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신차 개발 산실 ‘남양기술연구소’…미래모빌리티 위한 R&D 디지털 전환 선도한다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운전석에 앉은 연구원이 마치 실제 도로를 달리듯 운전하며 차량의 거동과 노면으로부터 전달되는 피드백을 온몸으로 느낀다. 다른 연구실에서는 로봇 팔에 장착된 3D 스캐너가 차체 형상을 정밀하게 측정하고, 빛과 열로 금속 또는 수지를 한 층 한 층 쌓아 올리는 3D 프린터로 부품을 빚어낸다. 또 다른 연구실에서는 수백 개의 제어기와 배선으로 연결된 와이어카를 가동시켜 눈에 보이지 않는 오류를 찾고 기능을 검증한다. 첨단 기술로 미래 모빌리티를 개발하는 이곳, 바로 현대자동차·기아의 모빌리티 개발 산실인 남양기술연구소다.


SDV(Software Defined Vehicle)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자동차는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며 진화하는 제품으로 바뀌고 있다. 여기에 전동화와 자율주행, 커넥티드 기술이 동시에 고도화되면서 차량을 구성하는 전기·전자 아키텍처와 소프트웨어 구조 역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졌다. 이처럼 기술이 고도화되고 소비자의 기대도 커지면서, 차량 개발의 목표 수준 또한 높아지고 있다. SDV에 걸맞은 차량 개발 체계와 기준이 필요하고, 고객이 체감하는 주행 감각과 품질까지 빈틈없이 끌어올려야 한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국내 최대 규모의 자동차 연구개발 거점 ‘현대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가 있다. 남양기술연구소는 디지털 기반의 혁신 R&D 기술 개발에 집중하며 시대 변화에 선제 대응으로 맞수를 두고 있다.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제품의 개발 기간을 단축하고, 품질을 향상시키며, 혁신적인 제조 공법을 도입하는 등 미래 모빌리티를 선도할 기술력과 완성차 품질을 확보해 가는 중이다.


첨단 R&D 기술은 차량 개발 방식에 큰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실물을 만들기 전에 가상 공간에서 성능을 검증하고 데이터로 품질을 예측하며, 설계 데이터만으로 금형 없이 부품을 제작하는 기술이 대표적이다.


이를 위해 현대차 남양기술연구소는 ▲차량을 만들지 않고도 주행 성능을 개발하고 검증하는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차량의 치수 품질을 데이터로 관리하는 디지털 측정 센터(DMC) ▲설계 데이터만으로 부품을 효율적으로 제작하는 적층 제조 솔루션 센터(AMSC) 그리고 ▲수백 개의 제어기 작동을 사전에 검증하는 노바 랩(NOVA Lab)을 운영하고 있다.

①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현실을 그대로 옮긴 가상 도로 위에서 주행 성능을 검증하다


새로운 기능이 집약된 신차를 개발하기 위해선 더 많은 개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기존처럼 차량을 개발할 때마다 수많은 시작차(Prototype)를 만들고 시험하는 방식으로는 갈수록 늘어나는 검증 요소들을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주목받는 것이 가상 공간에서 성능을 검증하는 버추얼 차량 검증 기술이다.


현대차·기아는 버추얼 차량 검증의 핵심 도구로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를 활용한다. 실제 도로와 차량을 가상으로 정밀하게 구현해, 시작차 없이도 주행 성능을 평가하고 개발 속도와 완성도를 동시에 끌어올리고 있다.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스튜디오에 들어서면, 운전석을 중심으로 270° 화각의 거대한 곡면 스크린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운전석에 오르면 마치 실제 차량에 탑승한 듯한 착각이 들게 만든다. 가상 환경에서 버추얼 검증 업무를 담당하는 주행성능컨셉개발팀 정필영 책임연구원은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는 가상 공간에서 차량의 성능 변화를 예측하고 평가하는 것은 물론, 성능 육성까지 가능한 장비”라고 소개한다.


주행평가가 시작되면, 연구원이 탑승한 콕핏이 곡면 스크린 중앙으로 미끄러지듯 이동한다. 가속 페달을 밟자 스크린 속 도로가 빠르게 흘러가고, 스티어링 휠을 꺾자 그 방향으로 콕핏 전체가 따라 움직인다. 주행 속도가 빨라질수록 시뮬레이터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가속과 감속, 코너를 도는 순간마다 가속도와 원심력에 의한 차체 쏠림과 노면에서 전달되는 미세한 진동까지 고스란히 모사한 것이 특징이다.


