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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즈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가장 가난한 하층계급이 주류 문화의 권력을 장악한 위대한 예술적 전복이다.
  • 악기와 화성학 규칙은 백인이 만들었지만, 얽매임 없는 즉흥성과 깊은 영혼은 핍박받던 아프리칸 아메리칸에게서 탄생했다.
  • 뉴올리언스 홍등가의 척박한 일상과 혼혈 계층 크레올의 래그타임을 거치며, 재즈는 모든 인간의 개별성을 존중하는 예술로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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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요주의 인물 명리학자 강헌입니다. 우리가 흔히 예술이나 문화라고 부르는 것은 언제나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인류의 예술사 역시 그들에 의해 이끌려왔죠. 그런데 역사상 처음으로, 가장 못 배우고 가난한 민중의 일상 속에서 탄생한 문화가 주류의 권력을 장악하는 참으로 놀라운 사건이 벌어집니다. 영국의 위대한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이를 두고 "주류의 문화를 정복한 극히 보기 드문 첫 번째 예"라고 극찬했습니다. 바로 '재즈(Jazz)'의 탄생입니다. 노예의 후손인 하층계급 아프리칸 아메리칸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문화적 권력을 거머쥔 마이너리티의 예술 선언, 그 전복과 반전의 순간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1917년, 가장 거대한 전복이 시작되다

1917년으로 돌아가 봅시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로마노프 왕조가 붕괴하고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탄생한 해입니다. 한국에서는 이광수의 『무정』이 출간되며 대중 소설의 시대가 열렸죠. 세계사적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전복의 해였습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죠. 바로 이 해에 미국 남부의 깡촌 항구도시 뉴올리언스에서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즈 밴드(Original Dixieland Jass Band)의 음반이 발표됩니다. 사람들은 이를 재즈 역사의 출발점으로 간주합니다.

과연 재즈가 1917년에 뚝딱 탄생했을까요? 아닙니다. 재즈는 그 이전부터 존재했습니다. 다만, 지배 계급의 문화가 아니었기에 기록되지 못했을 뿐입니다. 배운 자들은 요만큼만 해놓고 기록은 아주 철저하게 남깁니다. 반면 이른바 무식하고 핍박받던 흑인들은 글을 몰라 기록을 남길 수 없었죠. 물리적인 음반이라는 결과물이 백인에 의해 만들어진 1917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재즈는 메인스트림의 역사에 편입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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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철공소닷컴 제공 영상 · 03:38


클래식의 엄격함이 아니라, 재즈의 타이밍이다

재즈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흑인, 트럼펫, 색소폰 같은 관악기, 그리고 즉흥 연주가 떠오를 겁니다. 똑같은 연주 음악인데 클래식과 재즈는 도대체 뭐가 다를까요? 미국의 명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아주 명확하게 정의했습니다. 클래식은 작곡가가 정해놓은 악보와 규칙을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엄격한 음악'이라는 겁니다.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라고 적혀 있으면 일렉트릭 기타로 쳐서는 안 됩니다.

반면 재즈는 지시되거나 정의되지 않은 음악입니다. 1940년대의 유명한 색소폰 주자 레스터 영(Lester Young)에게 음반사 사장이 "몇 년 전 네가 연주했던 그 곡을 녹음하자"고 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내가 그때 연주한 곡을 난 지금 연주할 수 없다." 이 짧은 대답에 재즈의 본질이 다 들어있습니다. 재즈는 엄격한 규칙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의 교감과 직관에 자신을 맡기는 자유 그 자체입니다. 명리학은 타이밍이다, 라는 제 지론처럼 재즈 역시 순간의 흐름을 타는 타이밍의 예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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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철공소닷컴 제공 영상 · 06:16


재즈는 참으로 백인의 음악인가?

여기서 우리는 예리한 모순과 마주하게 됩니다. 최초의 재즈 음반을 낸 딕시랜드 밴드는 전원 백인이었습니다. 재즈에 쓰이는 트럼펫, 색소폰, 피아노 같은 악기도 다 백인이 만들었죠. 심지어 악기 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화성학 룰도 백인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부 백인 학자들의 주장처럼 재즈는 결국 백인의 음악일까요? 겉보기엔 그럴듯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진짜 중요한 본질 하나를 빠뜨렸습니다.

