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어학자 노마 히데키는 언어에 불변의 의미가 담겨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이가 매 순간 능동적으로 의미를 빚어낸다고 설명합니다.
- 소통이 원활한 사람들은 오해를 대화의 실패로 보지 않고,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의 의미를 맞춰나가는 과정으로 여깁니다.
- 단어 자체의 정확성에만 얽매이지 않고 표정과 말투, 맥락 같은 비언어적 요소를 세심하게 헤아릴 때 대화의 즐거움이 깊어집니다.

살다 보면 유독 대화가 막힘없이 통하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 어떤 이와의 대화는 사소한 표현 하나로도 쉽게 어긋나며 피로감을 남기곤 합니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말재주나 어휘력 문제라기보다, 언어와 소통의 본질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관점에서 비롯됩니다.
일본의 언어학자 노마 히데키는 저서 『언어존재론』에서 우리가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언어관을 정면으로 뒤집습니다. 대화가 즐거운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언어학 이론을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노마 히데키가 강조하는 언어의 본성을 직관적으로 체득해 실천하는 이들입니다.
언어에는 고정된 의미가 없다는 역설적 선언
통상적인 상식에 따르면 언어는 생각을 담아 전달하는 도구입니다. 말하는 사람이 특정한 '의미'를 단어라는 껍질에 담아 건네면, 듣는 사람이 그 껍질을 벗겨 본래 의미를 꺼내 확인한다는 이른바 캐치볼 모델이 기존 소통관의 주된 설명이었습니다.
언어에 고정된 의미가 없다는 노마 히데키의 주장은 대화의 주도권을 상대방에게 열어두는 소통의 시작점입니다.
하지만 노마 히데키는 과연 그 '의미'라는 실체가 눈에 보이는지, 도대체 어디에 실재하는지 묻습니다. 화자가 던진 표현물은 물리적인 음성이나 글자에 불과하며, 그 안에 불변의 의미가 고정되어 이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의미란 배달되는 물건이 아니라, 표현을 받아들이는 수신자가 자신의 맥락 속에서 새롭게 빚어내는 창조적 결과물입니다. 결국 듣는 이는 단순한 해독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의미의 공동 생산자가 됩니다.
오해는 이해의 반대가 아니라 이해의 한 형태이다
고정된 의미가 존재한다고 믿는 이들은 소통을 '정답인 이해'와 '틀린 오해'라는 엄격한 이분법으로 가르곤 합니다. 내가 전달하려던 의도와 조금만 다르게 받아들여지면 곧바로 "왜 내 말을 왜곡하느냐"라며 상대를 탓하거나 대화의 실패로 규정해 버립니다.
하지만 완벽하게 고정된 정답의 지점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수신자는 저마다의 경험과 인지 체계를 거쳐 조금씩 다른 해석을 내놓기 마련입니다. 노마 히데키의 관점에서 통상적인 '오해' 역시 수신자가 표현을 자기 방식으로 소화해 낸 고유한 이해의 한 형태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해가 발생했는지가 아니라, 그 반응을 발판 삼아 다시 서로의 간극을 좁혀가는 상호작용의 흐름입니다.
대화가 즐거운 사람들이 공유하는 실천적 특징
이러한 언어의 본성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대화에서 뚜렷한 태도의 차이를 보입니다.
- 오해에 즉각적으로 반박하지 않는 여유: 상대가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이더라도 틀렸다고 다그치지 않고,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구나"라며 생각할 여백을 둡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이 의도했던 바를 차분히 덧붙이며 대화를 이어갑니다.
- 결론 도출보다 상호작용 자체에 집중: 대화를 특정한 설득이나 목적 달성의 수단으로만 한정하지 않습니다. 완결된 정답을 확인하려 하기보다,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조금씩 더 알아가는 과정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습니다.
- 자신의 이해 한계를 신속하게 인정: 상대가 자신의 해석을 바로잡아 주었을 때 방어적으로 반응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해석 역시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였음을 알기에 "내가 그 부분은 다르게 이해했네, 더 설명해 줘"라며 유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언어적 표현뿐만 아니라 대화 속 비언어적 요소가 의미를 형성하는 데 얼마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텍스트의 정확성을 넘어 맥락과 비언어를 포착하는 힘
언어를 추상적인 기호의 전달로만 좁게 바라보면 정확한 발음과 단어 선택에만 집착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전에 정해진 고정 의미가 없다면, 수신자가 의미를 형성하는 과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표정, 말투, 침묵, 그리고 대화가 이루어지는 상황적 환경입니다.
소통에 능한 이들은 상대방이 좋은 의미를 길어 올릴 수 있도록 따뜻한 태도와 분위기를 먼저 만듭니다. 아울러 상대방이 미처 언어로 가다듬지 못한 무의식적인 비언어적 단서들을 기민하게 포착해 배려합니다. 결국 대화의 완성도는 정밀한 어휘 구사보다 그 언어를 둘러싼 관계적 맥락을 얼마나 섬세하게 돌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은 평소 대화가 잘 통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서 어떤 공통점을 발견하셨나요? 댓글로 다양한 생각을 남겨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FAQ
언어에 의미가 없다면 단어 사전은 왜 존재하는 건가요?
사전에 실린 뜻은 사회적 관습과 합의로 형성된 통상적인 용례일 뿐, 발화가 일어나는 순간마다 화자와 청자 사이에서 생생하게 구성되는 맥락적 의미 전체를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해를 이해의 한 형태라고 보면 소통 오류를 방치해도 되나요?
오류를 그대로 두라는 뜻이 아니라 오해를 대화의 자연스러운 출발점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말합니다. 틀렸다고 상대를 탓하기보다 대화를 지속하며 간극을 좁혀나가는 유연한 소통을 지향합니다.
대화에서 비언어적 표현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청자가 말의 의미를 구성할 때 단어 자체뿐 아니라 화자의 표정, 억양, 침묵, 현장 분위기 같은 맥락을 종합적으로 해석하여 의미를 완성하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