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은 불과 10년 만에 단순 제조업 국가에서 독자적인 특허를 생산하는 기술 선도국으로 극적인 도약을 이뤄냈습니다.
- 선진국의 엄격해진 외국인 투자 규제를 피하기 위해, 중국 기업들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워 선진국 핵심 기술 기업의 지분을 우회 확보하는 전략을 썼습니다.
- 미국과 유럽이 뒤늦게 자금 출처 추적을 의무화하며 규제에 나섰지만, 중국은 이미 5천조 원 규모의 해외 자산을 확보하며 필요한 기술적 토대를 완성한 뒤였습니다.

중국의 기술력, 아직도 선진국 제품을 대충 베끼는 수준이라고 생각하시죠? 세상의 모든 지식 언더스탠딩, 이번에는 우리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는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세계의 공장' 역할에 머물렀던 중국이, 이제는 미국을 위협하는 기술 선도국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단순히 정부가 돈을 엄청나게 쏟아부어서 가능했던 일일까요? 핵심은 그게 아닙니다.
최근 미국 전미경제연구소(NBER)에 발표된 논문은 중국의 기술 굴기 이면에 매우 치밀하고 집요한 '기술 흡수 전략'이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선진국의 규제를 요리조리 피해 가며, 해외 기업의 R&D 성과를 자국으로 빨아들인 구체적인 메커니즘이 존재했다는 뜻입니다. 도대체 중국은 어떤 방법으로 서구권의 기술을 합법적으로, 혹은 교묘하게 가져올 수 있었을까요?
단 10년 만에 뒤바뀐 기술 패권의 지형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기술 혁신은 단순히 예산을 쏟아붓는다고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기초 과학부터 차근차근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중국은 이 축적의 시간을 마법처럼 건너뛰었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안경을 쓴 남성이 마이크 앞에 앉아 있고, 화면 왼쪽에는 주요국 글로벌 특허 네트워크 포지셔닝 변화를 나타낸 산점
글로벌 특허 네트워크의 변화를 살펴보면 이 기현상이 명확히 드러납니다. 2010년까지만 해도 중국의 특허는 해외 기술에 크게 의존하는 '추격형'에 몰려 있었습니다. 반면 미국은 압도적인 '기술 선도형' 국가였죠. 그런데 2020년이 되자 드라마틱한 반전이 일어납니다. 한국이나 일본 같은 전통적인 제조 강국들이 제자리에 머물거나 다소 추격형으로 밀려나는 동안, 중국은 훌쩍 기술 자립형을 넘어 선도형 국가의 위치로 이동했습니다. 불과 10년 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NBER 보고서는 중국이 기술을 자체 개발하기보다, 선진국 기업이 개발한 R&D의 과실을 통째로 중국으로 가져오는 이른바 '혁신 환류(Innovation Feedback)'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고 설명합니다.
합작법인에서 기업 사냥으로: 기술 흡수의 진화
중국의 기술 흡수 전략은 시대에 따라 진화해 왔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거대한 내수 시장'을 미끼로 던진 합작법인(JV) 설립이었습니다. 14억 인구의 시장을 내어줄 테니, 중국에 물건을 팔고 싶으면 중국 기업과 50대 50으로 합작 회사를 세우라는 조건이었죠.
당시 메르켈 총리 시절의 독일이 이 방식에 적극적으로 호응했습니다. 독일의 짱짱한 강소기업(미텔슈탄트)들이 부품을 수출하며 톡톡히 재미를 봤죠. 하지만 대등한 기술력을 갖추지 못한 중국 파트너 기업에게 이 합작법인은 선진 기술을 어깨너머로 배우고 빼낼 수 있는 훌륭한 통로가 되었습니다.
