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
34

진짜로 그들을 사랑했을까? ㅣ 이창동 《가능한 사랑》 리뷰

spark_icon7분 지식
  •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은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는 문구를 바탕으로 부유층과 해고 노동자 부부의 만남을 입체적으로 추적합니다.
  • 선악의 도식적인 구도를 넘어 자본의 시혜적 태도, 피사체를 향한 메소드 연기, 지독한 배신감과 결핍의 메커니즘을 적나라하게 파고듭니다.
  • 상대의 세계를 소유하려는 탐욕을 걷어내고 각자에게 허락된 자리에서 서로를 온전히 마주할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의 가능성이 열립니다.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은 계급 간의 단순한 갈등을 다룬 영화가 아닙니다. 2시간 30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영화는 화면을 스쳐 지나가는 풀 한 포기조차 허투루 쓰지 않으며, 인간이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오프닝에 등장하는 "남의 것을 탐하지 말지어다"라는 문구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불가능한 사랑의 비극을 다루는 흔한 서사와 달리, 감독은 탐욕과 위선이 뒤엉킨 현실 속에서 진짜 '가능한 사랑'의 실체를 묻습니다.

영화 《가능한 사랑》의 등장인물 관계를 보여주는 그래픽. '부자 부부'와 '해고 노동자 부부'로 나누어 각각 예지(조여정), 상우(조인성), 호석(설경구), 미옥(전도연)의 프로필 사진과 역할을 설명하고 있다.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두 부부가 얽히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1. 두 부부의 기묘한 동행

이야기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두 부부가 얽히며 시작됩니다. 막대한 재력을 지닌 상우(조인성 분)와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노동자의 삶을 담겠다는 아내 예지(조여정 분), 그리고 과거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SP 중공업)로 삶이 무너진 해고 노동자 호석(설경구 분)과 그의 아내 미옥(전도연 분)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예지는 노동자를 진심으로 다루겠다며 미옥의 일터와 가정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합니다. 겉보기에는 소외된 이들을 향한 따뜻한 관심처럼 보이지만, 관객은 이 만남의 출발점부터 깊은 이질감을 마주합니다. 미옥 부부에게 예지 부부의 세계는 닿을 수 없는 동경의 대상이고, 예지 부부에게 미옥 부부는 자신의 예술적 진정성이나 여유를 증명해 줄 '모양 좋은 피사체'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2.모양을 탐하는 시대의 위선

이 영화가 날카로운 이유는 선악의 이분법으로 인물을 재단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예지는 악의를 품은 인물이 아닙니다. 스스로 발로 뛰며 지원금을 따내고 옷차림을 소박하게 바꾸는 등 나름의 진정성을 보이려 애씁니다. 하지만 고급 외제차 안에서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논하고, 다큐멘터리 그림이 심심하다는 이유로 마스크 공장에 노조를 만들자고 부추기는 모습은 본질보다 모양을 탐하는 현대적 위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영화 속 어두운 밤, 한 여성이 카메라를 들고 다른 사람들을 촬영하는 장면이 담긴 스크린입니다.

상황의 긴박함보다 기록의 형식을 쫓는 예지의 모습에서 우리는 타인을 대하는 이들의 위선적인 태도를 마주하게 됩니다.

상우 역시 폭력적이거나 천박한 부자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매너가 좋고 사람들을 배려하며, 아이의 풀린 신발끈을 자연스럽게 묶어주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 친절함의 밑바탕에는 타인을 자신의 완벽한 통제 아래 두고 있다는 오만함이 깔려 있습니다. 별장에서 호석이 분노와 자조로 화장실 욕조에 오줌을 눌 때, 상우는 화를 내기는커녕 호탕하게 웃으며 함께 오줌을 눕니다. 상우에게 호석의 분노나 도발은 애초에 아무런 위협이나 타격조차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3. 내면의 결핍과 배신감: 호석의 침묵이 드러내는 것

이창동 감독은 《버닝》에서 보여주었던 계급적 긴장감을 한층 더 깊은 내면의 상처로 확장합니다. 설경구가 연기한 호석은 영화 중반까지 거의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의 침묵은 회사를 향한 원망 때문만은 아닙니다. 파업 현장에서 동생들을 지키려다 경찰에게 진압당하는 순간, 자신이 지키려 했던 동료들이 먼저 도망치는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장면으로 바닷가 모래사장에 서 있는 남녀 배우들의 모습이며 오른쪽에 서 있는 남성이 옆을 바라보고 있다.

