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성당이나 궁전 앞에서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걸 진짜 사람이 손으로 만들었다고?”
첨탑은 하늘을 찌를 듯 높고, 천장과 벽면에는 그림과 조각이 가득합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죠. “도대체 이 시대 사람들은 무슨 힘으로 이런 건물을 지었을까?” 하고요.
모르면 그냥 “멋지네” 하고 지나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려 10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이어진 유럽 건축 양식의 흐름을 조금만 알고 보면, 성당과 궁전, 광장이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유럽 건축 양식 10가지를 역사 흐름에 따라 쉽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1. 고대 그리스 건축 (기원전 7세기 ~ 4세기)
아테네신전 / Designed by Magnific |
기원전 7세기 무렵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을 모시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싶어했습니다. 이들이 생각한 미의 기준은 인간의 감정이 아닌 수학적인 비례와 대칭이 주는 안정감이었죠. 그래서 멀리 보았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황금비율을 찾아 건축에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기둥의 모양도 변했는데, 소박하고 힘찬 느낌의 도리스 양식에서 시작해 우아한 소뿔 모양의 이오니아 양식을 거쳐 나뭇잎 장식으로 화려함을 더한 코린트 양식으로 발전했습니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은 이 정교한 규칙이 만들어낸 그리스 건축의 위대한 유산입니다.
2. 고대 로마 건축 (기원전 1세기 ~ 서기 4세기)
로마 판테온 / Designed by Magnific |
그리스를 정복한 로마는 그들의 유럽 건축 양식을 이어받았지만 고지식하게 규칙만을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영토가 넓어지고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수만 명의 시민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경기장과 대중탕, 도로와 수로가 필요해졌기 때문입니다.
미적인 부분보다 실용성을 중시한 로마인들은 무거운 돌의 하중을 분산시켜 내부 공간을 획기적으로 넓혀주는 아치 구조를 발달시켰고, 이를 사방으로 회전시킨 돔 구조를 완성했습니다. 여기에 인류 최초로 자갈과 화산재를 섞은 천연 콘크리트를 발명하면서 로마 콜로세움이나 판테온처럼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끄떡없는 거대하고 웅장한 스케일의 건축물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3. 비잔틴 건축 (5세기 ~ 15세기)
아야소피아 / Designed by Magnific |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열되고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피어난 양식이 바로 비잔틴 건축입니다. 서유럽이 야만족의 침입으로 혼란스럽던 5세기부터 15세기까지 동로마는 기독교 문화에 오리엔트의 화려한 예술 감각을 더해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했습니다.
외관은 비교적 수수하고 단순한 벽돌 구조를 띠지만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반전이 시작됩니다. 거대한 돔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사방의 벽면을 가득 채운 황금빛 모자이크화에 반사되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신비롭고 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요.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나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대성당이 대표적입니다.
4. 로마네스크 건축 (10세기 ~ 12세기)
피사 대성당과 사탑 / Designed by Magnific |
중세 초기 서유럽은 잦은 전쟁과 이민족의 침략으로 늘 불안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이 시기 사람들에게 교회는 단순히 예배를 드리는 곳을 넘어 물리적인 위협으로부터 몸을 숨기는 요새이기도 했습니다. 10세기 무렵 유행한 로마네스크는 이름 그대로 로마의 아치 양식을 닮은 건축을 뜻합니다.
무거운 석조 지붕을 지탱하기 위해 성벽만큼이나 두껍고 단단한 돌벽을 세웠고 굵직한 기둥들을 촘촘하게 배치했습니다. 벽이 무너지면 안 되었기에 창문은 겨우 빛만 들어올 정도로 작게 만들 수밖에 없었는데요. 이 때문에 내부는 늘 어둡고 고요했으며 마치 거대한 동굴이나 성채에 들어온 듯한 무겁고 장중한 신앙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피사의 사탑이 있는 피사 대성당이 이 시기의 유물입니다.
5. 고딕 건축 (12세기 ~ 15세기)
쾰른 대성당 / Designed by Magnific |
12세기 무렵 상업이 발달하고 도시가 성장하면서 유럽은 로마네스크의 어두운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신을 향한 인간의 열망은 더 높게, 더 밝게라는 슬로건으로 표현되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고딕 양식입니다. 건축가들은 외벽 지지대인 플라잉 버트레스라는 획기적인 기술을 발명해 건물의 하중을 바깥으로 분산시켰습니다.
덕분에 벽은 얇아졌고 하늘을 찌를 듯 뾰족한 고공 첨탑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벽이 얇아진 자리는 거대한 유리창으로 채워졌는데, 성경의 내용을 형형색색의 유리에 새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화려한 빛이 성당 내부를 가득 채우며 백성들에게 천국에 온 듯한 경외감을 선사했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나 독일의 쾰른 대성당이 대표적인 랜드마크입니다.
