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성형 AI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디자인 툴 무용론이 제기되며 어도비와 오토데스크가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 두 기업은 1982년 창업 이래 산업 표준을 구축하고, 과감한 M&A와 구독형 클라우드 전환을 통해 시장을 지배해 온 공통된 DNA를 가지고 있습니다.
- 현재 이들은 AI를 위협이 아닌 크리에이터의 창의성을 확장하는 도구로 툴 내부에 적극적으로 내재화하며 또 한 번의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최근 챗GPT와 미드저니 같은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시장에는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포토샵은 필요 없다", "말만 하면 AI가 다 그려주는데 기존 디자인 소프트웨어가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는 비관적인 시선이 쏟아졌죠. 과연 2D 디자인의 제왕 어도비(Adobe)와 3D 설계의 대명사 오토데스크(Autodesk)는 이대로 몰락하게 될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두 기업이 그동안 걸어온 혁신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이들은 지난 40여 년간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뀔 때마다 스스로를 파괴하고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하며 살아남은 '혁신의 마스터'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전혀 다른 시장을 점유하고 있지만 어마어마하게 닮아 있는 두 테크 거인의 평행이론을 통해, AI 시대에 기업이 어떻게 생존하고 진화해야 하는지 그 메커니즘을 해독해 보겠습니다.
다양한 인물과 그래픽이 담긴 격자형 이미지 콜라주
1982년생 동갑내기, 2D와 3D의 글로벌 표준이 되다
놀랍게도 어도비와 오토데스크는 모두 1982년에 창업했습니다. 창업자들 역시 뛰어난 엔지니어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죠. 이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단순히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든 것을 넘어, 자신들의 기술을 산업의 '표준'으로 만들고 거대한 생태계를 구축했다는 데 있습니다.
어도비는 제록스 파크 출신의 존 워녹(John Warnock)과 찰스 게스케(Charles Geschke)가 차고에서 창업한 회사입니다. 이들은 어떤 기기에서든 동일한 레이아웃으로 문서를 출력할 수 있는 페이지 기술인 '포스트스크립트(PostScript)'를 개발했습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이 기술의 가치를 알아보고 선제적으로 투자하면서, 어도비는 데스크톱 퍼블리싱(DTP)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됩니다. 이후 우리가 매일 쓰는 PDF 포맷을 만들어내며 종이 없는 사무실의 기틀을 다졌죠.
다양한 색상과 크기의 폰트가 겹쳐진 어도비 초기 그래픽 자료 화면
반면에 오토데스크는 존 워커(John Walker)를 비롯한 14명의 프로그래머가 뭉쳐 만들었습니다. 당시 크고 무거운 워크스테이션에서나 돌아가던 캐드(CAD) 시스템을 개인용 PC에서 구동할 수 있게 만든 '오토캐드(AutoCAD)'를 선보이며 시장의 판도를 바꿨습니다. 오토데스크 역시 DWG라는 자체 포맷을 도면 설계의 글로벌 표준으로 만들면서, 이 툴을 쓰지 않으면 건축이나 제조 프로세스 자체가 굴러가지 않는 필수 생태계를 완성했습니다.
M&A와 과감한 자기 파괴로 한계를 돌파하다
선도 기업이 혁신을 멈추고 정체될 때 보통 비극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두 회사는 자신들의 기술에만 매몰되지 않고, 외부의 혁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어도비가 일러스트레이터에 이어 놀 형제의 '포토샵'을 인수하고, 프리미어와 인디자인을 더해 크리에이티브 제국을 건설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2005년에는 매크로미디어를 인수해 플래시(Flash)를 품으며 웹 생태계까지 장악했죠.
