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많은 여행지는 잠시 패스”…빙혈·고택·천년고찰 따라 걷는 의성 여행

[투어코리아=김동환 기자] 유명 관광지의 긴 줄과 복잡한 주차장이 부담스럽다면, 이번 여행지는 경북 의성이 제격이다. 의성은 소백산맥과 낙동강을 배경으로 금성산, 비봉산, 쌍계천이 어우러진 고장이다. 화려한 볼거리보다 오래 머무를수록 깊어지는 자연과 역사, 전통문화의 결이 살아 있다.

의성 여행은 빠르게 찍고 지나가는 방식보다 천천히 걷고 머무는 쪽에 가깝다. 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계곡을 지나고, 조선 선비들의 정신이 깃든 서원을 둘러본 뒤, 비봉산 아래 천년고찰과 전통 반촌의 고택 골목을 따라 걷는 여정이다. 자연의 신비와 고요한 산사, 오래된 마을의 품격이 한 코스 안에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자연이 만든 신비로운 얼음골, 빙계계곡

의성 빙계 계곡 / 사진-의성군

의성 빙계 계곡 / 사진-의성군

의성군 춘산면에 자리한 빙계계곡은 의성을 대표하는 자연 명소다.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이곳은 중생대 백악기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현무암과 유문암질 응회암이 계곡을 따라 이어지며 독특한 지질 풍경을 보여준다.

빙계계곡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빙혈’과 ‘풍혈’이다. 여름철에도 얼음이 어는 빙혈, 차가운 바람이 흘러나오는 풍혈은 ‘의성 빙계리 얼음골’이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에 지정돼 있다. 빙혈은 평균온도 0.3℃를 유지하며, 3월 초부터 10월 초까지 얼음이 이어지는 국내 최장의 결빙 기간을 가진다.

이 신비로운 저온 현상은 하식절벽에 발달한 주상절리와 너덜 지형에서 비롯된다. 풍화와 침식으로 쌓인 돌무더기 사이에서 공기가 순환하고 열교환이 일어나면서, 한여름에도 냉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계곡 주변에서는 좀미역고사리, 한들고사리 등 북방계 식물도 자생해 자연 관찰 여행지로도 흥미롭다.

조선 유림의 숨결이 남은 빙계서원

빙계서원/사진-한국관광공사

빙계서원/사진-한국관광공사

빙계계곡과 함께 둘러보기 좋은 곳은 빙계서원이다. 의성군 춘산면에 위치한 빙계서원은 조선 명종 11년인 1566년 회당 신원록이 창건해 모재 김안국을 봉향한 유서 깊은 공간이다.

처음에는 의성읍 장천에 자리해 장천서원으로 사액을 받았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1600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이듬해 원묘를 준공하면서 이름을 ‘빙계’로 바꾸고, 이언적을 김안국과 함께 제향했다. 이후 유성룡, 김성일, 장현광 등 의성과 깊은 인연을 맺은 인물들이 추향되며 영남 유림의 정신을 이어왔다.

고종 때 훼철된 뒤 한동안 옛 흔적만 남아 있었던 빙계서원은 유교문화권 관광개발사업을 통해 2006년 복원됐다. 지금의 빙계서원은 화려하기보다 단정하다. 계곡의 서늘한 기운을 지나 서원 마당에 들어서면, 조선 선비들이 자연 가까이에서 학문과 정신을 다듬던 시간이 조용히 전해진다.

비봉산 아래 천년의 고요, 대곡사

의성군 다인면의 대곡사는 비봉산 아래 자리한 천년고찰이다. 비봉산은 봉황이 날아가는 형상을 띠고 있다고 전해지며, 그 품에 안긴 대곡사는 오래된 산사의 풍모를 간직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16교구 본사의 말사인 대곡사는 유서 깊은 역사와 함께 대웅전, 범종루 등 보물을 보유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경내에 들어서면 오래된 건축물이 주는 묵직한 분위기와 산사의 고요함이 먼저 다가온다.

대곡사의 매력은 웅장한 규모보다 차분한 체류감에 있다. 산길을 따라 들어가 경내를 천천히 거닐다 보면, 바람 소리와 처마의 선, 낡은 목재의 결이 여행자의 속도를 늦춘다.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을 정리하고 싶은 여행자에게 잘 어울리는 의성의 산사 코스다.

의상대사의 전설을 품은 수정사

금성산 자락으로 향하면 수정사를 만날 수 있다. 의성군 금성면에 자리한 수정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금성산 깊은 골짜기에서 수정처럼 맑은 물이 흘러내린다고 해 ‘수정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수정사는 오랜 역사만큼 여러 차례 시련도 겪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중건됐지만, 1835년 화재로 대광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이 불에 탔다. 현재의 수정사는 옛 절터 위쪽에 다시 중창된 모습이다.

옛 절터에는 대가람지와 원형을 보존한 석탑이 남아 있어 사찰이 지나온 시간을 짐작하게 한다. 경내에는 본전인 대광전을 비롯해 역대 고승의 초상화를 모신 사명 영당, 격외 선원, 월영루 등이 자리한다. 수정사는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사찰과는 다른 분위기다. 산그늘과 물소리, 오래된 절터의 흔적이 어우러져 조용히 머물기 좋다.

고택 골목이 들려주는 의성의 품격, 산운마을

의성 여행에서 전통 마을의 정취를 느끼고 싶다면 산운마을이 좋다. 의성군 금성면에 자리한 산운마을은 의성에서 ‘대감마을’로 불리는 전통 반촌이자 영천이씨 집성촌이다. 금성산을 뒤로 두고 비봉산을 곁에 둔 배산임수 지형에 자리해, 마을 전체가 한 폭의 고택 풍경처럼 펼쳐진다.

산운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선녀가 거울 앞에 앉아 머리를 빗는 형국’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신라시대 불교가 융성하던 시절, 수정계곡 아래로 구름이 감도는 모습에서 ‘산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다.

학동 이광준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됐고, 지금도 학록 정사, 의성 운곡당, 의성 소우당, 의성 점우당 등 지정 문화재와 전통 한옥이 남아 있다. 고택 사이를 천천히 걷다 보면, 의성의 생활문화와 선비 정신이 골목마다 스며 있는 듯하다. 산운생태공원과 연계해 둘러보면 자연과 전통 마을 여행을 함께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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