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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금을 소진한 상태에서 완전히 새로운 아이템을 시작할 때, 기존 법인을 유지하면 밸류에이션 하락과 리픽싱 조항 때문에 신규 투자를 받기 매우 어렵습니다.
  • 실리콘밸리에서는 폐업 후 재창업하며 기존 투자자에게 소수의 지분을 부여하는 실용적 방식을 쓰기도 하지만, 한국에서는 계약 구조상 투자자와의 지적 정직성을 바탕으로 한 사전 논의가 필수적입니다.
  • 기존 법인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면 당장의 후속 투자 유치나 투자자 보상에 집착하기보다, 회사가 외부 자금 없이 생존할 수 있는 자생력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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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데모데이 김범수입니다. 스타트업이 여러 번의 펀딩을 받고 피벗을 거듭하다 결국 자금을 거의 다 소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업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통장 잔고는 말라가는데, 마침내 '이건 진짜 될 것 같다' 싶은 완전히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찾았을 때 창업자는 깊은 딜레마에 빠집니다.

5~6년 동안 끌고 온 현재의 법인을 폐업하고 깨끗하게 새 출발을 할 것인가, 아니면 나를 믿고 돈을 내어준 기존 투자자들에 대한 도리를 지키기 위해 이 법인을 어떻게든 살려갈 것인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도의라는 감정적 접근 이전에 후속 펀딩을 가로막는 자본 시장의 구조적 현실을 먼저 직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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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데모데이(DemodaySV) 제공 영상 · 00:20


기존 법인 유지의 딜레마: 도의와 현실의 충돌

여러분을 믿고 100억 원이라는 큰돈을 투자해 준 투자자들에 대한 도리를 생각하면, 당연히 기존 법인에서 새로운 사업을 안착시켜 회사를 살려내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벤처 투자 생태계에서 이 도리를 지키려다 보면 곧바로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가장 큰 문제는 밸류에이션(기업가치)과 리픽싱(Refixing) 조항입니다. 과거 100억 원을 펀딩 받을 당시 회사의 밸류에이션은 300억 원에서 400억 원 수준까지 올라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여러분이 시도하려는 아이템은 기존 자산을 활용하는 것이 아닌, 사실상 새로 창업하는 것과 다름없는 초기 단계의 비즈니스입니다.

신규 투자를 검토하는 외부 투자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실질적으로는 이제 막 시작하는 프리시드(Pre-seed) 단계의 비즈니스인데, 과거의 영광인 300억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하고 들어올 바보는 없습니다. 이들은 당연히 30억 원에서 50억 원 수준의 현실적인 초기 밸류에이션을 요구할 것입니다.

밸류에이션 하락이 캡테이블을 마비시키는 메커니즘

만약 기업가치를 300억 원에서 50억 원으로 대폭 낮춰서 다운라운드(Down-round) 펀딩을 진행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때 기존 투자자들의 계약서에 포함된 리픽싱 조항이 발동됩니다. 기업가치가 하락한 만큼 기존 투자자들의 지분율을 보호하기 위해 주식 수가 조정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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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데모데이(DemodaySV) 제공 영상 · 04:35


이렇게 되면 신규 투자자는 자신이 넣은 자본만큼의 합당한 지분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결국 신규 투자자는 펀딩의 전제 조건으로 '기존 투자자들의 리픽싱 포기'를 요구하게 됩니다. 하지만 기존 투자자들이 만장일치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해 줄 가능성은 낮습니다. 애초에 회사가 어려워질 때를 대비해 투자자를 보호하려고 만든 조항을 스스로 무력화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기존 법인을 계속 끌고 가는 선택은 창업자가 앞으로 새로운 펀딩을 받는 데 있어 치명적인 발목을 잡게 됩니다.

실리콘밸리의 실용주의와 한국적 관행의 차이

이러한 교착 상태를 해결하는 방식은 실리콘밸리와 한국이 꽤 다릅니다. 미국에서는 '페이투플레이(Pay-to-play)' 같은 조항을 통해 기존 투자자가 후속 투자에 참여하지 않으면 지분이 크게 희석되는 것을 용인하는 등 밸류에이션 조정이 상대적으로 유연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투자했던 한 회사의 경우, 기존 캡테이블(주주명부)이 너무 꼬여 신규 투자가 불가능해지자 창업자가 기존 법인을 과감히 폐업했습니다. 대신 새로 설립한 회사의 지분 중 극히 일부(예: 0.2~0.3%)를 기존 투자자들에게 아주 낮은 밸류에이션으로 나눠주었습니다. 미국 투자자들은 이 방식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캡테이블이 망가진 회사를 끌고 가며 고사하는 것보다는 창업자가 새 출발을 하도록 열어주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판단합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이러한 접근이 창업자의 '도덕적 해이'로 비칠 위험이 큽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사업이 조금 안 풀린다고 폐업해 버리고 자기 혼자 새 회사를 차리는 것은 명백한 배신"이라고 반발할 수 있습니다. 두 세계관 중 무엇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한국의 계약 구조와 관행 하에서는 프레쉬 스타트를 위해 밸류에이션을 극단적으로 낮추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팩트는 변하지 않습니다.