상우는 자신의 별장과 바닷가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은연중에 자신의 세계를 드러냅니다.

호석은 자본뿐만 아니라 함께 연대했던 이들에게도 버림받았습니다. 그렇기에 노동 운동이라는 단어 자체에 공황을 느끼며 고립됩니다. 역설적이게도 그가 마음속 밑바닥의 고통을 털어놓는 대상은 노동의 아픔을 전혀 알지 못하는 제3자, 즉 예지의 카메라 앞이었습니다. 진정성을 연기하는 카메라 앞에서만 진실을 말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는 인간 소통의 비극적인 단면을 짚어냅니다.

4. 허락되지 않은 자유와 나체 수영의 파열음

별장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인물들의 숨겨진 욕망은 마침내 파열음을 냅니다. 상우는 사유지 바닷가에서 나체 수영을 하며 느끼는 자유를 거리낌 없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 자유는 막대한 자본과 배타적 소유권이 보장될 때만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미옥은 그 자유를 맛보고자 옷을 벗고 바다로 뛰어들지만, 상우가 자신을 바라보는 탐욕스러운 시선을 마주하는 순간 깨닫습니다. 그곳에서 자신에게 허락된 것은 온전한 자유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착취와 소유물로 전락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미옥은 상우의 손길을 뿌리치고 도망치듯 빠져나옵니다. 화려한 세계를 동경하며 스티브 잡스 같다고 여겼던 환상이 완전히 부서지는 순간입니다.

5. 각자의 자리에서 찾는 '가능한 사랑'

모든 소동이 끝나고 누추한 집으로 돌아온 호석과 미옥은 호석이 직접 만든 대리석 정자에 마주 앉습니다. 동생들과 함께 마시려다 끝내 홀로 남겨졌던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은 소주를 나누어 마시고 아이가 좋아하던 콘칩을 곁들입니다.

남의 것을 탐하거나 닿을 수 없는 세계의 자유를 흉내 내는 대신, 자신들이 발 디딘 현실을 받아들이고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태도. 영화는 이 투박하고 조용한 순간을 통해 진정한 '가능한 사랑'의 모습을 제시합니다. 아이의 눈으로 볼 때 어른들이 쌓아 올린 계급의 벽이 무색해지듯, 탐욕의 껍데기를 벗겨낼 때 비로소 인간 대 인간의 온전한 마주봄이 가능해집니다.

지금까지 사유하는 사람들을 위한 고요한 식당이었습니다. 바이.


FAQ

영화 오프닝의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는 문구는 어떤 의미인가요?

단순한 물질적 탐욕을 넘어, 부유층이 다큐멘터리라는 명목으로 노동자의 고통을 소비하고 소외된 이들이 상류층의 자유와 생활 방식을 동경하는 등 서로의 영역을 온전한 이해 없이 소유하려는 태도를 경계하는 핵심 테마입니다.

작중 호석이 동료 해고 노동자들과의 심리 치료를 거부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파업 진압 당시 동료들을 지키려다 구타당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구하려 했던 동생들이 먼저 도망치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회사뿐 아니라 동료들에게도 버림받았다는 깊은 배신감이 호석을 극심한 고립 상태로 몰아넣었습니다.

바닷가 나체 수영 장면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상우에게 나체 수영은 사유지라는 막대한 자본력 덕분에 누릴 수 있는 특권적 자유를 의미하지만, 미옥에게는 그 자유가 또 다른 성적·계급적 탐욕의 대상이 될 뿐임을 깨닫게 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합니다.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