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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식 화법 4가지 / 인포매틱스뷰(폰트출처:THE 녹차덕후) |
천년의 역사가 깃든 교토는 일본 여행의 필수코스일 정도로 많이 찾는 도시입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 뒤에는 외지인이 이해하기 힘든 교토식 화법이 있는데요. 흔히 배려의 끝판왕, 혹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친절이라 불리죠.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돌려 말하는 것이 핵심인데, 눈치 빠른 한국인이라도 그 속뜻을 모르면 자칫 오해하기 십상입니다. 교토 여행을 더 깊이 있게 즐기기 위해, 웃는 얼굴 뒤에 숨겨진 그들의 진짜 메시지를 읽는 법 4가지를 소개해 드립니다.
오차즈케 한 그릇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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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차즈케 한 그릇 어떠세요? / 사진=unsplash@Stefano Bucciarelli에 |
가장 유명한 일화 중 하나가 바로 이 오차즈케(녹차물에 만 밥) 제안입니다. 친구 집이나 지인의 가게에 머물고 있을 때 주인이 “오차즈케라도 한 그릇 드시고 가시겠어요?”라고 묻는다면, 배가 고픈지 묻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의 진짜 속뜻은 “이제 그만 돌아가 주시겠어요?”라는 정중한 퇴장 요구입니다.
교토 사람들은 직설적인 표현 대신, 식사의 가장 마지막 단계인 오차즈케를 언급함으로써 이미 대접할 것은 다 끝났다는 신호를 보냅니다.
만약 이때 눈치 없이 “네, 맛있겠네요!”라고 대답하며 자리에 앉는다면, 겉으로는 웃으며 음식을 내오겠지만 속으로는 무척 당황할 거예요. 이런 제안을 받았다면 “아차,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실례했습니다”라고 말하며 일어나는 것이 교토식 화법에 대응하는 가장 세련된 방법입니다.
자녀분이 참 활기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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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녀가 정말 씩씩한 것 같아요 /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이 떠들고 있을 때, 옆자리 교토 현지인이 다가와 웃으며 “아드님이 참 기운차고 활기차네요(겐키데스네)!”라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우리 정서로는 아이가 건강해 보여서 좋다는 칭찬으로 들릴 수 있지만, 교토에서는 “당신의 아이가 너무 시끄러우니 좀 조용히 시켜달라”는 강력한 항의의 메시지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들은 상대방의 결례를 직접적으로 지적하는 것을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긍정적인 단어를 빌려 우회적으로 불편함을 표현하죠. “피아노 소리가 아주 잘 들리네요”라는 말 역시 “피아노 연습 소리가 시끄러우니 주의해달라”는 뜻일 수 있습니다. 만약 교토에서 이런 뜬금없는 칭찬을 들었다면, 즉시 주변 상황을 점검해 보는 눈치가 필요합니다.
좋은 시계를 차고 계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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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랜 미팅에서 마무리하자는 표시 /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
비즈니스 미팅이나 대화 중에 상대방이 갑자기 내 손목을 보며 “참 좋은 시계를 차고 계시네요”라고 감탄한다면, 내 패션 센스를 칭찬하는 것이 아닐 경우가 많아요. 이 말 뒤에는 “당신은 시계를 보고 있으니 시간이 가는 것도 알고 있겠죠? 대화가 너무 길어지고 있네요”라는 숨은 의도가 담겨있을 수 있습니다.
교토식 화법의 특징은 화제와 전혀 상관없는 사물에 갑자기 주목하는 것입니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상황을 환기시키려는 신호죠.
특히 시간과 관련된 물건인 시계를 언급하는 것은 “이제 슬슬 마무리합시다”라는 신호를 아주 정중하게 보내는 방식입니다. 이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다음 일정이 있어 이만 일어서야겠습니다하며 대화를 마무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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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과 속이 다르지만, 상대를 위한 거절방법 /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
일본인들이 대체로 거절을 확실히 안 한다고들 하지만, 교토는 그 정도가 조금 더 심합니다. 무언가를 제안했을 때 "참 좋은 생각이네요.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99% 거절의 의미입니다. 특히 검토해 보겠다는 말 앞에 “생각해 본 적 없는 신선한 관점이네요” 같은 미사여구가 붙을수록 거절의 농도는 더욱 짙어집니다.
이는 상대방의 제안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딱 잘라 거절함으로써 상대방의 체면을 깎지 않으려는 그들만의 배려 방식입니다. “안 됩니다” 대신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며 여지를 남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그 주제는 거기서 끝났다는 선언과도 같습니다.
교토 여행 중 쇼핑을 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점원에게 이런 대답을 들었다면, 더 이상 재촉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편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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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피곤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교토식 화법이지만, 그 바탕에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평화를 유지하려는 오랜 전통이 깔려 있습니다. 물론 현재 젊은 교토 사람들은 예전보다 훨씬 직설적으로 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은유적인 분위기는 도시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교토 여행 중 누군가 나에게 과한 친절이나 뜬금없는 칭찬을 건넨다면, 그 미소 뒤에 숨겨진 진짜 마음이 무엇일지 한 번쯤 가볍게 추측해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여행 재미가 되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