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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의 100년 역사를 보면 여성은 기술 발전과 함께 '커리어와 가정'을 모두 취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고소득을 요구하는 '탐욕스러운 일자리'의 등장으로 새로운 구조적 불평등에 직면했습니다.
  • 한국은 2015년을 기점으로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을 추월하고 수도권 경제 집중이 심화되면서, 청년 세대에게 커리어 지향이 생존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압축되어 나타났습니다.
  • 퓨리서치 조사 결과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삶의 의미 1순위로 '가족'이 아닌 '물질적 풍요'를 꼽았으며, 이는 현재의 경제적 지원 위주 저출산 정책이 근본적인 한계에 부딪혔음을 시사합니다.

요즘 청년들은 왜 결혼을 하지 않을까요? 흔히들 집값이 너무 비싸서, 혹은 취업이 어려워서 등 '경제적 여건' 때문이라고 생각하시죠? 저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게 전부일까요?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민세진 교수와 함께 들여다본 데이터의 결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핵심은 '결혼을 하고 싶은데 현실이 안 따라주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청년들의 삶에서 '가족'이라는 가치 자체가 지워져 버렸다는 데 있습니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결혼은 당연한 삶의 경로가 아니라, 굳이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하나의 '옵션'으로 전락했습니다. 도대체 한국 사회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가치관의 붕괴가 일어난 걸까요?

100년의 변화: '가정 OR 커리어'에서 '가정 AND 커리어'로

이 현상을 이해하려면 먼저 2023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클라우디아 골딘 하버드대 교수의 연구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골딘 교수는 지난 100년간 미국 대졸 여성들이 커리어와 가정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5개의 세대로 나누어 추적했습니다.

초기 여성들에게 커리어와 가정은 완벽한 '양자택일'이었습니다. 가부장적 규범과 높은 영아 사망률 속에서, 독립적인 삶을 원했던 엘리트 여성들은 가정을 포기하고 커리어를 택했죠. 하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재미있는 변화가 나타납니다. 1920년대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일자리를 먼저 잡은 뒤 가정을 꾸리거나, 베이비붐 시대처럼 일찍 결혼해 아이를 키운 뒤 뒤늦게 일터로 나가는 식의 '순차적 선택'이 등장합니다.


[출처] 언더스탠딩 : 세상의 모든 지식 제공 영상 ·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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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판도를 완전히 바꾼 것은 다름 아닌 '기술의 발전'이었습니다. 세탁기,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의 보급은 가사 노동의 굴레를 끊어냈고, 1960년대 경구피임약의 승인은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 시기를 스스로 통제하며 학업과 커리어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나아가 시험관 시술(IVF) 같은 보조생식술이 발달하면서, 가장 최근 세대인 5집단에 이르러서는 '커리어와 가정을 모두 포기하지 않고 쟁취하는(Career AND Family)' 흐름이 자리 잡게 됩니다.

왜 남녀 임금은 좁혀지지 않을까: '탐욕스러운 일자리'

자, 그러면 커리어와 가정을 모두 잡기로 한 여성들은 남성들과 동등한 위치에 섰을까요? 의아했던 건,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을 추월하고 동등하게 사회에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성별 임금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왜 그럴까요?

여기서 골딘 교수가 제시한 핵심 개념이 바로 '탐욕스러운 일자리(Greedy Work)'입니다.


[출처] 언더스탠딩 : 세상의 모든 지식 제공 영상 · 2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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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제조업 중심 사회에서는 일한 시간만큼 정직하게 돈을 벌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금융, 법률, 하이테크 산업이 부상하면서 상황이 달라집니다. 이 분야의 일자리들은 단순히 일하는 시간에 비례해 돈을 주지 않습니다. 주말이든 밤이든 상사나 고객이 부르면 당장 뛰어나갈 수 있는 '언제든 대기 상태'를 요구하죠. 그 대가로 엄청나게 불균형적인 고수익을 보장합니다. 말 그대로 사람의 시간을 탐욕스럽게 빨아먹는 일자리입니다.

커리어와 가정을 모두 선택한 부부는 여기서 전략적인 분업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는 아이가 아플 때 당장 달려갈 수 있는 유연하고 예측 가능한 일자리를 맡아야 하고, 다른 한 명은 탐욕스러운 일자리에 뛰어들어 고수익을 챙깁니다. 출발선이 같았던 부부라도 10년, 20년 뒤에는 남편은 임원이나 파트너가 되어 있고, 아내는 평범한 실무자에 머무는 구조적 불공평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죠.