오토데스크 역시 3D 스튜디오 맥스, 마야(Maya), 레빗(Revit)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기계, 건축을 넘어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영역까지 3D 생태계를 무섭게 확장해 나갔습니다. 원래 잘하던 분야의 툴은 독립 체제를 유지해 주면서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유연성도 돋보였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시대가 변할 때 보여준 과감한 결단력입니다.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고 애플이 플래시 지원을 중단하자, 어도비는 수명이 다한 플래시를 과감히 사장시키고 HTML5를 수용했습니다. 기술에 대한 자만 없이 시장과 고객의 변화에 빠르게 발맞춘 뼈때리는 의사결정이었습니다.
고통스러운 클라우드 구독 전환, 뉴노멀이 되다
이들의 생존력을 증명하는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바로 비즈니스 모델의 전환입니다. 2010년대에 접어들며 패키지 소프트웨어를 한 번 팔면 끝나는 스탠드얼론(Standalone) 방식은 매출의 불확실성을 키웠습니다. 이때 어도비는 기존 고객들의 엄청난 반발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Creative Cloud)'라는 구독형(SaaS) 모델을 도입합니다.
서재를 배경으로 대담을 나누는 두 사람의 토크 장면
오토데스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도비의 전환을 지켜본 오토데스크는 퓨전 360(Fusion 360)을 시작으로 클라우드 전환을 시도합니다. 이 과정에서 매출이 급감하고 1천 명 가까운 직원을 해고하는 고통을 겪었지만, 이들은 '빨리 실패하고 다음으로 나아가자(Fast Forward)'는 사내 문화를 바탕으로 밀어붙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고통스러운 전환은 두 기업 모두에게 안정적이고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다주는 신의 한 수가 되었습니다.
AI 시대, 대체가 아닌 '확장'으로 진화하다
이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생성형 AI 시대에 이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요? 놀랍게도 이들은 AI를 두려워하는 대신, 고객의 페인포인트를 해결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로 내재화하고 있습니다.
어도비는 일찍이 '어도비 센세이(Adobe Sensei)'를 통해 AI를 연구해 왔고, 최근에는 '파이어플라이(Firefly)'를 출시해 포토샵 등 기존 툴에 생성형 AI 기능을 완벽하게 녹여냈습니다. AI가 디자이너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성을 극대화하고 작업의 디테일을 돕는 도구로 포지셔닝한 것입니다. 오토데스크 역시 제너러티브 디자인(Generative Design)을 초창기부터 도입해, AI가 최적의 설계를 제안하고 시뮬레이션하는 기능을 에어버스 같은 글로벌 기업과 협업하며 고도화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어도비의 3D 텍스처 툴인 서브스턴스(Substance)와 오토데스크의 3D 맥스, 마야가 서로 연동되며 2D와 3D의 거인들이 교차점에서 협력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술의 변화를 위협이 아닌 기회로 만들며 끊임없이 시도하는 이들의 DNA를 볼 때, AI 시대에도 이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며 또 한 번 진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진짜 관전 포인트입니다.
FAQ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어도비 포토샵이 정말 위기를 맞았나요?
AI가 이미지를 쉽게 생성해주면서 시장에 위기설이 돌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도비는 '파이어플라이(Firefly)'라는 자체 생성형 AI 모델을 개발해 기존 툴에 통합했습니다. AI를 디자이너의 대체재가 아니라 창의성과 작업 효율을 높이는 보조 도구로 내재화하며 위기를 돌파하고 있습니다.
어도비와 오토데스크가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핵심 이유는 무엇인가요?
두 기업 모두 자사의 기술을 산업의 '글로벌 표준'으로 만들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어도비는 포스트스크립트와 PDF로 2D 문서 및 출력의 표준을, 오토데스크는 DWG 포맷으로 3D 도면 설계의 표준을 세우며 대체 불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했습니다.
두 회사는 어떻게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완성했나요?
과거 패키지 소프트웨어 판매 방식에서 벗어나 클라우드 기반의 구독형(SaaS) 모델로 과감하게 전환했습니다. 초기에는 고객의 거센 반발과 단기적인 매출 하락, 구조조정 등 큰 고통이 따랐지만, 결과적으로 매달 예측 가능한 안정적 수익을 창출하는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뉴노멀)로 자리 잡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