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권력 지향적 문화는 '먼저 웃으면 지는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켜 타인과 정서를 공유하는 거울 뉴런의 작동을 스스로 억압하게 만듭니다.
- 코로나 이후에도 마스크를 고집하거나 기계적인 유아어 말투를 쓰는 현상은 타인과의 감정 교류를 차단하고 자존심을 지키려는 '정서적 거리두기'의 일환입니다.
- 인간의 자아와 창조성은 타인과 감각을 다르게 표현하며 교감하는 '감각의 교차 편집'에서 비롯되며, 이는 단순 텍스트 데이터 조합인 AI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본질적 영역입니다.

우리가 명함을 주고받을 때 누가 더 높은 사람인지 단번에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누가 먼저 웃느냐'를 보는 겁니다. 100% 확률로 직급이 낮은 사람이 먼저 웃습니다. 왜 그럴까요? 한국의 남성들은 자기가 먼저 웃으면 권력 관계에서 밑으로 들어간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웃지 않으려고 볼과 입가에 잔뜩 힘을 줍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소통이 꽉 막혀버린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타인과 감정을 나누는 '정서 공유'라는 소통의 수도관이 망가져 버린 것이죠. 겉보기에는 그저 무뚝뚝한 표정의 문제 같지만, 사실은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고 사회 전체를 분노와 단절로 몰아넣는 심각한 현상입니다. 도대체 우리 사회의 정서적 교감 시스템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이것이 왜 AI 시대에 인간의 창조성과 직결되는 문제인지 깊이 들여다보겠습니다.
먼저 웃으면 지는 거다? 권력과 억압의 심리학
나이가 들고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남성들의 얼굴은 변합니다. 입꼬리가 아래로 축 처지게 되죠. 웃지 않으려고 입 주변 근육에 억지로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입꼬리가 처진 3대 집단이 있습니다. 바로 사장, 교수, 그리고 고위 공무원들입니다. 이들은 직업적으로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거나, 자신이 항상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여기서 핵심이 뭐냐면, 이들은 '거울 뉴런(Mirror Neuron)'의 작동을 스스로 망가지도록 훈련받아 왔다는 사실입니다. 1991년 이탈리아 파르마 대학교 연구진이 원숭이 실험을 통해 발견한 거울 뉴런은 20세기 심리학과 뇌과학의 판도를 바꾼 어마어마한 발견이었습니다. 누군가 특정 행동을 하거나 감정을 느끼는 것을 '보기만 해도' 내 뇌의 같은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것이죠. 누군가 웃으면 나도 따라 웃게 되고, 누군가 찡그리면 나도 찡그리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남성들은 어릴 때부터 "남자 새끼가 왜 울어?"라며 감정을 억압하는 훈련을 받습니다. 타인과의 정서 공유를 차단하는 것이죠. 긍정적인 정서를 공유하지 못하는 리더들이 이끄는 사회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정치권에서 여야가 서로 여유로운 농담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죽일 듯이 비아냥거리기만 하는 것도, 결국 같이 살아야 한다는 전제하에 정서를 튜닝(Tuning)하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마스크와 팬암 미소, 감정 불편 사회의 민낯
이러한 정서적 단절은 비단 권력자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일상 곳곳에서 우리는 타인과 감정을 섞는 것을 극도로 불편해하는 '감정 불편 사회'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미소의 왜곡입니다. 진짜 미소는 눈 근육이 함께 움직여야 하지만, 억지로 입꼬리만 올리는 가짜 미소를 우리는 '팬암 미소(Pan Am Smile)'라고 부릅니다. 감정은 동하지 않았는데 규정상 친절해야 하니 입만 웃는 척을 하는 겁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고집하는 현상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위생의 목적도 있겠지만, 내 감정이 타인에게 읽히는 것이 불편하고 타인의 감정을 받아주는 것도 피곤하기 때문입니다. 사이버 공간에서 로그인과 로그아웃으로 관계를 쉽게 맺고 끊던 익명성의 규칙, 즉 '탈문명화'된 규칙이 오프라인 현실 세계로 그대로 밀고 내려온 결과입니다.
친절하지만 차가운 '정서적 거리두기'
감정 불편 사회를 증명하는 또 다른 흥미로운 현상이 있습니다. 바로 비행기 사무장이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의 특유의 말투입니다. "안전벨트 매실게요~", "결제 도와드릴게요~"라며 말끝을 묘하게 올리는 이 말투, 다들 한 번쯤 들어보셨잖아요?