재즈는 백인의 음악 문화와 전통이라는 뼈대 위에,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철학적 영혼과 피가 얹혀 완성된 예술입니다. 악기와 룰이 백인의 것이라 해도, 그 안에 담긴 생명력과 폭발하는 감각은 철저히 흑인들의 척박한 삶에서 잉태된 것입니다. 껍데기를 빌려왔다고 해서 그 알맹이까지 남의 것이 될 수는 없는 법입니다.

홍등가와 크레올, 뉴올리언스의 기구한 탄생 비화

그렇다면 '재즈(Jazz)'라는 이름은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요? 학자들의 주장을 종합해 보면 그 기원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날것 그대로입니다. 미국 남부 흑인들의 성적 흥분을 뜻하는 은어 'Jass it up'에서 왔다는 설, 흑인 창녀를 뜻하는 'Jive ass'에서 파생됐다는 설, 홍등가 호객꾼들의 흔한 가명이었던 'Charles'가 변형됐다는 설이 있습니다. 결국 재즈는 항구도시 뉴올리언스의 사창가와 뒷골목이라는 가장 밑바닥 일상에서 피어난 언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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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철공소닷컴 제공 영상 · 17:09


뉴올리언스는 본래 프랑스령이었습니다. 엄격하고 교조적인 앵글로색슨과 달리, 프랑스인들은 상대적으로 덜 권위적이었고 흑인 노예들과의 사이에서 혼혈인 '크레올(Creole)'이 많이 태어났습니다. 이 크레올들은 완전한 짐승 취급을 받지 않고 약간의 교육을 받았으며, 노동 대신 서비스업에 종사하며 백인들의 악기를 접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농장에서 뼈 빠지게 일만 하던 흑인들과 달리, 악기를 다루게 된 이 크레올들이 19세기 말 피아노를 중심으로 한 '래그타임(Ragtime)'을 만들어냅니다. 영화 <스팅>의 주제가로 유명한 스콧 조플린의 <The Entertainer>가 바로 그 결과물이죠. 백인의 악기를 배운 크레올들의 래그타임이 점차 오리지널 흑인들의 특유의 감각과 섞이면서 우리가 아는 진짜 재즈로 진화하게 된 것입니다.

마이너리티가 쏘아 올린 위대한 철학적 조언

재즈는 단순히 듣기 좋은 음악 장르가 아닙니다. 억압받던 마이너리티가 자신들의 고통과 일상을 예술로 승화시켜, 지배 계급의 견고한 문화를 통쾌하게 뒤집어버린 위대한 전복의 역사입니다. 스스로를 알고 인생의 타이밍을 포착해 낸 이들의 음악은, 모든 인간은 존엄하며 누구나 예술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철학적 조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투 노 원 셀프(To know oneself), 자신을 객관화하고 이해할 때 비로소 진정한 자신의 리듬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요주의 인물 강헌이었습니다.


FAQ

최초의 재즈 음반은 누가 발표했나요?

1917년,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즈 밴드'라는 백인 연주자들이 최초로 음반을 발표했습니다. 흑인들은 글을 모르고 기록을 남길 수 없는 척박한 환경이었기에, 재즈의 물리적 흔적은 백인에 의해 처음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클래식과 재즈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클래식이 작곡가가 정해놓은 악보와 규칙을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지시된 음악'이라면, 재즈는 정해진 양식 없이 연주자의 직관과 즉흥적인 타이밍에 맡기는 자유롭고 유연한 음악입니다.

재즈라는 단어의 어원은 어디서 왔나요?

정확한 최초의 기록은 없으나, 뉴올리언스 홍등가 흑인들의 성적 흥분을 뜻하는 은어, 매춘을 뜻하는 속어, 혹은 사창가 호객꾼들의 가명이었던 '찰스'에서 유래했다는 등 뒷골목의 일상에서 파생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크레올은 재즈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나요?

프랑스계 백인과 흑인 노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계층인 크레올은 상대적으로 약간의 교육을 받고 악기를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피아노로 연주한 '래그타임'이 훗날 흑인들의 감각과 결합하며 오리지널 재즈로 진화하는 중요한 뼈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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