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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무턱대고 직업으로 선택하면 안 되는 이유

spark_icon6분 지식
  •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열정 조언은 소수의 성공 이면에 수많은 청년의 희생과 저임금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 학계와 예술계처럼 상징적 가치가 높은 분야일수록 맹목적인 신념을 요구하는 피라미드식 ‘야망 노동’ 구조가 견고하게 작동합니다.
  • 특정 분야를 사랑하더라도 대표 직업 하나에만 갇히지 않고, 합당한 경제적 보상과 대안적 진로를 함께 열어두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많은 청년과 학생이 “네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라”라는 자기계발적 조언을 듣습니다. 가슴 뛰는 일을 좇아 진리 탐구나 예술에 평생을 바치는 삶은 더없이 숭고해 보이지만, ‘좋아하는 마음’ 하나만 믿고 무턱대고 뛰어들었다가 현실의 벽 앞에서 극심한 좌절을 겪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독일의 물리학자이자 유명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자비네 호센펠더(Sabine Hossenfelder)는 자신이 왜 학계를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어린 시절 순수한 열정으로 물리학에 뛰어들었지만, 실제 학계는 진리 탐구보다 연구비 수주와 돈벌이가 우선인 구조였고, 하위 연구자들의 불안정한 노동을 소수 상급자의 커리어로 치환하는 시스템이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낭만적인 열망 뒤에 숨겨진 현실의 괴리

우리가 흔히 꿈꾸는 학문과 예술의 세계는 고결한 사상가들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낭만적인 공간으로 묘사되곤 합니다. 하지만 현실의 시스템은 전혀 다르게 굴러갑니다. 연구기관에 소속된 연구원들이 공공 보조금과 연구비를 따오더라도 자금의 상당 부분은 기관 운영비로 흡수되며, 정작 가장 치열하게 일하는 비정규직 연구자들은 극히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에 시달립니다.

흰 셔츠를 입고 숲을 배경으로 서 있는 남성이 턱을 만지며 카메라를 보고 말하고 있으며 화면에는 자막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어느 분야든 낭만적인 열망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더 큰 문제는 연구비 수주 구조 탓에 과학자 개인이 인류의 지식을 혁신할 만한 창의적 연구를 시도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쉬운 ‘적당히 주류화된 안전한 주제’에만 연구비가 몰리기 때문에, 결국 학문의 자유를 찾아 학계에 들어온 이들이 시스템의 부품으로 전락하는 부조리가 생겨납니다.

‘야망 노동’과 학계의 종교적 착취 메커니즘

이러한 현상의 기저에는 이른바 ‘야망 노동’이라는 착취 메커니즘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패션, 예술, 학문과 같이 대중적인 선망을 받는 문화 분야에서는 진입자들에게 어릴 때부터 주입된 ‘문화적 야망’을 빌미로 정당한 금전적 보상을 유예시키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흰색 셔츠를 입고 백팩을 멘 남성이 숲속에서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말하고 있으며, 화면 왼쪽 상단에는 '야망노동 = 열정페이와 비슷한 단어'라는 자막이, 하단에는 '야망 노동이라는 단어가 등장했습니다'라는 자막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특정 분야를 향한 열망을 착취의 수단으로 삼는 야망 노동은, 우리가 무심코 꿈꾸는 직업 이면에 숨겨진 그림자일지도 모릅니다.

전직 교수이자 커리어 컨설턴트인 캐런 켈스키(Karen Kelsky)는 학계가 마치 ‘컬트(종교 집단)’와 유사하게 작동한다고 비판합니다. “학문을 사랑한다”, “진리를 탐구한다”라는 숭고한 원리를 내세워 젊은 연구자들에게 “진리를 사랑한다면 당장의 경제적 보상이나 직업적 안정을 탐해서는 안 된다”라는 식의 문화적 가스라이팅을 가한다는 것입니다.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순간 집단의 신앙을 저버린 배신자로 낙인찍는 분위기 속에서, 폰지사기와 흡사한 피라미드 구조가 유지됩니다.

극소수의 성공 확률과 침묵하는 95%

이러한 구조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은 대부분 “나는 예외일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청춘을 소진합니다. 하지만 냉정한 통계는 전혀 다른 현실을 보여줍니다.

푸른 숲길을 배경으로 흰 셔츠를 입은 젊은 남성이 카메라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담긴 영상 캡처 화면입니다.

어린 시절의 열정만으로 감당하기에는 현실의 구조적 한계가 너무나 명확합니다.

미국 통계에 따르면 박사학위 소지자 중 종신 교수직(테뉴어 트랙)을 얻는 비율은 불과 5% 안팎에 그치며, 나머지 95%는 안정적인 자리를 얻지 못합니다. 20대에는 낭만과 열정으로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30대 이후 생애주기가 바뀌고 현실적인 생활비와 가족 부양 문제가 닥쳐오면 돌이키기 힘든 후회로 이어지곤 합니다. 소수 정점에 오른 이들이 누리는 명성과 부는 사실상 탈락한 수많은 사람의 헌신 위에 세워진 피라미드인 셈입니다.

현명한 진로 선택을 위한 두 가지 시선

그렇다면 좋아하는 영역이 있는 이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저는 두 가지 현실적인 접근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첫째, ‘특정 영역을 좋아하는 것’과 ‘그 영역의 대표 직업을 갖는 것’을 분리해서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패션을 좋아한다고 해서 반드시 박봉을 견디는 디자이너가 될 필요는 없으며,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학계의 글쓰기 방식만을 고집할 이유도 없습니다. 한 분야 안에서도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직무와 대안적 경로는 생각보다 다양합니다.

둘째, 자신이 속한 환경이 ‘신념’을 빌미로 부당한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면 냉정하게 탈출 전략(커리어 전환)을 모색해야 합니다. 학위 과정이나 수련 과정에서 익힌 지식과 분석력은 결코 헛되지 않으며, 다른 산업 생태계에서도 충분히 가치 있게 쓰일 수 있습니다. 피라미드 정점에 오르는 것만이 유일한 정답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좋아하는 일’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삶을 설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FAQ

‘좋아하는 일을 하지 말라’는 뜻인가요?

좋아하는 일을 아예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관심 분야가 있더라도 위험도가 높은 단 하나의 대표 직업에만 맹목적으로 매달리지 말고, 합당한 경제적 보상이 따르는 다양한 대안 경로를 함께 고려하라는 의미입니다.

‘야망 노동’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나요?

예술, 패션, 학문 등 대중적으로 선망받는 분야에서 장래의 성공이나 명성을 빌미로 청년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열정과 희생을 요구하며 착취하는 고용 형태를 의미합니다.

학계나 전문 분야에 이미 몸담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분야의 시스템이 자신의 진정한 가치관과 일치하고 극소수의 피라미드 정점에 오를 확신이 있다면 전념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렇지 않다면 그동안 쌓은 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합당한 대우를 해주는 다른 산업군으로 커리어 전환을 유연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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