정 책임은 “가상 환경에서 차량이나 장착하고자 하는 부품의 특성을 입력하면 곧바로 주행 평가를 수행할 수 있다”며 “단계별 개발 차량의 실차평가와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평가를 병행하고 반복 검증함으로써 차량의 성능과 신뢰성을 한층 높이고, 보다 효율적인 차량 개발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기아의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는 6자유도(6DOF) 모션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전후, 좌우, 상하의 직선 운동과 롤(Roll), 피치(Pitch), 요(Yaw)의 회전 운동이 복합적으로 구현되며 실제 차량의 성능 육성과 검증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거동을 정밀하게 재현한다. 270° 곡면 스크린에는 30°씩 영역을 분담하는 4K 해상도/240Hz 고화질/고주사율 프로젝터 9개가 선명하고 부드러운 화면을 제공한다. 콕핏은 무게를 줄이기 위해 카본 소재로 제작됐지만, 스티어링 휠과 시트, 페달, 내부 트림 등은 모두 양산 부품을 그대로 적용했다. 실제 차량과 똑같은 환경과 조작감을 구현하기 위해서다.


드라이빙 시뮬레이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로의 재현 수준이다. 이를 위해 현대차그룹은 남양기술연구소의 주행시험장을 1㎜ 단위로 정밀 스캔해 노면의 경사와 요철, 과속방지턱, 아스팔트의 질감까지 데이터로 옮겨 담았다. 버추얼 차량 개발의 해상도를 높이기 위해 현실의 도로를 그대로 가상 공간에 들여온 셈이다.

문제는 방대한 데이터 용량이다.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도로 모델을 한꺼번에 불러오면 시뮬레이터 구동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대차는 세계 최초로 지형 서버(Terrain Server) 방식을 적용했다. 가상의 차량이 주행하는 위치 주변의 데이터만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방식으로, 초고용량 렌더링 데이터의 사용에도 지연 없이 자연스러운 주행이 가능하다. 플레오스 커넥트에 탑재된 현대차의 새로운 내비게이션이 경로 상의 정보를 불러오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는 차량의 거동뿐만 아니라, 노면에서 전달되는 최대 40Hz의 미세한 진동까지 재현하는 고성능 사양이다. 덕분에 양산 모델 개발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서킷으로 불리는 독일 뉘르부르크링을 질주하는 레이스카와 현대 N, 그리고 제네시스 마그마 등의 고성능차 개발에도 활용된다. 또한 정밀한 해석 모델링 데이터를 바탕으로 부품의 특성을 실시간으로 바꿔 다양한 세팅을 시험할 수 있고, 날씨의 제약 없이 젖은 노면 주행도 즉시 평가할 수 있다.


현대차·기아는 독자적인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를 통해 앞으로 더 많은 차량과 시스템을 검증할 계획이다. 또한 해외 연구소와 데이터를 공유해 글로벌 공동 개발의 가교 역할도 도맡을 예정이다.


정 책임은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는 단순히 하드웨어를 도입한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부터 평가기준까지 현대차·기아만의 독자적인 데이터와 기술이 집약된 가상 검증 플랫폼”이라고 강조했다.

② 디지털 측정 센터(DMC): 보이지 않는 치수 품질까지 데이터로 관리하여 차량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다


남양기술연구소 내 AMS(Advanced Mobility Solutions)동에 위치한 DMC는 디지털 측정 기술을 활용해 차량 치수 관리의 핵심 역할을 하는 곳이다. 차량의 치수 오차는 고객 만족도와 직결된다. 외관의 틈새나 단차가 어긋나면 고급감이 떨어지고, 이 오차에서 비롯되는 소음이나 누수 문제가 고객 불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DMC는 ‘①외관 품질 ②NVH ③수밀 ④기능 및 조립성’이라는 4대 검증 항목을 데이터로 관리하고 있다.


가장 먼저 차량의 뼈대인 바디 스트럭처를 측정하는 공간에는 3차원 측정장비 CMM(Coordinate Measuring Machine)이 늘어서 있다. 센서가 측정물에 직접 접촉해 좌표값을 읽어내는 장치다. CMM이 읽는 차 한 대당 측정 포인트는 무려 1,000개에 이른다.


파이롯트품질검증팀 한진수 팀장은 “연관성 있는 포인트 간의 편차와 거리, 평행도를 계산해 실질적인 품질을 판단한다”며 “약 600개의 평가 항목으로 완성된 측정 체계는 그대로 양산 공장으로 이관돼 동일한 기준의 품질을 구현한다”고 설명했다.