재창업을 바라보는 시장의 냉혹한 시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법인을 끌고 가기로 했다면, 창업자는 시장의 냉혹한 평가 기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창업자 본인 마음속에서는 '새로운 아이템을 찾았으니 나는 오늘부터 1일차 새 스타트업이다'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외부 투자자가 볼 때 이 회사는 어쨌든 업력 6년 차의 낡은 회사입니다. 한국의 벤처기업 인증 기준이나 초기 투자 펀드의 주목적 투자 대상에서도 벗어나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조금 직설적으로 비유하자면, 결혼했다가 이혼의 아픔을 겪고 다시 연애 시장에 나온 것과 같습니다. 본인은 새 출발이라고 굳게 믿어도, 시장에서는 한 번 다녀온 사람과 이제 막 처음 연애를 시작하는 사람을 완전히 똑같은 선상에서 평가하지 않습니다. 완전히 똑같은 초기 트랙션을 내고 있다면, 시장은 6년 차 회사의 피벗 아이템보다 이제 막 창업한 1년 차 회사의 아이템을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낍니다. 이것이 펀딩 마켓의 현실입니다.

창업자를 위한 현실적 가이드: 자생력이 먼저다

그렇다면 창업자는 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해야 할까요?

첫째, 투자자들과 지적 정직성을 바탕으로 솔직하게 의논하십시오. 한국의 VC들이 무조건 화만 내고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레짐작은 버려야 합니다. "새로운 펀딩을 받으려 했으나 캡테이블 구조상 진행이 불가능합니다. 차라리 폐업 후 재창업을 하며 소수의 지분을 챙겨드리는 방향은 어떨까요?"라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해 보십시오. 밑져야 본전입니다. 한국의 VC들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시장 생리에 밝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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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데모데이(DemodaySV) 제공 영상 · 13:00


둘째, 어쩔 수 없이 기존 법인을 유지해야 한다면 당장의 후속 투자 유치나 기존 투자자에 대한 보상 압박을 머릿속에서 지우십시오. 앞서 말씀드렸듯, 업력이 오래된 회사일수록 펀딩은 극도로 어려워집니다. 마음속의 부채감 때문에 무리하게 밸류에이션을 예전 수준으로 회복하려 들면 스텝이 완전히 꼬이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이 집중해야 할 유일한 목표는 자생력 확보입니다. 외부 투자를 받지 않고도 회사가 자체적으로 돈을 벌어 굴러갈 수 있는 전통적인 사업을 창업했다고 생각하십시오. 투자자에게 어떻게 엑시트(Exit)를 시켜줄 것인가는 회사가 생존하고 이익을 내기 시작한 뒤에 고민해도 늦지 않습니다. 진짜 생존의 길을 찾아 허슬(Hustle)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이, 이 길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와 투자자와 창업자 모두가 명예롭게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FAQ

기존 법인으로 완전히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면 왜 신규 투자가 어려운가요?

과거 펀딩 시점의 높은 기업가치와 현재 초기 단계 아이템의 현실적인 기업가치 사이의 괴리 때문입니다. 밸류에이션을 낮춰 투자를 받으려 해도, 기존 투자자들의 리픽싱(지분 조정) 조항이 발동되면 신규 투자자가 원하는 만큼의 지분을 확보할 수 없어 투자를 포기하게 됩니다.

투자자에게 폐업하고 새로 시작하겠다고 말하면 도덕적 해이로 비난받지 않을까요?

한국적 관행에서는 배신으로 받아들일 위험이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VC들도 펀딩 생태계의 구조적 한계를 잘 아는 전문가들입니다. 혼자 끙끙 앓기보다는 현재의 캡테이블 문제와 펀딩의 현실적 어려움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실용적인 대안을 의논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어쩔 수 없이 기존 법인을 유지해야 한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외부 VC 투자에 의존해 회사를 살리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업력이 긴 회사의 피벗은 투자 시장에서 매력도가 떨어집니다. 따라서 당장 매출을 내어 외부 자금 없이도 회사가 자체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자생력'을 확보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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