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 유가가 하락세를 보여도 초대형 유조선(VLCC) 운임이 배럴당 26달러 수준까지 폭등해 원유 도입 비용의 약 2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 중동 분쟁으로 인한 수송 거리(톤마일) 증가와 신규 선박 공급 부족, 장금상선의 공격적인 스팟 선박 선점이 맞물려 운임을 끌어올렸습니다.
- 신조 유조선 인도가 본격화되는 2028년 전까지는 고운임 기조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 한국 정유업계와 소비국의 실질 도입 부담이 지속될 전망입니다.

국제 유가가 고점에서 내려왔다는 소식이 이어지지만, 한국의 실질 원유 도입 비용은 전혀 낮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원유 자체 가격이 내려가도 이를 실어 나르는 초대형 유조선(VLCC)의 운임이 사상 최고치로 폭등했기 때문입니다. 과거 원유 가격의 2~3% 수준에 불과했던 운송비가 이제는 도입 가격의 25%에 육박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1. 유가 하락 뒤에 숨은 운임 폭등
중동 정세 긴장이 다소 완화되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우회 수송 방식을 가동하면서 국제 유가는 배럴당 하락세를 나타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에너지 위기가 진정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해상 운송 시장에서는 정반대의 폭풍이 불고 있습니다.

원유 운반선 부족 현상이 전 세계 원유 공급망을 위협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통해 운임 급등의 배경을 살펴봅니다.
미국 휴스턴에서 원유 200만 배럴을 싣고 동아시아로 향하는 VLCC 1항차의 총 운임은 약 5,200만 달러(배럴당 약 26달러) 수준까지 치솟았습니다. 현재 200만 배럴급 초대형 유조선의 신조선 가격이 약 1억 3,100만 달러, 중고선 가격이 약 1억 800만 달러 선임을 고려하면, 배를 단 2~3회 왕복 운항하는 것만으로 선박 한 척 가격 전체를 회수할 수 있는 전례 없는 슈퍼 수익 구간에 들어선 셈입니다. 선주들의 장기 용선 환산 일일 순소득 역시 과거 역사적 고점이었던 20만 달러를 훌쩍 넘어 하루 100만 달러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2. 운임 폭등 이유? 톤마일의 급증
운임이 이토록 비이성적으로 폭등한 1차 원인은 바로 톤마일(Ton-Mile, 수송 화물량×운항 거리)의 구조적 급증에 있습니다.