후드와 도어, 테일게이트 같은 무빙 부품을 검증하는 공간에서는 광학식 3D 스캐너로 전체 형상을 빠르게 측정한다. 자율주행 운반 로봇(AMR)으로 측정물을 자동 이송하고, 로봇 암에 장착된 3D 스캐너가 자동으로 측정하기에 작업자의 개입 없이도 정밀한 측정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부품과 완성차를 함께 검증하는 완성차 복합 측정실에서는 조립 전후 품질을 차례로 검증한다. 먼저 실제 차체와 똑같은 모양으로 만든 총합검사구에 부품을 장착하고 작업자가 포터블 3D 스캐너로 형상을 측정했다. 이를 통해 조립 품질 문제를 걸러내고 불량을 사전에 차단한다. 측정은 수작업으로 이뤄지지만 측정 효율은 굉장히 높다.


한 팀장은 “검사구 곳곳에 붙어 있는 마커들을 기준으로 소프트웨어가 가상의 측정 공간을 미리 잡아두기 때문에, 실제로는 상당 부분이 자동화돼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으로는 차량 전체를 스캔해 최종 상태를 검증하는 작업이 진행된다. 완성된 차량의 외관 문제는 여러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원인을 규명하기 쉽지 않다고 한다.


한 팀장은 “DMC는 바디부터 무빙, 장착, 의장 부품까지 모든 단계의 측정 데이터를 이미 확보하고 있어, 완성차에서 문제가 발견되어도 어느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곧바로 추적해 분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빙 부품의 움직임을 검증하는 무빙 동적 검증장에서는 움직이는 부품에 대한 추적이 이루어진다. 도어나 테일게이트와 같은 무빙 부품은 힌지로 연결돼 끊임없이 움직이고, 고무류로 밀폐되면서 다양한 외력에 그대로 노출된다. 검사장에선 작업자가 차량의 도어를 닫으면서 초고속 카메라와 센서로 순간 변형량을 계측했다. 이 센서는 초당 500회의 속도로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움직임마저 정밀하게 감지한다. 이 밖에도 무빙 부품의 중량 증가나 외력에 의한 후변형 평가도 이곳에서 진행한다.


이처럼 다양한 측정 체계에서 수집된 데이터는 DMC의 핵심 자산이다. DMC는 측정 데이터를 가상 공간에서 최적의 조립 상태를 찾는 'DATA-FIT'과 개선 방향을 도출하는 'DATA-AUDIT'에 활용하고 있다. 또한 DMC는 수집된 데이터를 활용해 AI 데이터 서버를 구축하는 등 차량 개발의 혁신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한 팀장은 “DMC는 차량의 보이지 않는 부분의 품질까지 데이터로 관리하는 핵심 거점”이라며 “고객 모두가 고품질의 차량을 경험하며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③ 적층 제조 솔루션 센터(AMSC): 첨단 3D 프린팅 기술로 부품 제조의 한계를 넘다


설계 데이터만으로 금형 없이 어떤 형상이든 구현해내는 적층 제조 솔루션 센터(Additive Manufacturing Solution Center, 이하 AMSC)는 양산 단계 전 실물과 같은 크기로 제품을 구현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흔히 3D 프린팅으로 알려진 적층 제조는 재료를 한 층 한 층 쌓아 부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적층제조솔루션팀 한강희 팀장은 “비누 덩어리를 깎아 모양을 내는 것이 기존의 절삭 가공이라면, 찰흙을 돌돌 말아 한 층씩 쌓아 올리듯 재료를 더해 형상을 만드는 것이 적층 제조”라며 두 방식의 차이를 알기 쉽게 설명했다.


AMSC는 현대차그룹에 최초의 3D 프린터가 도입된 1996년 이후 30년 만에 새로 지은 AMS동에 문을 연 제조솔루션본부다. 설계부터 출력과 후처리, 검사에 이르는 적층 제조 기술 연구를 수행하며, 그룹사 간 연계 비즈니스를 지원하는 역할도 도맡고 있다.


처음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액상 레진을 자외선으로 경화시켜 부품을 만드는 폴리머 광중합셀(Vat photopolymerization Cell)이다. 이 곳에는 제조 방식에 따라 DLP(Digital Light Processing) 타입의 설비와 SLA(Stereolithography) 타입의 설비가 마련돼 있다. DLP 타입은 UV램프를 이용해 액상 레진 레이어에 자외선을 넓게 조사해 면 단위로 경화시키는 반면, SLA는 레이어를 점 형태의 레이저로 빠르게 조사해 경화시킨다. 두 방식은 헤리티지 차량 복원에도 쓰였다. 현장에 전시된 현대차 포니의 사이드 실 부품은 실제 부품을 3D 스캔한 뒤 적층 제조로 원형과 질감을 복원한 뒤 도장까지 마쳐 품질이 매우 우수했다.


