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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얀마 군부가 최근 부정 선거를 통해 표면적인 민간 정부로 전환하자, 미국이 방관하는 틈을 타 중국이 발 빠르게 영향력을 확대하며 밀착하고 있습니다.
  • 과거 '내정 불간섭'을 고수하던 아세안은 미얀마의 지속된 평화 합의 파기에 분노해 강경 노선으로 돌아섰으나, 태국 등 회원국 간 이해관계 충돌로 완전한 제재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 미얀마는 거대한 노동력과 자원을 품은 마지막 미개척 시장이자 북한 외교의 지렛대인 만큼, 한국은 아세안을 통한 우회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을 준비해야 합니다.

최근 미얀마 군정이 총선을 거쳐 이른바 '민간 정부'로 간판을 바꿔 달았습니다. 미국이 동남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방관하는 사이, 중국은 엄청난 속도로 미얀마라는 지정학적 노다지를 삼키고 있습니다. 최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미얀마를 방문해 신임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가택 연금 상태이던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의 처우가 일부 변경된 것은 이러한 거대한 외교적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이번 사태는 단순히 미얀마 내부의 권력 다툼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수십 년간 '내정 불간섭'을 원칙으로 삼았던 아세안(ASEAN)이 유례없이 강경한 태도로 미얀마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그 내부에서는 회원국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습니다. 과연 미얀마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 동남아시아의 정치적 지각변동이 한국에게는 어떤 의미일까요?

무늬만 민간 정부, 그 이면의 실체

최근 미얀마는 5년의 군정을 끝내고 작년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총선을 치렀습니다. 내전이 심각해 선거를 하루에 끝내지 못하고 세 번에 나눠서 치러야 할 만큼 치안이 붕괴된 상태였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군부가 만든 정당(USDP)이 의석의 80% 이상을 싹쓸이했습니다.


중국 외교부장과 미얀마 대통령의 회담 장면 및 가택 연금 중인 아웅산 수지 고문의 모습이 담긴 화면

중국 외교부장과 미얀마 대통령의 회담 장면 및 가택 연금 중인 아웅산 수지 고문의 모습이 담긴 화면


사실상 이 선거는 철저히 기획된 부정 선거였습니다. 전체 지역구를 전수조사해 본 결과, 군부 정당 후보가 사전 투표에서 패배한 지역은 전국에서 단 네 곳에 불과했습니다. 투표함을 통째로 바꿔치기하거나 미리 표를 집어넣는 식의 조작이 횡행했던 겁니다.

여기서 핵심이 뭐냐면, 이 선거를 통해 새롭게 대통령 자리에 오른 인물이 바로 2021년 쿠데타의 주역인 민아웅흘라잉 군사령관이라는 점입니다. 과거 2011년에도 군부가 민간 정부로 전환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최소한 기존 군부 1, 2인자가 동반 퇴진하고 새로운 인물을 내세우는 흉내라도 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군사령관 본인이 스스로 군복만 벗고 양복으로 갈아입은 채 대통령 자리에 앉았습니다. 국제사회가 이 새로운 정부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냉담한 시선을 보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빈틈을 파고드는 중국의 발 빠른 행보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가 제재를 가하며 미얀마를 외면하는 사이, 그 빈 공간을 파고든 것은 중국입니다. 지난 4월 왕이 외교부장이 미얀마 대통령 집무실을 방문해 민아웅흘라잉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습니다. 이는 중국이 미얀마의 새로운 정부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양국 간의 밀착을 과시하는 행보였습니다.


중국 외교부장과 미얀마 대통령의 회담 장면 및 가택 연금으로 옮겨진 아웅산 수지 고문의 모습이 담긴 뉴스 화면

중국 외교부장과 미얀마 대통령의 회담 장면 및 가택 연금으로 옮겨진 아웅산 수지 고문의 모습이 담긴 뉴스 화면


재밌는 건, 중국의 외교적 압박 직후 미얀마 군부가 감옥에 있던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을 가택 연금으로 전환하는 유화책을 썼다는 사실입니다. 중국은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미얀마 내부의 안정을 원합니다. 미얀마는 중국과 2,000km 이상의 국경을 맞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양의 천연가스를 중국에 전량 공급하는 핵심 자원 줄이기 때문입니다.

통념과 달리 역사적으로 아웅산 수지가 집권하던 2016년부터 2020년 사이 미얀마와 중국의 관계는 역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중국에게 중요한 것은 미얀마의 통치자가 군부냐 민주 진영이냐가 아니라, 누가 중국의 경제적 이익과 국경 안정을 확실히 보장해 줄 수 있느냐입니다.