6. 르네상스 건축 (15세기 ~ 17세기)
피렌체 두오모대성당 / Designed by Magnific |
고딕의 인기가 정점을 찍은 후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를 중심으로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복잡하고 기괴한 중세 유럽 건축 양식에서 벗어나 인간이 중심이었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찬란한 고전미로 돌아가자는 문화 운동, 즉 르네상스가 시작된 것입니다.
건축가들은 다시 고대의 문헌을 뒤적이며 수학적 대칭과 비례의 아름다움을 연구했습니다. 복잡한 장식은 과감하게 걷어내고, 가로와 세로의 균형이 딱 들어맞는 정돈된 레이아웃과 안정적인 돔을 올렸습니다.
신에게 닿으려는 무모한 높이 경쟁 대신 인간의 눈으로 보았을 때 가장 평온하고 아름다운 이상적인 공간을 만들어낸 것인데, 피렌체 두오모 성당과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7. 바로크 건축 (17세기 ~ 18세기)
베르사유궁전 / Designed by Freepik |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유럽은 종교개혁이라는 거대한 종교적 소용돌이와 절대왕정의 등장이라는 정치적 변화를 겪게 됩니다. 신교로 떠나가는 신도들의 마음을 붙잡아야 했던 가톨릭 교회와 자신의 막강한 권력을 백성들에게 과시하고 싶었던 왕들은 사람들을 단숨에 압도할 강력한 시각적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바로크는 일그러진 진주라는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한 말로, 정형화된 균형을 깨뜨리는 역동적인 곡선과 번쩍이는 금빛 장식, 거대한 스케일로 관람객의 감정을 사로잡았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웅장함과 사치스러움에 압도되어 감히 저항할 생각조차 못 하게 만드는 시각적 연출이 핵심이었으며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이 이러한 욕망을 완벽하게 투영한 공간입니다.
8. 로코코 건축 (18세기 후반)
상수시 궁전 / 사진=unsplash@Sandip Roy |
웅장하고 엄격한 바로크 양식의 거대한 왕궁에서 숨이 막혔던 것일까요? 18세기 후반 루이 14세가 세상을 떠나자 프랑스의 귀족들은 숨 막히는 권위적인 왕궁을 벗어나 자신들의 저택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자신들만의 은밀하고 아늑한 사교 공간인 살롱을 꾸미기 시작하면서 로코코 양식이 탄생했습니다. 바로크가 남성적이고 거대한 스케일의 과시였다면 로코코는 여성적이고 섬세하며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중심의 양식입니다.
조개껍데기나 나뭇잎 모양의 부드러운 곡선 문양을 적극 활용했고 파스텔톤의 화사한 색감과 거울을 배치해 매일 밤 열리는 파티에 어울리는 우아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완성했습니다. 독일의 상수시 궁전 내부가 대표적입니다.
9. 신고전주의 건축 (18세기 말 ~ 19세기)
대영박물관 / 사진=unsplash@Claudio Testa |
바로크와 로코코가 보여준 극단적인 사치와 향락은 결국 18세기 말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불러왔습니다. 왕정과 귀족 제도가 무너지며 사회를 지배하게 된 이성과 계몽주의 사상은 건축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타락한 귀족들의 장식적인 로코코 스타일에 진저리를 치며 다시 옛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엄격하고 정직한 도덕적 절제미로 돌아가자고 외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고전주의입니다. 화려한 금박과 장식들을 모두 떼어내고 고대 신전에서 보았던 거대한 기둥과 삼각형 지붕인 페디먼트가 다시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민주주의와 공공의 가치를 담아내기에 적합했던 이 유럽 건축 양식은 파리의 개선문이나 영국의 대영박물관처럼 국가의 권위를 나타내는 공공건축에 널리 쓰였습니다.
10. 아르누보 및 모더니즘 (19세기 말 ~ 현재)
에펠탑 / Designed by Magnific |
19세기 말 산업혁명은 유럽의 모든 패러다임을 바꿨습니다. 공장에서 철골과 유리가 대량으로 생산되면서 건축가들은 벽돌과 돌이라는 오랜 제약에서 완벽하게 해방되었습니다. 초기에는 기계 문명의 차가움에 반발하여 자연의 덩굴손이나 꽃줄기를 닮은 아름다운 곡선을 건축에 도입하려는 아르누보 운동이 가우디의 건축물처럼 화려하게 피어났습니다.
하지만 인구가 급증하는 현대 도시에서는 장식보다 기능이 우선이었습니다. 결국 장식은 죄악이라는 모토 아래 콘크리트와 철골 구조를 그대로 노출하며 오직 쓸모와 효율성만을 극대화한 모더니즘 건축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파리의 에펠탑은 이 새로운 철기 시대의 도래를 전 세계에 알린 모더니즘의 서막이었습니다.
돌을 다듬어 신의 집을 짓던 고대 그리스부터 철과 유리를 사용해 효율성을 극대화한 현대의 모더니즘까지 유럽 건축 양식 여행은 그 시대를 살았던 인간들의 생각과 문화가 담긴 거대한 일기장입니다. 모두 즐겁고 깊이 있는 유럽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