옆에는 금속 와이어를 녹여 쌓는 WAAM(Wire Arc Additive Manufacturing) 설비가 모습을 드러낸다. 용접 아크로 금속을 한 층씩 쌓는 이 방식은 강, 스테인리스, 알루미늄, 티타늄 등 다양한 금속을 활용할 수 있고, 중간 조립 구조 없이 대형 구조물이나 일체형 부품을 제작할 수 있다. 현장에서는 로봇 암이 불꽃을 튀기며 금속을 정교하게 쌓아 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승엽 책임매니저는 “설계 형상에 맞춰 적층되는 높이를 실시간으로 보정하기 때문에 원하는 형상을 빠르게 만들 수 있고, 이후 약간의 후가공을 통해 복잡한 구조의 대형금속부품도 빠르고 정교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는 WAAM으로 제작한 부품들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차량용 모터 하우징은 WAAM의 적층 상태와 CNC로 매끈하게 후가공된 상태를 한눈에 비교해 볼 수 있었다. 3층의 마지막 공간인 품질검사셀에서는 제작된 부품의 치수를 재는 3차원 측정부터 인장강도, 굽힘강성, 충격 평가까지, 재료와 부품의 성능을 자체적으로 검증한다. 단순히 형상만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용을 전제로 사출 제작 부품과 동일한 기준의 품질 검증을 거치는 것이다. 이 평가를 통과해야 비로소 실제 사용으로 이어진다.


4층으로 올라가자 분말을 원재료로 다루는 설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금속 분말을 레이저로 녹여 쌓는 금속 분말 용융 설비는 총 6개의 레이저 빔으로 정밀한 형상을 구현한다.


김용욱 매니저는 “세계 최초로 도입된 금속 적층 설비로, 주조나 프레스로는 만들 수 없는 복잡한 형상이나 모터 스포츠 부품처럼 강성 확보와 경량화가 동시에 요구되는 부품 등도 제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맞은편에는 플라스틱 분말을 다루는 폴리머 분말소결셀이 설치돼 있었다. 이는 베드 내 얇게 깔린 분말을 녹여서 폴리머 부품을 출력하는 PBF(Powder Bed Fusion) 방식이다. 이 방식의 장점은 출력물을 지탱해주는 지지대가 필요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후처리 공정과 재료 낭비도 적다. 출력 직후 다소 거친 표면도 증기 평탄화 처리를 거치면 사출 부품과 구분이 어려울 만큼 매끄러워진다. 현장에 전시된 커스터마이징 부품이나 도어 트림과 같은 출력물에서 깔끔한 표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AMSC는 적층 제조 기술의 무궁무진한 활용성에 더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헤리티지 차량 복원은 물론, 모터스포츠용 경량 부품, 단종 모델의 A/S 부품 공급까지 폭넓게 대응하고 있다. 특히 현대모터스포츠법인과 협업해 안티 롤 바 블레이드, 댐퍼 브래킷, 브레이크 덕트 레일 등 경량화와 고강성이 동시에 요구되는 부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AMSC는 현대차그룹의 적층 제조 역량의 핵심 거점으로서 미래 모빌리티 시대의 제조 경쟁력을 뒷받침할 것이다.

④ 노바 랩(NOVA Lab): 차세대 개방형 제어기 검증 체계로 SDV 시대를 준비하다


노바 랩(Next-generation Open Validation & Automation Lab)은 차세대 개방형 제어기 검증실이다. 연구실에는 완성된 차량 대신, 차량 구조의 테스트 벤치 위에 와이어링과 제어기, 전장 부품을 그대로 연결한 와이어카(Wire-car)가 늘어서 있다.


와이어카는 차량 전체의 전기·전자 시스템을 실물 하드웨어로 구현한 검증 플랫폼이다. SDV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제어기 통합이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대형 차종의 경우 연결되는 제어기와 전장 부품은 300~500개, 와이어링 커넥터는 약 500개에 달한다.


