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성' 꼬리표 뗀 과민성장… 한약으로 염증 잡는다


국내 소화기 내과 외래 환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과민성대장증후군은 만성적인 복통, 설사, 변비 등을 동반한다. 생명에 직결되지는 않으나 환자의 삶의 질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질환이다. 환자들은 통증이 발생할 때마다 진경제를 먹거나 지사제를 복용하는 식의 임시방편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최근 소화기 학회를 중심으로 과민성대장증후군 환자의 장 점막 내 면역세포 활성화와 염증성 사이토카인 분비가 질환의 핵심 발병 기전이라는 병태생리학적 근거가 쌓이면서, 단순한 위장관 운동 조절을 넘어 염증 자체를 타깃으로 하는 치료제 개발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왔다.

이러한 가운데 강동경희대학교병원 한방내과 고석재 교수 연구팀은 소화불량과 위장관 질환에 널리 처방되어 온 전통 한약 '반하사심탕(반하, 황금, 황련, 인삼 등 함유)'의 장내 염증 신호 조절 기전을 규명했다. 연구팀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네트워크 약리학 분석(in silico)과 동물실험(in vivo)을 교차 검증하는 방식을 택했다. 실험동물에 반하사심탕을 투여한 결과, 장 길이 감소 및 통증 행동 증가 등 과민성대장증후군의 주요 지표가 유의하게 개선되었으며, 체내 염증을 유발하는 사이토카인 수치 역시 명확한 감소 추세를 보였다. 해당 연구는 약학 분야 국제학술지 '파마슈티컬스(Pharmaceuticals)'에 게재되며 객관성을 인정받았다.

이번 연구가 의료 소비자와 제약 업계에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첫째, 반복되는 과민성장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증상 억제'라는 대증 치료의 굴레를 벗어나, '발병 기전 차단'이라는 근본적인 치료 선택지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제공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스트레스 관리나 유산균 복용 정도에 머물렀던 관리 영역이 적극적인 항염증 치료 영역으로 확장된 것이다.

둘째, 이른바 '경험 의학'으로 치부되던 한의학의 유효성이 생명정보학과 현대 분자생물학적 검증을 통해 '근거 중심 의학'으로 편입되고 있다는 산업적 의미다. 다중 성분(Multi-component)으로 이루어진 한약이 다중 표적(Multi-target)에 작용하여 복합적인 염증 경로를 어떻게 억제하는지 네트워크 약리학으로 증명해 낸 것은, 향후 천연물 기반 신약 개발이나 양·한방 융합 치료 모델 구축에 있어 중요한 데이터베이스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고석재 교수는 "과민성대장증후군은 심리적 스트레스 외에도 장내 면역 반응과 염증이 복합적으로 얽혀 발생하는 질환"이라며 "이번 연구로 반하사심탕의 염증 조절 효과가 증명된 만큼 환자들에게 보다 효과적인 치료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인의 척박한 생활환경이 지속되는 한 과민성대장증후군 환자 규모는 앞으로도 줄어들지 않을 전망이다. 반복되는 배변 이상을 가벼운 꾀병이나 체질 문제로 방치하기보다, 장내 미세 염증이라는 기질적 원인을 인지하고 정확한 진단과 과학적 표적 치료를 병행하는 의료적 접근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방내과_고석재 교수

한방내과_고석재 교수


[원문 보기]

라이프 카테고리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