게 이끌려 다니거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을 '주체성을 잃은 행동'이라 규정하며 경계하곤 합니다. 남의 뜻에 응하면 마치 내 삶의 주도권을 빼앗기거나 논쟁에서 패배하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욱 단단한 자기중심을 세우고 타인의 개입을 방어하려 애씁니다.

그러나 진정한 깨달음의 관점에서 본다면,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것과 남에게 끌려다니는 것 사이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절대적인 구별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독립되어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인과 관계와 타자와의 의존 속에서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애초에 세상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면, 내가 주도하여 선택하는 것과 타인의 요청에 응해 흘러가는 것의 본질적 차이는 아득해집니다.

책 표지가 중앙에 배치된 이미지로, 부처 그림 옆 말풍선에 '불교는 인생에 확실히 도움이 된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고 상단에는 '인생에 곧바로 적용하는 15가지 실천 불교이야기'라는 제목이 있다.

주체성을 지키는 것과 타인의 요청에 응하는 것 사이의 경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합니다.

자신의 주체성을 증명하기 위해 타인의 요구를 강박적으로 거부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붓다의 삶은 보여줍니다. 때로는 남들의 요청에 선뜻 응하고 흐름에 맡기는 것이 결코 자신을 잃어버리는 일패지상이 아닙니다. 세상과 단절된 채 거대한 자아를 지키는 것이 주체성이 아니라, 나와 타인이 분리되지 않았음을 알고 유연하게 응답하는 것이야말로 붓다가 보여준 참된 자유가 아닐까요?


FAQ

붓다가 악마 마라의 죽음 요구를 선뜻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삶과 죽음, 그리고 자아에 대한 강박적 집착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의존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요구에 응하는 것과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것 사이의 절대적 경계가 사라진 탓입니다.

타인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 왜 주체성을 잃는 것이 아닌가요?

나라는 존재가 타인 및 세상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연기적 관점에서는 타율과 주율의 우열이 무너집니다. 거절해야만 주체적이라는 생각 또한 자아에 대한 또 다른 집착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이 일상에서 이 가르침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남의 부탁을 받아들일 때 '내가 졌다'거나 '내 주관을 잃었다'는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음을 상기할 수 있습니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보다 유연하고 유순하게 대처하는 태도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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