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접근성이 높은 한국 사회에서 건강검진은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검진 결과지에 적힌 단편적인 수치에 일희일비하며 병원을 찾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 교수는 검진 결과는 그날의 수면 상태나 긴장도, 전날 식사 및 탈수 여부 등에 따라 혈압, 혈당, 단백뇨 수치가 일시적으로 변동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특정 시점의 정상 여부보다 과거 기록과 비교해 어떤 궤적을 그리고 있는지 파악하는 '건강 일기장'으로서의 역할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항목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국가건강검진을 불신하는 현상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국가검진은 놓치면 위험하고, 조기 발견 시 치료 효과가 명확한 고혈압, 당뇨, 빈혈, 간질환 등의 필수 항목들로 엄선되어 있다. 반면, 췌장암처럼 조기 발견이 어렵고 치료 효과가 제한적인 질환은 전 국민 대상 검진에 포함하기 어렵다는 의학적 기준이 존재한다. 다만, 국가검진에 포함된 2년 주기의 위내시경은 귀찮다는 이유로 미루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위암은 조기 발견 시 치료 성공률이 90%를 상회하기 때문이다. 또한, 가족력은 같이 사는 배우자가 아닌 부모, 형제자매 등 혈연관계를 기준으로 삼아야 하며, 직계 가족 중 2명 이상 동일 암이 있거나 젊은 나이에 발병한 경우 추가 검진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러한 의료진의 제언은 초고령사회를 마주한 현재의 보건의료 체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대 의학이 발달하며 기대 수명은 늘었지만, 만성질환을 안고 살아가는 유병 기간 역시 10년 이상으로 고착화되었다. 대중은 흔히 값비싼 장비를 동원한 잦은 검진이 건강을 담보할 것이라 믿지만, 건강의 기본값은 결국 매일의 '생활습관'이다. 1972년 벨록(Belloc)의 연구에 따르면 충분한 수면, 아침 식사, 적정 체중 유지, 규칙적 운동, 절주, 금연 등 7가지 일상적 습관 중 6개 이상을 실천한 그룹의 생존율이 유의하게 높았다. 즉, 건강검진은 내 몸의 상태를 점검하는 보조 지표일 뿐, 실질적인 건강수명을 결정짓는 핵심은 평소의 일상이라는 의미다.
검진 결과의 해석 역시 단편적인 숫자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체질량지수(BMI) 30 이상 고도비만, 혈압 120/80mmHg 정상 기준, 공복 혈당 126mg/dL 이상 당뇨 의심, LDL 콜레스테롤 130 이하 목표 등 명확한 수치 기준이 존재하지만, 이는 절대적 정답이 아닌 참고 기준에 불과하다. 같은 수치라도 개인의 기저 상태나 과거 이력에 따라 임상적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 소비자는 건강검진을 합격과 불합격을 나누는 일회성 성적표처럼 대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검사 결과지 속 수치 하나에 불안해하기보다는, 의료진과 함께 그 숫자가 내 몸의 흐름 속에서 의미하는 바를 맥락적으로 짚어보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건강검진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한 수명 연장이 아니라, '아프지 않은 시간'을 늘려 삶의 질을 방어하는 것이다. 건강한 노후는 1년에 한 번 찍는 검진이라는 사진관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검진 결과를 이정표 삼아 매일의 생활습관을 묵묵히 교정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다.
[붙임] 가정의학과 오범조 교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