중국 내수시장 활용 기술 확보 모델을 보여주는 도표와 이를 설명하는 남성 출연자가 담긴 화면
두 번째 단계는 노골적인 M&A(인수합병)였습니다. 돈이 많아진 중국은 아예 알짜 기술을 가진 해외 기업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의 세계적인 산업용 로봇 기업 '쿠카(Kuka)'를 중국 메이디가 인수했고, 볼보(Volvo) 자동차는 지리차가 가져갔습니다. 네덜란드 NXP에서 분사한 범용 반도체 칩 회사 '넥스페리아' 역시 중국계 사모펀드를 거쳐 중국 윙테크의 손에 넘어갔죠. 오늘날 중국이 자동차, 가전, 로봇 산업에서 세계를 주름잡게 된 배경에는 바로 이 시기의 공격적인 기업 사냥이 있었습니다.
조세피난처라는 우회로: 선진국 규제를 뚫다
중국이 반도체 등 핵심 안보와 직결된 기술 기업까지 먹어 치우려 하자, 서방 국가들도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미국과 유럽은 외국인 투자 심사를 대폭 강화해 중국 국적 기업이 자국의 핵심 기술 기업을 인수하지 못하도록 문을 굳게 걸어 잠갔습니다.
자, 그러면 중국의 기술 탈취가 멈췄을까요? 여기서부터가 진짜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중국은 막힌 정문을 놔두고 '조세피난처'라는 뒷문을 열었습니다.
외국인 투자 심사는 보통 투자금의 직전 국적을 확인합니다. 중국에서 돈이 오면 막을 수 있지만, 버뮤다나 케이맨 제도에서 페이퍼 컴퍼니를 거쳐서 들어오면 최종 돈줄이 누구인지 행정적으로 추적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실제로 명품 가전업체 '뱅앤올룹슨(B&O)'의 단일 최대 주주는 버뮤다 소재 기업이지만, 그 실소유주는 중국 기업입니다. 세계 3위 광산기업 '리오틴토'의 지분을 대량 보유한 싱가포르 페이퍼 컴퍼니의 뒤에도 중국 알루미늄 공사가 있었죠.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중국 기업 6천여 개 중 무려 37%가량이 케이맨 제도 등 조세피난처에 도관체를 두고 있었습니다. 선진국 규제를 우회하기 위해 다단계 쿠션을 치는 방식을 국가적 차원에서 활용한 셈입니다.
인수 직후 쏟아지는 특허: 혁신 환류인가 기술 탈취인가
그렇다면 조세피난처를 통해 최대 주주가 된 이후,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NBER 보고서가 제시한 통계는 꽤 충격적입니다.
해외 기업 인수 전후의 특허 등록 건수 변화를 나타낸 그래프와 이를 설명하는 남성 출연자가 담긴 화면
중국 기업이 선진국 기술 기업을 인수하거나 지분을 확보하기 직전 해, 해당 중국 기업의 특허 등록 건수는 연간 20건 남짓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인수가 성사된 바로 그 해(Year 0), 특허 등록 건수는 갑자기 60~80건으로 3배 이상 폭증합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타깃이 된 서구 기업이 현지에서 R&D를 수행해 기술을 개발하면, 그 결실과 특허권이 타깃 기업에 남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 있는 모회사(최대 주주)로 고스란히 귀속되고 있다는 강력한 정황 증거입니다. 보고서는 이를 '혁신 환류'라는 고상한 단어로 포장했지만, 서구의 시각에서는 사실상 합법을 가장한 R&D 도둑질이나 다름없습니다.
뒤늦게 문을 걸어 잠근 미국과 유럽, 그러나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서방 국가들은 왜 가만히 두고 봤을까요? 사실 조세피난처는 서방의 다국적 기업들도 절세를 위해 흔히 사용하는 합법적 수단입니다. 중국만 콕 집어 막으려니 행정적 한계와 자본 시장의 반발이 있었던 거죠.
중국 기업의 글로벌 자산 소유 변화를 나타낸 꺾은선 그래프와 이를 설명하는 남성 출연자.
결국 사태를 파악한 미국은 2024년에야 '기업 투명성법'을 시행해 조세피난처를 거친 투자의 최종 실소유주를 보고하도록 의무화했습니다. 유럽연합(EU) 역시 2025년부터 꼬리표를 끝까지 추적하는 유사한 규제를 도입합니다.