'내정 불간섭' 아세안이 뿔난 이유

이런 상황에서 가장 의아했던 건 아세안의 태도 변화입니다. 아세안은 1967년 창설 이래 철저하게 '내정 불간섭' 원칙을 고수해 왔습니다. 회원국이 독재를 하든, 쿠데타를 일으키든 다른 나라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미얀마 사태에 대해서는 외교장관 회의나 정상회담에 미얀마를 아예 초청조차 하지 않는 초강경 대응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2021년 아세안 정상회담 사진과 5대 합의안이 정리된 발표 자료 화면

2021년 아세안 정상회담 사진과 5대 합의안이 정리된 발표 자료 화면


발단은 2021년 쿠데타 직후 열린 자카르타 아세안 특별 정상회의였습니다. 아세안은 민아웅흘라잉 군사령관을 직접 불러 인권 탄압 중단과 정치범 석방 등을 골자로 하는 '5대 평화 합의안'을 도출했습니다. 당시 민아웅흘라잉은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했지만, 돌아가서는 단 하나의 약속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세안 입장에서는 국제적 위신이 완전히 짓밟힌 셈이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주도해서 맺은 합의를 대놓고 무시하는 미얀마 군부를 그대로 둔다면, 지역 협의체로서 아세안의 존재 이유 자체가 위협받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과거와 달리 아세안이 미얀마를 강력하게 배척하고 있는 결정적 이유입니다.

쪼개진 아세안, 제재의 한계점

그렇다면 아세안이 똘똘 뭉쳐서 미얀마를 완벽하게 제재하고 있을까요? 상황은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아세안 내부에서도 이해관계에 따라 심각한 분열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경을 쓴 남성이 스튜디오 책상 앞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안경을 쓴 남성이 스튜디오 책상 앞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등 섬나라 위주의 국가들은 미얀마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덜하기 때문에 강하게 미얀마를 규탄하고 있습니다. 반면, 미얀마와 긴 국경을 맞대고 있고 천연가스 수입 등 경제적으로 깊이 얽혀 있는 태국은 은근히 미얀마 군부의 뒤를 봐주는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 아세안 정상회담에서도 태국은 미얀마를 대변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 필리핀 등 강경파 국가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분열은 아세안 특유의 '만장일치제(Musyawarah)' 의사결정 구조와 맞물려 미얀마 사태 해결을 더욱 더디게 만들고 있습니다. 정치 체제가 이슬람 절대군주제부터 사회주의, 민주주의까지 너무나 다양한 회원국들이 모여 있다 보니, 누군가 하나라도 반대하면 강력한 페널티를 부과할 수 없는 시스템적 한계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미얀마 군부 역시 이 점을 꿰뚫어 보고 아세안에서 탈퇴하지 않은 채 버티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에게 미얀마와 동남아는 어떤 의미일까?

자, 그러면 이 복잡한 동남아시아의 정세가 우리 한국에게는 어떤 시사점을 던져줄까요?

미얀마는 인구 5,500만 명에 풍부한 자원과 3,500만 명의 젊은 노동력을 보유한 아시아의 '마지막 미개척지'입니다. 쿠데타 직전까지만 해도 '제2의 베트남'으로 불리며 전 세계 투자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또한 동남아 국가들은 북한과도 외교적 관계를 맺고 있어,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 중요한 외교적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정치적 리스크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한국 정부나 기업이 섣불리 전면에 나서기는 곤란합니다. 자칫 국제사회의 제재 흐름을 거스르거나 아세안 강경파 국가들과 마찰을 빚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 당장은 아세안이라는 지역 협의체를 통한 우회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유효합니다. 미국이 비워둔 자리를 중국이 빠르게 채우고 있는 역학 구도 속에서, 동남아 국가들 역시 미·중 양자택일이 아닌 '제3의 대안 세력'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경제적 투자뿐만 아니라 한류 등 소프트파워를 지렛대 삼아 아세안과의 결속을 다져놓는다면, 미얀마 정세가 안정화되는 시점에 가장 먼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탄탄한 교두보를 마련하게 될 것입니다.


FAQ

미얀마 군부는 왜 굳이 총선을 치러 민간 정부로 간판을 바꿨나요?

국제사회의 제재를 피하고 합법적인 통치 명분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철저한 사전 투표 조작을 통해 군부 정당이 의석을 독식했고, 쿠데타 주역인 군사령관이 스스로 민간복으로 갈아입고 대통령이 되는 등 실질적인 권력 구조는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중국은 왜 미얀마 군부에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있나요?

미얀마가 보유한 풍부한 천연가스 자원을 독점하고, 동남아시아 내에서의 지정학적 패권을 굳히기 위해서입니다. 중국은 미얀마의 통치 방식보다는 자국의 경제적 이익과 국경 지대의 안정을 확실히 보장해 줄 세력이 누구인지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과거 '내정 불간섭'을 고수하던 아세안이 왜 미얀마에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나요?

2021년 쿠데타 직후 아세안이 미얀마 군사령관을 직접 불러 합의한 '5대 평화 합의안'을 미얀마가 철저히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아세안의 국제적 위신과 지역 협의체로서의 존재 의의를 크게 훼손한 행위로 간주되어, 이례적인 강경 대응을 이끌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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