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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미국 바이오 업계에서는 중국 기업이 개발한 신약 후보 물질을 사와 미국 법인으로 상장시키는 이른바 '뉴코(NewCo)' 모델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 이는 미국의 깐깐한 FDA 규제와 대중국 제재를 피하면서도, 중국의 압도적인 임상 속도와 미국의 막강한 자본력을 결합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입니다.
  • 정치적 갈등 속에서도 '가장 효율적인 R&D는 중국에서, 고평가 상업화는 미국에서' 진행하는 새로운 글로벌 분업 구조가 제약 산업의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 바이오 업계에서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이 돕니다. "식당 간판은 완전 뉴욕 힙스터 감성인데, 알고 보니 주방장은 중국에서 온 은둔의 고수더라."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겉은 세련된 미국의 바이오 스타트업이지만, 그들이 개발하는 핵심 신약 레시피는 사실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뜻입니다. 미국 정부가 안보를 이유로 중국 바이오 기업을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자본은 오히려 중국의 신약 기술을 공격적으로 쓸어 담고 있습니다. 글로벌 제약 산업이 '중국 R&D와 미국 상업화'라는 새로운 분업 구조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현장을 짚어보겠습니다.

간판은 미국, 주방장은 중국? '뉴코(NewCo)'의 등장

최근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하며 단숨에 우리 돈 1조 원 가까운 자금을 조달한 '카일레라 테라퓨틱스(Kailera Therapeutics)'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설립된 지 고작 2년밖에 안 된 이 스타트업이 바이오 IPO 역대 최고 수준의 흥행을 기록한 이유는 바로 전 세계가 주목하는 비만약(GLP-1) 후보 물질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건, 이 후보 물질의 원래 주인이 중국 1위 제약사인 항서제약이라는 점입니다.

항서제약이 중국 내에서 임상 1, 2상을 끝내고 효과를 입증하자, 베인캐피탈 같은 미국의 대형 벤처캐피털(VC)들이 합작하여 이 기술의 해외 판권을 통째로 사 왔습니다. 그리고 오직 이 약을 미국에서 상업화하기 위한 목적의 독립된 미국 법인을 세웠는데, 이것이 바로 카일레라입니다.

이처럼 중국 기술의 판권을 사 와서 미국에 새로운 회사를 차리는 방식을 업계에서는 '뉴코(NewCo)' 모델이라고 부릅니다. 말 그대로 새로운 회사(New Company)를 만들어 신분을 세탁하고,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우회로를 개척한 것입니다.

왜 굳이 '신분 세탁'을 거쳐야 할까요?

그렇다면 혁신적인 신약 기술을 가진 중국 회사가 직접 미국에 진출하지 않고, 왜 굳이 미국 자본에 기술을 넘기는 복잡한 방식을 택할까요? 핵심은 미국의 강력한 규제 장벽에 있습니다.

과거 중국 제약사들이 독자적으로 FDA의 문을 두드렸을 때 뼈아픈 실패를 겪은 사례들이 많습니다. 중국 환자 데이터만으로는 미국 인구의 다양성을 대변할 수 없다며 승인이 거절되거나, 코로나19 시절 중국 공장 실사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승인이 무기한 연기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미국에서 '생물보안법(Biosecure Act)'이 통과되면서 상황이 더 팍팍해졌습니다. 미국 정부의 자금을 받는 기업이 적국(중국)의 생명공학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입니다.

중국 기업 이름표를 달고서는 깐깐한 FDA 심사를 통과하기도, 막대한 임상 비용을 감당하며 미국 증시에 상장하기도 정치적·재무적으로 너무 어려워졌습니다. 하지만 미국 법인이라는 새 옷을 입히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규제 기관의 의심을 피하기 수월해지고, 미국 투자자들의 거대한 자금을 유치해 남은 임상을 속도감 있게 밀어붙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자본이 중국 기술에 열광하는 진짜 이유

미국 자본이 정치적 리스크를 무릅쓰고서라도 뉴코를 만드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중국 바이오 산업이 가진 압도적인 속도와 가성비 때문입니다. 보통 신약 하나를 개발하려면 10년 이상의 시간과 수조 원의 돈이 듭니다. 그런데 중국은 이 초기 임상 시간을 미국의 절반 수준으로 단축해 냅니다.


