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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중문화 속에서 비극의 여주인공으로 미화된 '명성황후'의 이면에는, 극심한 매관매직과 부정부패로 동학농민혁명을 촉발한 족벌 권력의 민낯이 숨어 있습니다.
  • 동학은 단순한 반란이 아니라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 사상을 바탕으로 모든 인간의 존엄을 외친 위대한 근대적 혁명이었습니다.
  • 자신의 백성을 진압하기 위해 외세를 끌어들인 권력의 선택은 결국 3만 명의 농민이 학살당하는 비극을 낳았으며, 우리는 이 불편한 진실을 똑바로 마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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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요주의 인물 명리학자 강헌입니다. 여러분은 20세기 100년의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사건 하나를 꼽으라면 어떤 것을 지목하시겠습니까? 한국 전쟁이나 광주 민주화 운동 등 수많은 비극이 있지만, 저는 1949년 반민특위의 좌절을 꼽고 싶습니다. 나라를 빼앗길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되찾았을 때 이전의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다면, 그 이후의 시간이 얼마나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우리는 똑똑히 목격해 왔습니다.

우리가 향유하는 문화와 역사는 단순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이 순간 우리의 존재를 증명하는 거울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지난 100년의 중요한 역사들은 심각하게 은폐되거나 왜곡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대중문화라는 화려한 포장지 속에 감춰진, 우리 근대사의 가장 뼈아프고 폭력적인 기원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미화된 대중문화, 그리고 은폐된 권력의 민낯

국민 뮤지컬로 불리며 브로드웨이까지 진출했던 '명성황후'나 수많은 TV 드라마를 떠올려 보십시오. 이 거대한 블록버스터 작품들 속에서 민비는 늘 비극적이고 숭고한 여주인공으로 묘사됩니다. 저는 십수 년 전 그 뮤지컬의 초연을 보다가 너무 기가 막혀서 1막만 보고 극장을 빠져나왔습니다. 제 손에 폭탄이 있었다면 무대에 던지고 싶을 만큼 참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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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철공소닷컴 제공 영상 · 09:02


극 중에는 민비를 끝까지 지키다 죽는 '홍계훈'이라는 낭만적인 무사가 등장합니다. 그는 실제로 경복궁에 난입한 일본 사무라이들을 막다 전사한 조선 훈련대 연대장이 맞습니다. 하지만 어떤 드라마나 영화도 그가 1년 전인 1894년에 무엇을 했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홍계훈은 바로 동학 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되었던 동학군 토벌사였습니다.

왜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을까요? 대원군의 섭정을 끝내고 권력을 쥔 민씨 일파는 20년간 조선의 모든 국정을 장악했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족벌 권력이 탄생했고, 조선 왕조 역사상 유례없는 매관매직이 판을 쳤습니다. 돈을 주고 벼슬을 산 함량 미달의 관리들이 지방으로 내려가 짐승처럼 백성들을 수탈했습니다. 농민들이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봉기한 갑오농민전쟁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는 바로 족벌 권력의 수장인 민비였습니다.

단순한 밀란이 아닌 위대한 근대적 '혁명'

우리의 역사에는 5천 번에 가까운 크고 작은 밀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식민 사관이 깎아내리듯 부르는 '동학란'은 욱하는 마음에 일어난 우발적 폭동이 아닙니다. 이것은 갑오농민전쟁, 아니 '동학농민혁명'이라 불러야 마땅합니다. 이전의 밀란과 본질적으로 달랐던 이유는 바로 새로운 시대를 향한 명확한 철학과 비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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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철공소닷컴 제공 영상 · 15:16


그 혁명의 슬로건은 여러분도 잘 아는 세 글자, 바로 '인내천(人乃天)'입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이 사상은 19세기에 이미 도달한 엄청난 철학적 성취입니다. 하늘 천(天)은 당시 임금을 상징했습니다. 즉, 신분과 계급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이 임금과 같이 존엄한 존재라는 선언이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정신과 맞닿아 있습니다. 동학은 봉건의 질서를 끝내고 인간의 존엄이 보장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명확한 목표 의식을 가진 근대적 혁명이었습니다.

자국민을 죽이려 외세를 부른 치명적 선택

고부에서 시작된 혁명의 불길이 전국적으로 번지자, 조선 조정은 이들의 요구에 굴복하는 척하며 시간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민비는 도저히 믿기 힘든 선택을 합니다. 자신의 백성을 죽이기 위해 청나라에게 군대를 요청한 것입니다. 자국민을 진압하려 외국의 군대를 불러들인 이 어처구니없는 결정이 한국 근대사의 가장 불행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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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철공소닷컴 제공 영상 · 16:54


청나라 군대가 들어오자, 톈진 조약을 빌미로 일본군 7천 명도 인천으로 상륙했습니다. 결국 신식 장비로 무장한 일본군과 죽창, 화승총이 전부였던 동학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집니다. 우금치 전투에서 훈련되지 않은 동학군 약 3만 명이 처참하게 몰살당했습니다. 그때 죽은 일본군 전사자가 몇 명인지 아십니까? 전투 중 전사한 일본군은 단 1명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끔찍한 학살이었습니다.

낭만을 걷어내고 직시해야 할 우리의 진짜 기원

우리는 1910년 8월 29일에 나라를 빼앗겼다고 배웁니다. 하지만 사실상 국권을 상실한 것은 이 끔찍한 비극이 벌어진 1895년이었습니다. 동학군은 패배했지만, 전봉준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그들의 정신은 이후 모든 국내 항일 의병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아름다운 배우들이 눈물 흘리는 명성황후 드라마를 보며 일본을 욕하는 데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물론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은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백성을 팔아넘긴 지배층의 부패와 폭력성을 직시해야 합니다. 과거를 낭만적으로 미화하는 데 취해 있다면, 우리는 결코 제대로 된 미래를 설계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성찰은 나 자신, 그리고 우리 역사의 가장 부끄러운 민낯을 마주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요주의 인물 강헌이었습니다.


FAQ

명성황후를 다룬 대중문화 작품들의 역사적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매관매직을 일삼았던 민씨 일가의 극심한 부정부패, 그리고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결과적으로 일본군의 개입을 초래한 치명적인 과오가 대중문화 속에서는 낭만적인 서사로만 미화되고 축소되었다는 점입니다.

동학농민운동을 왜 단순한 '밀란'이 아닌 '혁명'으로 보아야 하나요?

동학농민운동은 억압에 못 이겨 우발적으로 일어난 폭동이 아닙니다. '인내천(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명확한 철학을 바탕으로, 신분과 무관하게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새로운 질서와 비전을 제시한 근대적 혁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일본군에 의한 우금치 전투의 실제 피해 규모는 어느 정도였나요?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에 맞서 싸운 동학군 약 3만 명이 처참하게 몰살당한 반면, 당시 전투로 인한 일본군 전사자는 단 1명에 불과했을 정도로 일방적이고 참혹한 학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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