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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연봉이 물가 상승률인 3%만큼 올라도, 2008년 이후 사실상 고정된 소득세 과세표준 탓에 높은 세율 구간에 진입하여 세금은 평균 9% 급증하게 됩니다.
  • 미국, 영국 등 OECD 다수 국가는 이런 '그림자 증세'를 막기 위해 과세표준을 물가에 연동시켜 자동으로 조정하거나 의회가 주기적으로 개편하고 있습니다.
  • 최근 여야에서 물가연동제 도입 법안을 잇따라 발의하고 있으나, 연간 3조 원의 세수 감소와 고소득층 혜택 쏠림을 우려하는 정부의 반대로 실제 도입 여부는 미지수입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 언더스탠딩입니다. 여러분, 작년에 연봉이 물가 상승률만큼 올랐다고 안도하셨나요? 안타깝게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사실은 손해를 봤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최근 한국경제인협회 분석에 따르면, 월급이 3% 오를 때 세금은 무려 9%나 더 빠져나가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내 소득은 물가에 맞춰 제자리를 걸었을 뿐인데, 국가는 나를 '더 부자가 된 사람'으로 취급해 더 높은 세율을 매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소득세 '물가연동제'를 도입해 조용한 증세를 막아야 한다는 법안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내 지갑을 털어가는 이른바 '그림자 증세'의 메커니즘과, 이를 둘러싼 팽팽한 찬반 논리를 뜯어보겠습니다.

연봉은 3% 올랐는데, 세금은 왜 9% 오를까?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회사가 물가 상승률 3%를 반영해 내 연봉을 3% 올려주면, 나의 실질적인 구매력은 작년과 똑같이 유지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하지만 급여명세서의 소득세 항목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우리나라의 소득세는 소득이 높아질수록 세율이 커지는 누진세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이 뭐냐면, 연봉이 오르면 단순히 세금을 조금 더 내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더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 새로운 구간으로 진입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월급은 물가만큼 올랐을 뿐인데, 세금은 누진세의 가파른 계단을 밟고 훌쩍 뛰어오르게 됩니다. 결국 실질 임금은 제자리인데 세금 부담만 커지는 셈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아무도 모르게 세금을 더 걷어간다고 해서 '그림자 증세(Shadow Tax)' 또는 '인플레이션 택스'라고 부릅니다.

16년째 요지부동인 소득세 '골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세금을 매기는 기준선, 즉 '과세표준'이 2008년 이후 16년째 거의 고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연봉 8,800만 원을 받는 직장인이 있다고 가정해 보죠. 이 금액은 소득세법상 딱 과세표준 경계선에 걸려 있습니다. 물가가 3.4% 올라서 회사가 연봉을 약 300만 원 올려 9,100만 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과세표준 기준점은 8,800만 원에 그대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결국 새로 오른 300만 원에 대해서는 기존 세율이 아닌 35%라는 훨씬 높은 세율의 철퇴를 맞게 됩니다. 고작 물가만큼 월급이 올랐을 뿐인데 세금만 105만 원이 훌쩍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스튜디오에서 두 남성이 대화하며 물가 연동 소득세 도입 국가와 미도입 국가를 비교한 화면을 보고 있다.


축구로 비유하자면, 선수들(물가와 임금)은 계속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는데 골대(과세표준)는 16년 전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겁니다. 골대가 알아서 뒤로 물러나 주지 않으니, 가만히 있어도 수많은 직장인들이 높은 세율이라는 골망 안으로 쑥쑥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세율을 단 1%도 올리지 않고도 매년 엄청난 세수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마법 같은 구조입니다.

해외는 어떨까? 미국과 영국의 '골대 옮기기'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도 우리처럼 세금을 걷고 있을까요? OECD 38개국 중 미국, 영국, 캐나다 등 22개국(약 60%)은 이미 과세표준을 물가에 연동시켜 자동으로 골대를 뒤로 미루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미국의 사례를 보면, 2019년에 22% 세율이 적용되던 상한선이 16만 8천 달러였는데, 3년 뒤에는 17만 8천 달러로 약 만 달러(한화 약 1,500만 원)가량 상향 조정되었습니다. 물가가 오른 만큼 과세표준 구간도 넓혀주어 억울하게 세금을 더 내는 일을 막아준 것입니다.


