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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네 지라르의 '욕망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욕망은 스스로 우러나오는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 언제나 타인(매개자)을 모방하는 삼각형 구조를 띱니다.
  • 현대 사회는 나와 비슷한 타인을 모델로 삼는 '내적 매개'가 지배적이며, 이는 끝없는 경쟁, 대상의 한정, 그리고 자기 기만이라는 파괴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 진정한 자유는 헛된 주체성의 환상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수많은 타인의 욕망이 얽혀 있음을 뼈아프게 직시하고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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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나답게 사는 것'과 '내 꿈을 실현하는 것'을 이념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주체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며, 타인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고유한 욕망을 좇고 있다고 믿죠. 그런데 과연 그 욕망은 온전히 우리 자신의 것일까요? 페이팔과 페이스북 등에 투자하며 세계 최고의 투자자로 꼽히는 피터 틸은 스탠퍼드 대학교 시절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를 만나 그의 사상에 푹 빠졌습니다. 지라르의 철학이 인간의 삶과 본성을 굉장히 날카롭게 포착했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많은 철학자들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구조적 시스템이 존재하며, 이를 개선하면 행복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이상주의를 품습니다. 하지만 지라르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불행을 향해 가기 매우 쉬운 파괴적인 본성을 지녔다고 보았습니다. 이 씁쓸한 현실을 직시하지 않은 채 시스템만 고치려 든다면, 사회는 결국 파국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죠. 오늘 우리는 지라르의 대표작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을 통해, 우리가 굳게 믿고 있던 '자기'라는 환상을 깨부수는 인간 욕망의 진실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욕망의 삼각형: 우리는 결코 대상을 직접 욕망하지 않는다

지라르의 욕망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핵심 개념은 바로 매개자(Mediator)입니다. 우리는 흔히 나의 욕망이 대상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간다고 착각합니다. 내가 돈을 원하면 나라는 주체가 돈이라는 대상을 직접 욕망한다고 믿는 식이죠. 하지만 지라르는 이러한 구도가 인간의 욕망을 전혀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인간의 욕망은 직접적으로 대상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중간에 매개자가 놓여 있는 '욕망의 삼각형' 구도를 띱니다. 배가 고파서 밥을 먹고 싶은 생리적 욕구처럼 내 안에서 순수하게 일어나는 직접적 욕망도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결코 그런 1차원적인 충족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 거대하고 중추적인 욕망들은 대개 매개자에 의해 형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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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충코의 철학 Chungco 제공 영상 · 03:48


예를 들어, 어떤 연예인이 좋은 집에 살거나 특정 명품을 광고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저 집에 살고 싶다", "저 가방을 사고 싶다"라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그 대상을 욕망하는 이유는 그 대상 자체가 절대적으로 가치 있어서가 아닙니다. 순전히 그 연예인이 우리에게 이상적인 모델(매개자)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모델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애초에 그 대상을 욕망조차 하지 않았을 겁니다. 결국 우리의 욕망은 철저히 타인에 대한 '모방'을 통해 생겨납니다.

외적 매개에서 내적 매개로: 가까워진 거리가 비극을 낳다

그런데 이 욕망의 삼각형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그 형태가 크게 달라집니다. 지라르는 주체와 매개자 사이의 '거리'에 주목했습니다.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나타나는 구도를 외적 매개라고 부릅니다. 대표적인 예가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입니다. 돈키호테는 책 속의 위대한 기사 '아마디스'를 매개자로 삼아 기사가 되기를 욕망합니다. 하지만 아마디스는 돈키호테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득히 먼 존재입니다. 이처럼 거리가 멀면, 매개자가 어렴풋하게 보이기 때문에 주체가 욕망할 수 있는 대상이 매우 다양해집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라는 범접할 수 없는 이상적 존재를 매개로 삼아, 각자의 시야에 따라 이웃 사랑, 정의, 진실함 등 다양한 가치를 욕망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인류의 문화에는 거대한 변화가 찾아옵니다. 종교와 신분제가 쇠퇴하고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사람들은 점차 자신과 가까운 세속적인 대상들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나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주변 사람들, 즉 직장 동료, 친구, SNS 속 지인들을 모델로 삼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라르는 이를 내적 매개라고 불렀습니다. 위대한 현대 소설가들은 바로 이 외적 매개에서 내적 매개로 넘어가는 중대한 사회적 변화를 날카롭게 포착해 냈습니다.