2015년의 데칼코마니: 한국 사회에 닥친 거대한 분기점

미국이 100년에 걸쳐 겪은 이 변화를, 한국은 엄청나게 압축적으로 겪어냈습니다. 특히 민세진 교수는 한국 사회의 가장 결정적인 분기점으로 2015년을 지목합니다. 도대체 2015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첫째, 한국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을 완전히 추월한 해입니다.
둘째, 1.2명 선에서 간신히 버티던 합계출산율이 훅 꺾이며 수직 낙하를 시작한 시점입니다.
셋째, 수도권의 지역총생산(GRDP)이 비수도권을 영원히 역전해버린 해입니다.


[출처] 언더스탠딩 : 세상의 모든 지식 제공 영상 · 3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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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가지 현상은 우연히 겹친 것이 아닙니다. 2001년 중국이 WTO에 가입하면서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자, 한국의 지방을 든든하게 받쳐주던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공장이 문을 닫는 것을 목격한 부모 세대는 자녀들에게 "너희는 나처럼 공장에서 일하지 말고, 대학 가서 전문직이 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여성들의 고등교육 열풍이 불었고, 양질의 일자리가 남아있는 수도권으로 청년들이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간 것입니다. 생존을 위한 극단적인 '커리어 지향' 사회가 완성된 셈이죠.

가정이 지워진 청년들: 퓨리서치 통계의 충격

그렇다면 지금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는 미국처럼 '커리어와 가정'을 모두 원하고 있을까요? 여기서 통념을 뒤엎는 충격적인 데이터가 등장합니다.

2021년 퓨리서치 센터가 전 세계 17개국 19,000명을 대상으로 "당신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14개국이 1순위로 '가족'을 꼽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1위로 '물질적 풍요(돈)'를 선택했습니다. 2위는 건강이었고, 가족은 3위로 밀려났습니다.


[출처] 언더스탠딩 : 세상의 모든 지식 제공 영상 · 3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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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섬뜩한 것은 '친구 및 공동체'에 대한 인식입니다. 타 국가의 10대 후반에서 20대는 친구와 공동체가 삶의 의미라고 답한 비율이 30~40%에 달합니다. 반면 한국은 20대부터 60대까지 전 연령대가 바닥에 딱 붙어 있습니다. 공동체는 고사하고, 굳이 타인과 관계를 맺고 가정을 꾸릴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저출산의 진짜 원인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는 지금까지 청년들이 "결혼을 하고 싶지만 돈이 없어서, 집이 없어서 못 한다"고 전제해 왔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출산 지원금을 주고, 신혼부부 대출을 늘려주는 정책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죠.

하지만 현실은 "아니, 애초에 나는 가정을 꾸리는 게 내 삶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데?"라는 근본적인 가치관의 변화에 직면해 있습니다. 부모 세대와 직장 선배들이 일과 가정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며 갈등하는 모습을 간접 경험하면서, 밀레니얼 세대는 가정을 '반드시 이뤄야 할 로망'이 아니라 '가성비가 떨어지는 피곤한 옵션'으로 분류해 버린 것입니다.

물론 경제적 지원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가정이 삶의 핵심 가치에서 완전히 밀려난 이 사회적 분위기를 직시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훌륭한 장려 정책도 결국 허공에 돈을 뿌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현금성 지원이 아니라, 왜 우리 청년들이 타인과 함께하는 삶의 가치를 잃어버렸는지에 대한 뼈아픈 성찰입니다.


FAQ

클라우디아 골딘이 말하는 '탐욕스러운 일자리'란 무엇인가요?

업무 시간에 비례해 정직하게 돈을 버는 것을 넘어, 주말이든 야간이든 회사의 호출에 언제나 응답해야 하는 고강도·고수익 직종을 뜻합니다. 커리어와 가정을 병행해야 하는 부부의 경우, 보통 한 명(주로 여성)이 육아를 위해 유연한 일자리를 선택하고 다른 한 명(주로 남성)이 탐욕스러운 일자리를 맡게 되면서 구조적인 성별 임금 격차가 발생하게 됩니다.

한국의 인구 구조와 경제 변화에서 2015년이 왜 중요한가요?

2015년은 한국 사회의 거대한 구조적 변화가 동시에 터져 나온 분기점입니다. 여성의 고등교육 이수율이 남성을 처음으로 추월했고, 수도권의 지역총생산(GRDP)이 비수도권을 영구적으로 넘어섰으며, 1.2명 선을 유지하던 합계출산율이 급락하기 시작한 해이기도 합니다.

퓨리서치 조사에서 나타난 한국인 가치관의 특이점은 무엇인가요?

전 세계 17개국 중 14개국이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가치 1위로 '가족'을 꼽았지만,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를 1위로 꼽았습니다. 특히 타 국가와 달리 20대 청년층조차 '친구 및 공동체'를 삶의 의미로 꼽는 비율이 극단적으로 낮게 나타나,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 자체에 대한 가치가 크게 하락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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