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구장의 핵심 요구사항인 전 좌석 시야 확보를 위해 서울월드컵경기장은 관중석 내부 기둥을 완전히 제거했습니다.
- 경기장 바깥에 세운 16개의 마스트와 강철 케이블로 지붕을 위에서 낚아채듯 매달아 하중을 땅으로 전달합니다.
- 받치는 방식 대신 매다는 역발상을 통해 6만 개의 관중석 어디에서나 그라운드가 통째로 보이는 대공간을 완성했습니다.

서울 상암동의 서울월드컵경기장은 6만 명에 달하는 관중석을 거대한 지붕으로 덮고 있으면서도, 관중석 내부에는 지붕을 받치는 기둥이 하나도 없습니다. 경기장 지붕은 아래에서 기둥으로 받쳐 올린 것이 아니라, 경기장 바깥에 세운 구조물에서 강철 줄로 위에서 매달아 떠 있는 형태입니다. 대규모 경기장에서 관중의 시야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엄청난 무게의 지붕을 공중에 띄운 공학적 원리와 역발상 구조를 살펴봅니다.
관중석 시야를 100% 확보하는 공학적 이유: 왜 기둥 없는 지붕이 필요한가
축구장 건축에서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은 어느 자리에서든 그라운드가 통째로 보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느 자리에서든 경기장 전체가 막힘없이 보여야 한다는 축구장의 철칙이 바로 우리가 기둥 없는 지붕을 설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만약 경기장 관중석 한복판에 지붕을 받치는 대형 기둥이 들어서면, 그 기둥 바로 뒤쪽에 위치한 좌석들은 경기 장면이 가려져 시야가 차단됩니다. 이는 사실상 사용할 수 없는 시야 제한석이 되어 경기장 전체의 효율을 떨어뜨립니다. 하지만 축구장 수 개를 덮을 만큼 거대한 상암 경기장의 지붕은 강철 뼈대로 짜여 있고, 비나 눈이 내릴 경우 그 무게까지 더해집니다. 시야 확보를 위해 내부 기둥을 없애면서도 이 거대한 지붕 하중을 허공에서 안전하게 버티게 만드는 것이 핵심 과제였습니다.
아래에서 받치는 지붕 대 위에서 매다는 지붕: 마스트-케이블 인장 구조의 정의
대형 건축물에서 하중을 처리할 때 일반적으로는 지붕 아래에 기둥을 세워 위에서 누르는 힘(압축력)을 바닥으로 전달합니다. 반면 상암 경기장에 적용된 방식은 지붕을 아래에서 밀어 올리는 대신 하늘에서 강철 케이블로 당겨 매다는 인장 구조입니다.
기둥 없는 지붕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받치는 구조가 아닌 매다는 방식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발상이 필요했습니다.
이 구조에서는 지붕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뼈대로 조립한 뒤, 경기장 외곽에 세운 높은 기둥(마스트)에서 내려온 케이블이 지붕을 그물째 낚아채듯 팽팽하게 잡아당깁니다. 지붕에 가해지는 무게와 외부 하중은 기둥을 직접 누르는 대신 케이블의 당기는 힘으로 변환되어 외곽 마스트를 거쳐 지각으로 안전하게 흘러내려갑니다.
길게 뻗으면 해결될까? 캔틸레버 구조에 대해 흔히 하는 오해
기둥을 안 세우려면 관중석 맨 뒤쪽 테두리에서 지붕을 안쪽으로 긴 팔처럼 쭉 뻗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를 건축에서는 캔틸레버(외암) 구조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받침대 없이 보강되지 않은 팔은 길게 뻗을수록 끝부분에 작용하는 회전력 때문에 아래로 처지기 마련입니다. 팔을 앞으로 쭉 뻗고 책 한 권만 올리고 있어도 끝이 쉽게 기울어지는 것과 같은 물리학적 원리입니다. 지붕이 처지지 않도록 받침 없이 뻗치려면 지붕의 시작점인 뿌리 부분이 눈덩이처럼 두꺼워져야 하며, 이는 전체 무게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악순환을 만듭니다. 단순한 뻗치기 방식만으로는 대형 경기장 지붕을 경제적이고 안전하게 지지할 수 없습니다.
상암 경기장의 역발상: 16개 마스트와 강철 케이블이 만든 하중의 흐름
결국 설계진은 발상을 뒤집어 기둥의 위치와 역할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기둥을 관중석 안쪽이 아닌 경기장 바깥 테두리로 빼내어 16개의 대형 마스트를 세웠습니다.
마스트 꼭대기에서 뻗어 나온 강철 케이블은 거대한 지붕의 무게를 분산하며 안정적으로 지탱합니다.
돛단배의 돛대 형태를 띤 이 마스트들은 관중의 등 뒤에 위치하므로 시야를 전혀 가리지 않습니다. 마스트 꼭대기에서 늘어뜨린 고강도 강철 케이블은 지붕 전체 뼈대를 위에서 잡아채듯 단단히 매달아 둡니다. 지붕에 가해지는 중력은 케이블을 타고 마스트로 전달되며, 마스트를 따라 땅속으로 빠져나갑니다. 이로 인해 관중석 위쪽에는 팽팽한 케이블과 햇빛이 은은하게 스며드는 반투명 지붕 막만 남게 되어, 6만 개 좌석 전체에서 사각지대 없는 그라운드 조망이 가능해졌습니다.
마치 돛배의 돛처럼 하늘에서 지붕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구조 덕분에 관중석 어디서든 시야를 가리는 기둥 없이 탁 트인 경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대공간 건축을 감상하는 법: 받침이 아닌 매달기의 시각으로 관찰하기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지붕은 한국의 전통 방패연을, 외곽의 마스트 16개는 황포돛배의 돛을 형상화하여 공학적 기능과 조형미를 동시에 달성했습니다. 기둥을 없앤 것이 아니라 관중의 시야 밖으로 옮겨 위에서 매달았다는 역발상이 핵심입니다.
앞으로 기둥 없는 대형 체육관이나 경기장을 방문할 때는 지붕 아래쪽을 받치고 있는 구조물보다 지붕 위쪽이나 외곽에서 당겨주고 있는 케이블과 마스트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거운 구조물을 아래에서 억지로 눌러 버티는 대신, 힘의 흐름을 상부 케이블로 전환해 허공에 띄워 올린 공학적 치밀함을 이해할 때 대공간 건축의 진짜 가치가 명확히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FAQ
서울월드컵경기장 관중석에는 왜 기둥이 전혀 없나요?
관중석 내부에 기둥이 서면 그 뒤쪽에 위치한 좌석에서 그라운드 시야가 가려지기 때문입니다. 모든 관중석에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기둥을 경기장 바깥으로 배치했습니다.
지붕을 아래에서 받치지 않는데 어떻게 허공에 떠 있나요?
경기장 바깥 테두리에 세운 16개의 마스트(돛대 기둥) 꼭대기에서 강철 케이블을 내려 지붕 뼈대를 위에서 매달고 있는 인장 구조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지붕에 가해지는 무게와 비, 눈의 하중은 어디로 이동하나요?
지붕의 무게는 지붕을 잡고 있는 강철 케이블을 타고 외곽의 마스트로 전달된 뒤, 마스트를 거쳐 지상 바닥으로 안전하게 흘러내려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