심리학에서는 이를 '베이비 토크(Baby Talk)' 혹은 '머더리즈(Motherese)'라고 부릅니다. 본래 엄마가 아기에게, 혹은 주인이 강아지에게 쓰는 유아화된 말투입니다. 그런데 왜 서비스 직종에서 이 말투가 만연하게 된 걸까요?
이해를 하셔야 됩니다. 이것은 "내가 비록 당신에게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권력 관계에서 당신 밑에 있는 것은 아니며 당신과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싶지는 않다"는 무의식적인 방어기제입니다. 저는 이를 '정서적 거리두기'라고 부릅니다. 억지로 친절해야 하는 상황에서 내 자존심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상대방을 마치 어린아이나 강아지 대하듯 거리를 두어 버리는 겁니다. 정서를 공유해야 할 소통의 장에서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를 이모티콘처럼 평면화시키고 있습니다.
감각의 교차 편집, 자아와 창조성의 기원
그렇다면 도대체 올바른 정서 공유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여기서 우리는 인간 창조성의 기원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발달심리학자 다니엘 스턴(Daniel Stern)은 '정서 조율(Affect Attunement)'이라는 어마어마한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엄마와 아기가 소통할 때, 아기가 칭얼거리면 엄마는 똑같이 칭얼거리는 것이 아니라 슬픈 표정을 짓거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줍니다. 아기는 입과 소리로 감정을 표현했는데, 엄마는 표정과 리듬으로 그 감정을 받아주는 것이죠. 즉, 감정의 본질(강도, 리듬)은 같지만 표현하는 감각의 양식이 다릅니다. 저는 이를 '감각의 교차 편집'이라고 부릅니다.

이 과정에서 아기는 "어? 저 사람과 내가 느끼는 감정은 같은데,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네? 우리는 서로 다른 존재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엄마와 한 몸이었던 아기가 비로소 독립된 '자아'를 탄생시키는 결정적 순간입니다.
재밌는 건, 이 감각의 교차 편집이 예술적 창조성의 핵심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최초의 추상화가인 칸딘스키는 쇤베르크의 음악을 듣고 "음표로 세상을 표현하듯, 나도 색채와 점, 선으로 음악을 그려보자"라고 결심했습니다. 시각을 청각으로, 청각을 시각으로 치환하는 훈련. 이것이 훗날 바우하우스(Bauhaus) 디자인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위대한 창조성은 결국 타인과, 혹은 세상과 정서를 조율하며 감각을 다르게 엮어내는 능력에서 나옵니다.
AI는 결코 인간의 자아를 가질 수 없다
자, 그러면 최근 엄청나게 화제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AI)으로 돌아와 봅시다. AI가 자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요? 심리학자의 입장에서 단언컨대,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요즘 텍스트를 그림으로, 그림을 음악으로 바꿔준다는 '멀티모달(Multimodal)' AI가 유행입니다. 하지만 이는 인간이 하는 '감각의 교차 편집'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인간의 자아와 창조성은 타인과 눈을 맞추고, 체온을 느끼며, 실시간으로 서로의 감각을 조율하는 '상호 주관적(Intersubjective) 물리적 경험' 속에서 생성됩니다.
AI는 그저 텍스트 데이터의 확률적 조합을 흉내 내고 있을 뿐입니다. 인간 소통의 90%를 차지하는 비언어적, 감각적, 상호 주관적 데이터를 AI가 무슨 수로 경험하고 학습할 수 있겠습니까? AI가 "사랑합니다"라고 텍스트를 출력할 때, 거기에는 어떠한 정서적 떨림도, 거울 뉴런의 공명도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명확합니다. 타인과 눈을 맞추고, 표정을 읽으며, 정서를 튜닝하는 아날로그적인 교감 능력입니다. 이것을 포기하고 정서적 거리두기에만 익숙해진다면, 우리는 AI에게 일자리를 뺏기기 전에 스스로 기계와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FAQ
거울 뉴런이란 무엇이며 인간 소통에서 왜 중요한가요?
거울 뉴런은 타인의 행동이나 감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뇌의 같은 부위가 활성화되게 만드는 신경 세포입니다. 타인이 웃을 때 나도 따라 웃고 슬플 때 공감하게 만드는 생물학적 기반이며, 이 기능이 억압되면 타인과 정서를 공유하는 능력이 심각하게 훼손됩니다.
서비스 직종에서 유행하는 특유의 '친절한 말투'는 왜 생겨난 건가요?
심리학적으로 '베이비 토크(유아어)'에 해당하는 이 말투는, 겉으로는 친절을 제공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상대방과 정서적 거리를 두려는 방어기제입니다. 감정 노동의 피로를 줄이고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무의식적인 '정서적 거리두기' 현상입니다.
AI가 인간의 창조성이나 자의식을 가질 수 없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간의 자아와 창조성은 엄마와 아기가 감정을 다르게 표현하며 교감하는 '상호 주관적인 감각의 교차 편집' 과정을 통해 형성됩니다. 육체를 통한 물리적 교감과 정서 조율 경험이 없는 AI는 단순히 텍스트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모방할 뿐, 본질적인 자의식이나 창조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