한 남성이 대형 화면에 띄워진 미국 소득세 과세표준 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물론 이 나라들도 세수 부족에 대한 고민은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2018년부터 일반 소비자물가지수(CPI) 대신, 소비자의 대체 소비 패턴까지 반영해 물가 상승률을 약간 낮게 잡는 '연쇄 소비자물가지수'를 도입해 골대 이동 속도를 미세하게 늦췄습니다. 영국은 기본적으로 자동 연동을 하되, 국가 예산이 정말 부족한 해에는 의회의 결의를 통해 '올해는 물가 연동 정지'를 선언하기도 합니다. 반면 자동 연동제를 채택하지 않은 독일조차도, 정부가 2년마다 상세한 보고서를 내고 의회가 수동으로라도 꼬박꼬박 과세표준을 조정해 줍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물가 상승을 세금에 반영하려는 치열한 고민이 있는 겁니다.

정부가 물가연동제를 꺼리는 진짜 이유 (야당세의 비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소득세 물가연동제 법안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열쇠를 쥔 정부(기획재정부)는 굉장히 신중한 입장입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막대한 세수 감소입니다. 국회 예산정책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물가연동제를 도입할 경우 연간 약 3조 원 규모의 세수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만성적인 세수 부족에 시달리는 정부로서는 가만히 있어도 굴러들어오는 3조 원을 스스로 포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둘째, 고소득층 혜택 쏠림 논란입니다. 누진세 구조의 특성상, 과세표준 골대를 뒤로 미루면 높은 세율 구간에 있던 고소득자일수록 아끼게 되는 세금의 절대적인 액수가 훨씬 커집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각종 공제 혜택 덕분에 전체 근로자의 약 32%가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면세자입니다. 즉, 제도를 고쳐봤자 세금을 이미 많이 내고 있는 중산층 이상만 혜택을 본다는 논리가 반대파의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스튜디오에서 남성이 미국 소득세 과세표준 변화를 보여주는 표가 띄워진 대형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재밌는 건 세무업계에서 이 제도를 '대표적인 야당세'라고 부른다는 점입니다. 야당일 때는 "서민들 유리지갑 터는 조용한 증세를 멈춰라!"라고 강하게 주장하다가도, 막상 정권을 잡고 정부 살림을 책임지는 여당이 되면 "세수가 부족해서 좀 곤란하다"며 태세를 전환하기 때문입니다.

조용한 증세, 이번에는 막을 수 있을까?

올해 하반기 국회에서는 종합부동산세 등 부동산 세제 개편이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직장인들의 지갑과 가장 직결된 문제는 바로 이 '소득세 과세표준 연동'입니다.

정부가 세수가 부족하다면 당당하게 국민과 의회를 설득해 세율을 올리거나 새로운 세목을 신설하는 것이 정도(正道)입니다. 인플레이션 뒤에 숨어서, 월급쟁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세금을 더 걷어가는 방식을 언제까지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정치권이 발의한 법안들이 그저 '보여주기식 야당세'로 끝날지, 아니면 16년 묵은 골대를 드디어 옮기는 결과로 이어질지 직장인들의 매서운 감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FAQ

월급이 물가 상승률만큼 올랐는데 왜 실수령액은 오히려 손해인가요?

우리나라 소득세는 누진세 구조인데, 세금을 매기는 기준인 '과세표준'이 2008년 이후 거의 고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가 상승으로 명목 월급이 오르면 실질 구매력은 그대로여도 더 높은 세율 구간에 강제로 진입하게 되어 세금 부담이 급증하게 됩니다.

물가연동 소득세제를 도입하면 누가 가장 큰 혜택을 보나요?

구조적으로 고소득층이 더 큰 혜택을 볼 수 있습니다. 누진세율이 가파르게 올라가는 고소득 구간일수록, 과세표준이 물가에 연동되어 상향 조정될 때 높은 세율을 피하면서 절감되는 세금의 절대 액수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요?

미국, 영국 등 OECD 국가의 약 60%는 과세표준을 물가에 연동시켜 자동으로 조정합니다. 미국은 물가 지표를 미세 조정해 속도를 조절하고, 영국은 필요시 의회가 연동을 멈추기도 합니다. 독일처럼 자동 연동은 아니지만 의회가 주기적으로 수동 조정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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