내적 매개가 불러온 세 가지 파괴적 결과

나와 같은 세계에 속한 사람을 매개자로 삼는 내적 매개는 외적 매개와는 완전히 다른, 매우 파괴적인 특성을 지닙니다. 첫째는 경쟁과 증오심입니다. 학교에서 전교 2등이 1등을 모델로 삼아 비슷해지려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2등이 1등처럼 되는 유일한 방법은 1등을 짓누르고 추락시키는 것뿐입니다. 같은 세계에 속한 사람들끼리 서로를 모방하면 근본적으로 같은 대상을 향해 피 터지는 줄다리기를 해야만 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항상 그들을 견제하고 증오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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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충코의 철학 Chungco 제공 영상 · 13:34


둘째는 욕망 대상의 한정입니다. 외적 매개에서는 매개자가 멀리 있어 다양한 대상을 추구할 수 있었지만, 내적 매개에서는 매개자의 모습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입니다. 친구가 새로 산 시계, 동료가 이사 간 아파트처럼 내가 쟁취해야 할 구체적인 대상이 정확히 주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딱 그것을 손에 넣지 못하면, 나는 매개자보다 열등한 패배자가 되었다는 깊은 좌절감에 빠지게 됩니다.

셋째는 자의식 과잉과 자기 기만입니다. 주체는 매개자를 은근히 증오하면서도 결국 그와 똑같은 것을 욕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이를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존재 가치가 무너져 내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속입니다. "친구가 루이비통을 샀으니 나는 샤넬을 살 거야. 나는 저 사람과 다르게 순수하게 내 취향을 좇는 거야." 현대인들이 그토록 주체성과 자율성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진짜 이유는, 역설적으로 타인과 너무나 비슷해진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작은 차별성을 만들어 자신의 우월성을 증명하려는 속물근성에 불과하다고 지라르는 지적합니다.

수많은 타인을 모방하다 산산조각 난 자아

이러한 내적 매개의 굴레는 결국 우리의 삶을 자아의 분열이라는 끔찍한 결말로 몰아넣습니다. 현대인들은 도처에 널린 수많은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살아갑니다. 이는 곧 내 안에 무수히 많은 '욕망의 삼각형'들이 쪼개져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돈키호테가 오직 위대한 기사라는 거대한 삼각형 하나만을 품고 통일된 자아를 유지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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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충코의 철학 Chungco 제공 영상 · 19:11


지라르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이 이러한 분열된 자아를 가장 탁월하게 보여준다고 평가했습니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갑자기 현명하게 굴다가도 돌연 아둔해지고, 미친 듯이 격정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의 주변 환경에는 이웃, 가족, 친구 등 너무나 가까운 매개자들이 촘촘히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특정 순간 어떤 매개자를 떠올리느냐에 따라 그와 연동된 욕망의 삼각형이 작동하고, 잠시 후 다른 매개자를 떠올리면 또 다른 욕망에 사로잡혀 전혀 다른 인간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타인의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며,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는 파편화된 존재로 전락하고 맙니다.

자기 기만을 멈추고 현실을 직시하는 법

과연 우리는 이 끔찍한 분열을 피할 수 있을까요? 현대의 낭만주의 사조, 예를 들어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 등장하는 뫼르소처럼 아예 타인의 시선이나 매개적 욕망에 무감각한 인간상을 추구하며 이 현실을 회피하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다들 타인에게 영향을 받으며 진실되지 못한 욕망을 품고 사니, 나만은 그 욕망에서 벗어나 초연하게 살겠다는 태도입니다. 하지만 지라르는 이조차도 결국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우월감을 느끼려는 또 다른 형태의 속물근성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진정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길은, 자아의 해체를 있는 그대로 뼈아프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는 남들과 달라. 나는 나의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어"라는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그 대신 "내 안에는 수많은 타인의 썩어 문드러진 욕망들이 얽혀 있고, 나는 그 갈등 사이에서 분열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다"라는 사실을 처절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어쩌면 시스템을 개혁하거나 SNS를 없앤다고 해서 우리가 남들과 비교하는 본성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내 욕망이 결코 온전한 내 것이 아님을 철저히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매개된 욕망에 무의식적으로 휘둘리지 않고 삶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될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이 끝없는 모방의 굴레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FAQ

르네 지라르의 '욕망의 삼각형'이란 무엇인가요?

인간의 욕망이 주체에서 대상으로 직접 향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매개자(모델)'를 거쳐 대상을 향하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우리가 특정 대상을 원하는 이유는 그 대상 자체의 가치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동경하는 누군가가 그것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외적 매개와 내적 매개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외적 매개는 돈키호테처럼 주체와 매개자의 거리가 멀어 직접적인 경쟁이 발생하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반면, 내적 매개는 직장 동료나 친구처럼 주체와 매개자가 같은 세계에 속해 있어 서로 끊임없이 경쟁하고 질투하게 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현대인들이 유독 '나다움'과 '주체성'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타인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이 똑같은 것을 욕망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기 싫은 '자기 기만'에서 비롯됩니다. 타인과 작은 차이를 만들어 자신의 존재 가치와 우월성을 정당화하려는 심리적 방어 기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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