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사회는 더 빠른 기술과 인프라를 통해 고통 없는 순수한 속도의 쾌락을 선사하며, 인간을 오직 현재에만 몰입하게 만듭니다.
- 밀란 쿤데라의 통찰처럼 속도는 망각과 비례하며, 사실 우리는 속도에 중독된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잊고 싶어 속도라는 도피처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삶을 유기적인 기억으로 엮어내려면, 의도적으로 멈춰 서서 느림의 여유를 되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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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빠른 기차, 더 빠른 자동차, 더 빠른 인터넷, 그리고 더 빠른 AI. 이 시대의 빠름은 그 자체가 거대한 가치이자 권력입니다. 반면 느림은 마치 극복해야 할 죄악처럼 여겨지며, 우리는 끝을 알 수 없는 속도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디까지 빨라져야 만족할까요? 밀란 쿤데라의 소설 『느림』을 통해, 우리가 이토록 속도를 숭상하게 된 진짜 이유와 그 이면에 숨겨진 망각의 메커니즘을 해독해 봅니다.
속도라는 이름의 엑스터시
저는 가끔 시속 300km로 달리는 고속 열차 안에서 기묘한 감정을 느낍니다. 밖에서 보면 공기를 찢을 듯한 굉음과 파괴적인 위세를 자랑하지만, 정작 그 안에 앉아 있는 인간은 아주 쾌적하고 평화롭게 목적지에 도달합니다. 밀란 쿤데라는 이를 두고 속도는 기술 발전을 통해 선사된 엑스터시라고 표현했습니다. 기술 발전이 속도에 담긴 특유의 새로운 쾌락을 깨웠다는 것입니다.
원래 생물학적인 인간은 빠르게 달릴 때 몸의 한계와 고통을 느낍니다. 맹수가 사냥을 위해 전력 질주를 하고 나면 기진맥진하여 쉬어야 하듯, 자연의 속도에는 반드시 고통과 휴식이라는 대가가 따릅니다. 하지만 현대의 기술은 물리적 고통 없이 순수한 속도만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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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충코의 철학 Chungco 제공 영상 · 02:28
사막을 천천히 걷는 인간에게 사막은 두려움과 생존의 한계를 시험하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자동차를 타고 빠르게 질주하는 사람에게 사막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무해한 풍경일 뿐입니다. 이렇게 순수한 속도에 올라탄 인간은 주변 환경의 속박에서 벗어나, 과거나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오직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현재의 쾌감'에만 온전히 몰입하게 됩니다.
기억은 느림에, 망각은 빠름에 비례한다
하지만 기술이 준 이 몰입의 선물은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잃게 만듭니다. 쿤데라는 기억은 속도와 반비례한다고 주장합니다. 한 상황이나 대상을 느리게 경험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다각도로 기억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면 기억에 남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질주하는 속도에 올라탄 사람은 현재에 몰입하는 대가로 과거와 미래, 그리고 주변의 다른 존재들을 잊어버립니다. 무언가를 회상하려 하는 사람은 자연스레 발걸음을 늦추고, 얼른 무언가를 잊으려 하는 사람은 발걸음을 재촉하기 마련입니다. 기억이란 내면의 여러 지점을 천천히 더듬으며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보는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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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충코의 철학 Chungco 제공 영상 · 07:28
소설 『느림』의 마지막 장면은 이를 극명하게 대조합니다. 200년 전의 한 기사는 마차를 타고 느릿하게 파리로 돌아가며 지난밤의 일들을 잊지 못할 기억으로 마음속에 깊이 소화시킵니다. 반면 현대의 남성은 지난밤의 일을 모두 잊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바이크에 올라타 파리를 향해 뒤돌아보지 않고 질주합니다. 분절된 현재의 나열 속에서는 결코 유기적인 시간의 묶음을 창조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속도에 중독된 진짜 이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망각을 부추기는 속도가 단순히 물리적인 개념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고속 열차를 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망각으로 내몰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질주의 순간에 정말로 망각을 부추기는 것은 물리적 속도보다 우리의 마음의 속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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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충코의 철학 Chungco 제공 영상 · 05:35
열차 안에서조차 쉬지 않고 스마트폰을 통해 세상과 광속으로 연결되고자 하는 급한 마음이 우리의 정신을 흩트려놓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는 초속 30km로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있지만, 이 우주적 속도 자체가 우리에게 망각을 일으키지는 않습니다.
쿤데라는 우리 시대가 속도의 악마에 탐닉하여 자신을 쉽게 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이 주장을 뒤집어 보고 싶습니다. 우리 시대는 망각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며, 이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속도의 악마에 탐닉하는 것입니다. 현실의 짐과 한계를 잊고 싶은 인간의 도피처가 바로 광속의 인터넷과 쉴 새 없는 스크롤인 셈입니다.
잃어버린 '느림'을 되찾아야 할 때
기억을 위한 느림과 여유를 찾는 것이 참 쉽지 않은 요즘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조차도 알고리즘을 타고 쉴 새 없이 흐르는 빠른 정보의 물결 속에 몸을 던져 현실을 잊고 싶은 욕망을 끊임없이 느낍니다.
하지만 기억하는 능력을 잃어버릴수록, 우리의 삶과 시간은 점점 앙상해질 겁니다. 더 빨리, 더 많은 곳에 도달해야 한다는 강박에 서두르다 보면 그 어떤 곳에서도 온전한 경험을 남기지 못합니다. 속도를 탐닉할수록 우리는 역설적으로 느림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됩니다. 무언가를 지독하게 파고들어 유기적인 기억으로 엮어내려면 반드시 멈춰 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과연 이토록 빠른 세상 속에서, 느림의 여유를 무엇을 통해 찾고 계신가요?
FAQ
밀란 쿤데라는 속도와 기억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했나요?
쿤데라는 속도와 기억이 반비례한다고 보았습니다. 무언가를 깊이 회상하고 기억하려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늦추는 반면, 괴롭거나 불편한 현실을 얼른 잊으려 하는 사람은 발걸음을 재촉하여 속도에 기대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술이 제공하는 속도는 과거의 물리적 속도와 무엇이 다른가요?
과거 생물학적 한계 안에서의 속도(예: 전력 질주)는 육체적 고통과 피로를 수반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의 기술(자동차, 고속 열차 등)은 신체적 고통이나 한계 없이 순수한 속도의 쾌락만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인간이 미래의 불안에서 벗어나 오직 '현재'에만 몰입할 수 있는 엑스터시를 선사합니다.
현대인이 끊임없이 빠른 속도를 추구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단순히 기술이 발전해서가 아니라, 현대인 내면에 '망각하고자 하는 욕망'이 크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고민과 한계를 잊고 싶을 때, 우리는 스마트폰의 광속 알고리즘이나 빠른 이동 수단에 몸을 맡기며 속도를 도피처로 삼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