원유 수입 노선이 중동에서 미국으로 멀어지면서, 같은 양을 들여오는 데도 훨씬 많은 유조선이 필요해지는 톤마일 효과를 보여줍니다.
한국은 연간 약 10억 배럴의 원유를 수입합니다. 중동 페르시아만에서 들여올 경우 왕복에 약 40일이 걸려 VLCC 1척이 1년에 약 9회(9항차) 운항할 수 있으므로, 총 55척의 선박만 있으면 수입 물량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동 리스크로 인해 미주 노선(왕복 약 105일) 등 장거리 원유로 대체하게 되면, 동일한 10억 배럴을 실어 나르기 위해 무려 144척의 VLCC가 필요해집니다.
물동량 자체가 늘지 않아도 수송 거리가 2~3배 늘어나면서 전 세계 유조선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입니다.
3. 시장을 잠근 방아쇠: 공급 가뭄과 장금상선의 8조 원 베팅
늘어난 수요를 맞출 배가 시장에 없었다는 점이 사태를 키웠습니다. 최근 수년간 글로벌 친환경 전환 붐으로 석유 수요 감소 기대가 커지면서, 조선소의 VLCC 신규 발주와 인도가 극단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2024년 인도 물량이 단 한 척에 불과할 정도로 신규 공급이 급격히 줄어든 상황이 유조선 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심화하고 있습니다.
2024년 글로벌 시장에 인도된 VLCC는 단 1척에 불과했고, 2025년에도 6척 수준에 그칠 예정이었습니다. 전체 900여 척의 VLCC 중 러시아 그림자 함대와 각국 국영선사의 장기 계약 물량을 제외하면, 실제 시장에서 즉시 빌릴 수 있는 스팟(Spot) 선복량은 300~350척에 불과했습니다.
이 틈을 파고든 곳이 한국 해운사 장금상선(시노코)입니다. 장금상선은 세계 1위 컨테이너 선사 MSC와 손잡고 전쟁 발발 전인 올해 초부터 중고 VLCC 약 72척(약 60억 달러, 한화 약 8조 원 규모)을 공격적으로 사들였습니다. 기존 보유 선박을 합쳐 약 120여 척을 확보하면서 가용 스팟 시장 물량의 30% 이상을 단숨에 과점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중동 산유국들이 수출 통로 차단에 대비해 유조선을 해상 부유식 저장고(FSO)로 임차하면서 30~50척의 유조선이 바다 위에 묶였고, 시장의 유휴 선박은 사실상 완전히 고갈되었습니다.
4. 누가 얼마나 타격을 받을까?
유조선 용선 시장은 극단적인 비탄력성을 띱니다. 가용 선박의 95% 이상이 가동되는 순간 운임 그래프는 수직 상승합니다.
정유사 시설의 핵심인 거대 증류탑은 가동을 멈추면 잔류물이 식어 배관이 막히고, 이를 세척하고 재가동하는 데만 수백억 원의 비용과 막대한 정제 마진 손실이 발생합니다. 정유사는 적자가 나지 않는 한(정제 마진 한도 안에서) 운임이 배럴당 26달러를 넘더라도 원유를 실어 올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유가가 안정되어도 운임 부담은 고스란히 원유 도입국으로 넘어옵니다. 산유국은 배럴당 기준가로 판매하지만, 수입국인 한국 정유사와 소비자는 기름값에 25%의 운임을 얹어 들여오는 구조적 비용 부담을 안게 됩니다.
5. 2028년까지의 전망과 리스크

2028년경이 되어야 VLCC 인도 물량이 늘어나며 유조선 시장의 수급 여유가 생길 것으로 보입니다.
향후 관건은 신조선 공급 시점과 원유 도입선 다변화의 안착 여부입니다. 운임 폭등 이후 올해 선박 건조 주문이 200척 이상 쏟아졌지만, 조선소 건조 일정을 고려할 때 이 물량이 시장에 본격 인도되는 시점은 2028년 이후입니다. 2026~2027년까지는 여전히 신규 공급이 평년 수요를 밑돌아 높은 운임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장기적으로 대체 에너지 확산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져 석유 물동량 자체가 급감하거나, 글로벌 경기 둔화로 정유사 가동률 조정이 본격화될 경우 운임 거품이 조기에 꺼질 수 있습니다. 고운임에 따른 에너지 도입 단가 상승이 국내 물가와 정유업계 수익성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지켜봐야 할 시점입니다.
FAQ
유가가 내려가는데 왜 국내 기름 도입 단가는 비싸지나요?
원유 자체의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이를 운송하는 초대형 유조선의 운임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아 도입 가격의 약 25%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톤마일(Ton-Mile)이란 무엇이며 왜 운임에 영향을 주나요?
톤마일은 수송 화물량에 운항 거리를 곱한 값입니다. 중동 대신 미국 등 장거리 노선에서 원유를 수입하면 운항 일수가 40일에서 105일로 늘어나, 동일한 양의 기름을 나르는 데 필요한 선박 수가 2~3배 이상 급증하여 운임 상승을 촉발합니다.
장금상선은 어떻게 선박 시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냈나요?
신규 선박 공급이 극단적으로 부족했던 시기에 세계 최대 선사 MSC의 금융 지원을 바탕으로 스팟 시장에 풀린 중고 초대형 유조선 72척을 일괄 매입해 가용 선박의 30% 이상을 과점했기 때문입니다.
초대형 유조선의 높은 운임은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최근 발주된 신조 유조선들이 시장에 대거 인도되는 시점이 2028년 이후이므로, 향후 2~3년간은 선박 공급 부족에 따른 고운임 구조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