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였습니다. 2012년부터 2021년 사이, 중국이 조세피난처를 통해 선진국에 확보한 자산 규모는 약 3조 3천억 달러(약 4,500조 원)에 달합니다. 규제가 헐거웠던 지난 10년 동안, 중국은 이미 필요한 핵심 기술과 R&D 파이프라인을 자국으로 충분히 이식해 버렸습니다.
왜 중국만 가능했을까? 국가 주도 산업정책의 이면
여기서 우리는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됩니다. '이런 꼼수가 가능하다면, 왜 다른 나라들은 중국처럼 하지 못했을까?'
해답은 중국 특유의 '국가 주도 산업 체제'에 있습니다. 서구권이나 일반적인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국가가 특정 산업의 기술 수준을 언제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강제하지 않습니다. 기업의 자율에 맡기죠. 반면 중국은 '중국제조 2025'처럼 국가 최고 지도부가 명확한 목표를 하달합니다.
목표가 떨어지면 중국의 국영기업(SOE)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움직입니다. 일반적인 국가라면 정부가 개입할 때 발생하는 막대한 비효율과 재무적 손실을 감당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 체제 아래의 국영기업들은 목표 달성을 위해 발생하는 손실이나 비효율을 기꺼이 무시하고 안고 갑니다. 압도적인 자본력과 목표 달성에 대한 절박함, 그리고 비효율을 묵인하는 국가 시스템이 결합하여 서구 자본주의의 맹점을 파고든 것입니다.
결국 중국의 기술 굴기는 단지 돈이 많아서 쟁취한 결과물이 아닙니다. 선진국의 기술을 흡수하겠다는 명확한 국가적 목표, 제도의 허점을 찌르는 영악한 우회 전략, 그리고 이를 밀어붙이는 체제의 특수성이 만들어낸 합작품인 셈입니다. 이제 서방 세계는 빗장을 걸어 잠그기 시작했지만, 이미 기술 선도국 반열에 오른 중국을 상대로 어떤 새로운 견제 방식을 꺼내 들지 지켜봐야 할 시점입니다.
FAQ
중국은 어떻게 선진국의 외국인 투자 규제를 피했나요?
케이맨 제도나 버뮤다 같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도관체)를 세우는 방식을 활용했습니다. 투자금의 직전 출발지가 조세피난처로 잡히기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의 규제 당국이 최종 자금 출처가 중국이라는 사실을 행정적으로 추적하고 막아내기 어려웠습니다.
NBER 보고서가 말하는 '혁신 환류'란 무슨 뜻인가요?
중국 기업이 해외 선진 기술 기업의 지분을 인수한 뒤, 해당 타깃 기업이 현지에서 수행한 R&D(연구개발) 성과와 특허를 중국 모회사로 가져가는 현상을 뜻합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수 직전 20건 수준이던 특허 등록이 인수 직후 60~80건으로 폭증하는 경향이 확인되었습니다.
미국과 유럽은 왜 이런 방식의 기술 유출을 일찍 막지 못했나요?
조세피난처는 세금 문제 때문에 서방의 다국적 기업들도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합법적 경로였기 때문입니다. 최종 실소유주를 끝까지 추적하는 행정적 시스템이 부재했으나, 뒤늦게 심각성을 인지한 미국은 2024년 '기업 투명성법'을, EU는 2025년부터 관련 규제를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다른 나라들은 중국처럼 국가 주도로 기술을 빠르게 흡수하지 못하나요?
일반적인 자본주의 국가들은 국가가 산업 전반을 통제할 때 발생하는 막대한 비효율과 경제적 손실을 감당하려 하지 않습니다. 반면 중국은 '중국제조 2025' 같은 국가적 목표가 하달되면, 국영기업들이 손실과 비효율을 무시하고서라도 타깃 기술 확보라는 목표 달성에만 매달리는 특수한 정치·경제 체제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