[출처] 언더스탠딩 : 세상의 모든 지식 제공 영상 ·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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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제 임상 1상의 경우, 미국은 환자를 모아 임상을 시작하는 데 평균 17.5개월이 걸리지만 중국은 9개월이면 끝납니다. 비만약도 미국은 8개월이 걸리는 반면 중국은 3개월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인구가 워낙 많고 대형 병원 단위로 환자를 빠르게 모집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중국 정부의 파격적인 규제 완화가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과거 임상 승인에 1년 넘게 걸리던 것을, 서류 접수 후 60일(최근에는 20일) 안에 이의 제기가 없으면 자동으로 임상을 시작할 수 있는 '묵시적 승인제'로 바꿨습니다. 또한 글로벌 빅파마에서 수십 년간 경험을 쌓은 중국계 인재, 이른바 '하이구이(바다를 건너온 거북이)'들이 막대한 지원금을 받고 고국으로 돌아와 글로벌 표준에 맞는 연구를 이끌면서 기술력까지 급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R&D는 중국, 상업화는 미국… 재편되는 제약 생태계

이러한 배경 속에서 글로벌 투자자들은 가장 합리적인 공식을 찾아냈습니다. 비용이 많이 들고 속도가 중요한 R&D와 초기 임상은 가성비 좋은 중국에서 해결하고, 높은 밸류에이션을 받을 수 있는 상장과 상업화는 자본주의의 심장인 미국에서 진행하는 것입니다.


[출처] 언더스탠딩 : 세상의 모든 지식 제공 영상 ·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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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전 세계 임상 1, 2상 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미국을 역전해 40%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저렴한 카피약만 만들던 나라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거대한 신약 실험실로 변모한 것입니다. 심지어 FDA 등 규제 기관이 기존 치료제보다 월등히 우수하다고 인정해 주는 '신속 심사' 지정 건수에서도 중국은 이미 유럽을 앞질렀습니다. 정치인들은 서로 싸우고 벽을 높여도, 자본은 결국 가장 효율적인 길을 찾아 국경을 넘고 있는 셈입니다.

앞으로 지켜봐야 할 리스크와 변수

물론 '중국 기반 뉴코' 모델이 완벽한 성공 방정식인 것만은 아닙니다. 미국 정부가 바이오 분야에서 중국의 굴기를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는 만큼, 외국 자본이 들어간 바이오 기업에 대해 더욱 깐깐한 안보 심사의 잣대를 들이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중국 정부 역시 자국의 핵심 신약 기술이 헐값에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출 승인을 지연시킬 리스크도 존재합니다.

또한, 초기 임상을 아무리 빠르게 마쳤다 하더라도 중국인 위주로 구성된 임상 데이터가 다양한 인종이 섞인 미국 시장에서 동일한 효능을 발휘할지는 여전히 검증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조업에서 '디자인은 미국, 생산은 중국'이 오랫동안 공식이었던 것처럼 제약 산업 역시 거대한 글로벌 분업화의 파도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생태계 속에서 존재감이 미미한 한국 바이오 산업이 어떤 생존 전략을 찾아야 할지,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FAQ

뉴코(NewCo) 모델이 정확히 무엇인가요?

뉴코는 중국 제약사가 개발한 유망한 신약 후보 물질의 판권을 미국 벤처캐피털 등이 사들인 뒤, 오직 그 약을 상업화하기 위해 미국에 설립하는 독립된 신설 법인을 뜻합니다. 중국산 기술에 미국 기업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부여하는 일종의 우회 상장 모델입니다.

미국의 대중국 제재가 심한데, 왜 굳이 중국 기술을 사오는 건가요?

중국의 신약 개발 속도와 효율성이 압도적으로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방대한 인구를 바탕으로 환자 모집이 매우 빨라 임상 1상에 걸리는 시간이 미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합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초기 R&D를 비용 효율적인 중국에서 마치고, 평가는 자본력이 풍부한 미국에서 받는 것이 가장 유리한 전략입니다.

중국의 임상 시험 속도가 유독 빠른 비결은 무엇인가요?

풍부한 환자 풀 외에도 중국 정부의 파격적인 규제 완화가 컸습니다. 임상 신청 후 일정 기간 내 이의가 없으면 자동으로 승인되는 제도를 도입해 행정 절차를 대폭 줄였습니다. 또한 글로벌 빅파마에서 경험을 쌓은 중국계 핵심 인재들이 대거 귀환하면서 연구 개발 시스템이 글로벌 표준에 맞게 고도화된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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