파이롯트전장제어개발팀 김상연 파트장은 “시험차가 제작되기 전, 차량 전체 시스템을 실물로 연결해 기능과 통신, 진단을 검증하는 최초의 단계”라며, “완성된 차에서는 트림 내부에 위치한 제어기를 탈거하거나 회로를 분석하기 어렵지만, 와이어카에서는 기본 기능들을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검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검증 셀에서는 와이어카의 테스트가 한창이었다. 회로, 통신, 기능, 진단 네 가지 항목을 중심으로 구성된 검증 시나리오에 따라 자동으로 검증이 이뤄졌다. 시연에서는 공조, 램프, 시트 기능을 순차적으로 검증하며 항목별 정상 여부와 소요 시간이 자동으로 표시됐고, 통합 전원 장치로 저전압, 과전압 같은 가혹 조건을 모사하기도 했다. 외기온 센서에 공급하는 전압을 바꾸자, 실내에 있는데도 클러스터의 온도 표시가 영하로 내려가며 경고 메시지가 뜨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다음 공간에서는 주행 조건에서의 심화 검증이 이어졌다. 와이어카 만으로는 노면의 마찰력을 만들어내는 타이어와 차량 하중이 없어 주행과 동일한 상황을 모사하기 어렵다. 노바 랩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차량 구동 부하 장치를 자체 개발했고, 여기에 소형 다이나모미터를 결합한 이동식 장비(Torque Wheel Dynamometer)를 도입해 실차에 가까운 주행 조건을 구현했다. 현장에선 모터 구동 소리와 함께 다양한 차량 검증이 이뤄졌으며, 자동 도어락 등 주행 속도별로 구현되는 차량 기능 검증이 차례로 이어졌다.


또한 주행 모사 조건에서는 ADAS 기능 검증도 진행됐다. 이를 위해 노바 랩은 ADAS 시뮬레이터를 도입했는데, RTS(Radar Target Simulator)를 통해 레이더 신호를 생성하고, 가상의 주행 이미지를 차량 카메라에 제공하는 등 ADAS 기능 검증을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테스트 벤치에서는 주행을 시작해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SCC) 진입과 가속, 후측방 충돌 경고(BCW), 차로 유지 보조(LFA/LKA), 전방 충돌 방지 보조(FCA)로 이어지는 시나리오가 차례로 시연됐다.


마지막은 SDV 검증셀이다. SDV 시대로 접어들면서 자동차의 전기·전자 구조는 근본부터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기능별로 흩어져 있던 수많은 제어기는 고성능 컴퓨터 기반의 존(Zone) 제어로 통합되고, 전원은 기존 12V에서 48V로, 통신은 CAN에서 고속 이더넷으로 바뀐다. 이처럼 차량의 전원과 통신 체계가 달라지면, 기존의 방식만으로는 차량을 온전히 검증하기 어렵다. 노바 랩은 이에 대응하기 위한 신규 검증 장비와 기법을 지속적으로 연구하며 차량 검증 역량을 높여가고 있다.


김 파트장은 “노바 랩은 그룹사와 협력사가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오픈형 플랫폼”이라며 “실차 제작에 앞서 통신 상태나 제어기 간 충돌 등을 미리 발견하고 개선해 SDV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신차 한 대를 개발하는 동안 와이어카 단계에서만 평균 150~200건의 문제점을 찾아낸다. 체계화된 검증 환경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오류까지 걸러내는 노바 랩은 다가올 SDV 시대의 완성도를 책임지는 공간이다.

◆ 완벽을 향한 끊임없는 도전, 남양기술연구소의 R&D


네 곳의 현장은 저마다 다른 기술을 다루고 있지만 하나의 공통된 방향을 향하고 있다. 차량을 개발하기 전에 가상현실과 데이터로 먼저 검증하고, 소프트웨어와 정교한 개발 기준으로 차량의 완성도를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는 가상 공간에서 주행 성능 개발과 검증을, DMC는 데이터로 치수 품질을, AMSC는 금형 설계 없이 모델링만으로 다양한 부품을, 노바 랩은 실차 이전에 제어기를 검증하며 개발 속도와 완성도를 동시에 높이고 있다.


남양기술연구소는 디지털 기반의 혁신 R&D 기술로 차량 개발의 방식을 새롭게 바꿔가고 있다. 이를 통해 현대차·기아는 소프트웨어 혁신을 넘어, 하드웨어 기술력과 완성차 품질까지 아우르는 기술 역량으로 미래 모빌리티 시대를 선도해 가고 있다. 어떤 자동차도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끝없는 시험과 개선, 그리고 검증을 통해 완성될 뿐이다. 그 끝없는 개발 과정의 한 가운데에 남양기술연구소의 첨단 R&D 현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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